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34살 백수 외국인의 이별]

Estoy soletera

by 현이진

(2018.12.)


'띠리링 띵 띠리 딩 띵 띵...' (페이스톡 벨소리 ♬)

"여보세요."


한국에 있는 남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 그와 친한 친구들 중 마지막으로 남은 미혼이었던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모임에 여자 친구를 데려왔대. 그러면서 나에게 말했어.


"너는 언제 와? 한국 오면 바로 결혼하자."


하, 하, 하...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내가 한국에 언제 돌아갈지 알 수 없을뿐더러 그와 결혼을 해야겠다는 어떤 확신도 없었거든. 언제나 나에게 '너는 그냥 몸만 오면 된다.'라고 말해주는 그에게, 6개월째 한국 땅을 떠나 있는 나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고맙고 미안하다고 다 결혼하는 건 아니잖아. 애초에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 연애가 아닌 만큼 간절함도 덜했던 것 같아.


"안 그래도 올해가 지나기 전에 뭔가 확실한 게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 진지하게 생각해볼게."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고민이 시작됐어. 마음은 하루하루 무거워져만 갔어. 이미 나는 진지하게 생각해본다고 말한 순간부터 결론을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복합적인 생각과 감정들을 가지고 일주일을 지내니까 급기야 의미심장한 꿈까지 꾸게 되었어. 그리고 남자 친구와 끝맺음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


솔직히 말하자면, 순간순간 두려울 때가 있어. 아무것도 남는 것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생각해 본 적도 있지. 그게 비참할 것이 아닌데 왜인지 모르게 조금은 비참한 기분이 들 것 같은 그런 느낌. 여기서는 32살이지만, 이제 다음 달이면 한국 나이로 34살이야. 한국으로 돌아가면 직업도 없고, 돈도 없고, 지금 남자 친구와 헤어진다면 남자 친구도 없어. 당차게 결정하고 실행하며 사는 내 삶과 다르게 나는 독신주의자도 아닐뿐더러 친한 친구들이 모두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것들을 보며 종종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거든. 하지만 비참할 땐 비참하더라도 확신이 없는 결정을 해버리면 내 인생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잖아.


그에게 전화를 걸었어.


"나 계속 생각해봤어. 알지? 내가 한 번 고민을 시작하면 스스로 오랫동안 힘들어하며 고민하는 거. 나는 어떤 것도 너에게 약속해줄 수가 없어. 나조차도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니까. 네가 만날 사람이 있다면 자유롭게 만났으면 좋겠어."

"나도 다 알고 있어. 모든 걸 포기하고 떠난 네가 쉽게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었던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생각해."


난 일주일 동안 끙끙대며 고민했는데 한 번 말해본 것이라는 식의 말을 들으니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게 진심이 아닌 걸 알겠더라고. 그는 끈을 계속 붙잡고 싶어서 내 대답을 가볍게 넘긴 것 같았어. 나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락은 뜸해지게 되었어. 헤어진 거야.


이제 곧 34살.

오후 세 시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영국의 축축한 겨울을 온몸으로 느끼며, 싱글이 된 외국인 백수가 어학원을 다니는 중이었어. 3개월 뒤에 어디로 갈지 모른 채로.


태국 배낭여행 중 만났던 스페인 친구들이 연습시켜줬던 한 마디 말이 떠올랐어.

'에스또이 솔리떼라 (Estoy soletera.)'

얼추 비슷하게 발음할 때쯤 깔깔대며 뜻을 알려주더라고.


‘나는 싱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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