[#19 내가 모로코에 온 이유]

by 현이진

(2018.12.)


모로코의 아가디르 공항에 도착하자, 서핑스쿨에서 픽업을 나와있었어. 그 픽업차량엔 나 말고 한 커플이 더 있었지.


이 서핑, 요가 스쿨에서 나는 호주에서 겪었던 서핑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었고, 모로코의 음식이 진짜 맛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잘생긴 남자들이 다 모로코에 서핑하러 오나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진짜 이유는 바로 이 모로코 부부였어.


40대 후반임에도 소녀 같은 귀여움을 유지하고 있는 여인과 50대 초반임에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그 여인의 남편. 모로코를 떠난 지 오래된 모로코 출신 부부야. 이들은 혼자 모로코에 서핑하러 온 나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았고 우리는 금방 얘기를 나누며 친구가 되었어. 그들은 서핑이 처음이었는데 남편 R은 굉장히 들뜬모습이었어. 서핑이 기대가 돼서 동영상을 찾아보며 맨땅에서 연습을 했다는 거야. 50이 넘었는데 그 열정과 순수함이 너무 귀엽게 느껴지더라고.

한국에서 이런 부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까?


부인 S는 모로코에서 선생님이었대. 모두가 알다시피 모로코는 이슬람 국가이고 여성들의 권리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지. 모로코인들이 보기에 그녀의 삶은 평탄한 것 같았지만 그녀는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여성으로서 억압받는 것들이 싫었나 봐. 그래서 프랑스로 떠났어. 모로코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서 프랑스어와 북쪽 일부 지역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사용하거든.


반면, 남편 R은 모로코에서 공무원이었대. 30대 중반 이후까지 그는 공무원으로 일했는데, 역시나 그 사회에서 답답함을 느꼈나 봐. 먼저 가 있던 친척들의 도움으로 캐나다 퀘벡(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으로 이민을 가게 된 거지. S와 R은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각각 프랑스와 캐나다에 살면서 우연히 연락이 닿았고 오랫동안 천천히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을 한 거야. 그리고 결혼해서 퀘벡에서 같이 살게 된지는 이제 2-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결혼 후 한 번도 고향을 방문하지 못해서 이번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가족들을 만나러 모로코에 돌아온 거야.


IMG_4739.JPG 실루엣만으로도 귀여움이 느껴지는 모로코 부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건 우연이 아니다 싶어.

한국에서의 나의 상황과 너무나 비슷했고, 어쩜 그녀도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니! 그들의 지금 나이를 생각해보면, 2-3년 전에 결혼을 했더라도 젊은 나이는 아니잖아. 그런데 내가 보는 S와 R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어. 서로를 아껴주는 모습, 순수함과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는 모습, 나이와 관계없이 꾸밈없는 귀여운 모습들은 정말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웠어.

그리고 깨달았지.


'아, 이들을 만나는 것이 내가 모로코에 온 이유였구나.'


한국 사회를 벗어나고자 영국행을 택했지만 내가 벗어나려고 했던 그 기준들에 의해 여전히 내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는 나에게 그들은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어. 어쩌면 한국에서 내가 내려놓은 것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모로코에서 내려놓은 후 이민을 택하고 늦은 결혼을 한 거야.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나이에 걸맞은 성취보다 방향성이구나. 그리고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참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어학원이 끝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해야 할지, 나이는 30대 중반인데 누구를 만나야 할지 걱정이 있었어.


그런데 이들을 만나니

'내가 잘 가고 있구나, 방향성이 맞다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며 위로가, 그리고 응원이 되더라.


그때부터 모로코 여행을 진짜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


IMG_4750.JPG 서핑스쿨 루프탑에서 보이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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