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모로코에서 서핑 트라우마 극복하기]

by 현이진

(2018.12.)


나의 첫 서핑 경험은 2016년 1월 호주 골드코스트에서였어.

서퍼스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골드코스트에 왔으니까 한 번 서핑을 경험해보자 했지. 그런데 일단 보드를 들고 서핑 샵에서 바닷가까지 가는 여정만으로도 힘들더라고. 무지하게 뜨거운 호주의 햇빛에 눈을 뜨기 힘들었고 맨발로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까지 가는데 아스팔트 위 발바닥은 타들어가는 것 같았어. 물에 들어가서는 짠 바닷물이 눈에 들어가서 눈도 아프고, 하필 보드에 입술을 맞아서 오리처럼 입술이 팅팅 부었어. 나는 그때 교정기를 착용했을 때여서 피멍을 덤으로 얻었지. 그러자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어.


'내가 왜 파도랑 싸우고 있어야 하지?'


그냥 바라보면 한없이 아름다운 바다에 커다란 보드를 든 채로 파도를 뚫고 들어가 서핑에 적절한 곳을 찾는 것이 부질없이 느껴졌어. 수영도 잘 못하는 나는 다시는 서핑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다짐했던 내가 모로코에서 2018년의 마지막을 서핑을 하면서 보내게 되다니. 인생 참 재미있지?

내가 물은 무서워하지만 운동신경이 꽝은 아니야. 내가 곧잘 일어나고 제법 잘 타는 것처럼 보였는지 3일째 되던 날, 강사 1이 나를 중급 존으로 보냈어. 생각보다 너무 깊은 바다로 가게 되자 나는 겁을 먹어서 그곳에 있던 강사 2에게 말했어.


"나 수영을 못해."


강사 2의 눈빛이 흔들렸어.

'얘는 여태까지 실컷 서핑하고 이제 와서 뭔 소리야.'라는 눈빛.

물에 떠서 배영만 겨우 할 수 있다고 말하자 갑자기 강사 2가 수영을 가르치기 시작했어.


"내가 있으니까 괜찮아. 일단 보드에서 내려와서 물에 떠 봐."


뭐지 이건, 모로코 바다 한가운데서 생존수영 수업을 받는 기분이었어. 나는 발이 닿지 않아서 물에 대한 공포가 극대화되었는데 강사 2가 호언장담을 하며 살려주겠다고 하니 일단 심호흡을 깊게 하고 보드에서 내려왔어. 그리고 손을 살포시 뗐어. '나는 발이 바닥에 닿는 수영장에 있다.'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 강사 2의 지시대로(사실 그의 이름은 압둘라) 물에 뜨고 배영을 시작했어. 마치 처음 비행을 하는 새끼 새를 격려하는 어미새처럼 압둘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렇게 생존수영 교육을 마쳤어.


나름 그 사이에 두려움이 조금 사라진 것 같았어. 압둘라(여전히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아라비안 나이트가 생각나는)의 격려에 자존감도 올라갔어. 적절한 파도가 다가오자 압둘라는 다급히 소리쳤어.


"패들, 패들, 패들, 업-!"


나는 바다의 한 복판에서 보드 위로 올라가 중심을 잡았고, 그대로 해변가까지 미끄러지듯 파도를 탔어. 초급 존에서는 파도를 타는 시간이 적어 앞만 보았지만, 중급 존에서 그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살짝 방향을 바꾸어 내가 타는 파도를 바라보았어.


그때, 희열이 느껴졌어. 이게 바로 그 성공경험인가? 그 희열로 인해 나는 더 이상 서핑이 무섭지 않았어. 서핑 보드에 부딪혀 오리입 마냥 퉁퉁 부었던 호주에서의 트라우마가 극복된 거지. 모래사장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내 전담 강사 1(키가 작지만 다부진 근육을 가진 그의 이름은 오마르)이 'Good one!'을 외치며 나를 안아줬어.


보드 위에서 파도를 타는 그 기분은 참 좋아.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서핑 중 최고의 순간은 따로 있어.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에서 조금 떨어져 바다 쪽으로 더 나아가면 오히려 잔잔한 바다를 만날 수 있어. 그 반짝이는 고요한 바다 위, 그리고 보드 위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상 평화를 내가 다 가진 것 같아. 쿵푸 팬더에서 시푸 사부님이 강조했던 '이너 피스(Inner peace)' 있잖아. 바로 그 말의 현현인 거지.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해 준 모로코에서의 서핑, 이너 피스의 현실화는 한국에서 가는 스페인-모로코 패키지여행으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을거야. 그때 모로코를 여행했었던 친구가 내 사진들을 보더니 카톡으로 이렇게 말했어.


"내가 갔던 그 모로코 맞아? 다른 나라 아니야?"


응 맞아.

근데 패키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모로코는 아닐걸. 이게 리얼 모로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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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노을 / 제주에서 패들보드를 타며 다시 느낀 '이너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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