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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친 PD Oct 29. 2024

미국 스포츠 팀의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

파드리스에서 레이커스까지

1. 연고지와 팀의 이름이 찰떡궁합인 팀들

올해 3월, 역사적인 서울 시리즈가 개최되면서 메이저리그의 개막전이  한국에서 열렸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두 팀, <LA 다저스>와 김하성의 소속팀 <샌디에고 파드리스>와의 대결. <다저스>와 같은 지구에 있기도 하고, 김하성이 이적한 이후부터는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중계방송이 되었건만, 서울시리즈 때문인지 왜 샌디에고가 ‘파드리스’라는 팀 이름을 쓰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파드리스(Padres)’는 스페인어로 ‘신부님’을 의미한다. 언뜻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의문도 일리는 있다. 아니, ‘청교도’의 나라이며, 개신교의 이미지가 강한 미국에서 ‘신부님’, 그것도 스페인어를 팀 이름으로 쓰다니.

 

1776년, 동부 13개 주가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시작됐지만, 18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지금의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를 얻지 못했다. 사실 우리가 미국 하면 떠올리는, 영국 이주민들을 중심으로 한 ‘개신교의 나라’라는 이미지는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동부지역에 국한된 것이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오랫동안 서방 제국주의 세력들 간의 쟁탈전이 벌어졌던 아메리카 대륙에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는 멕시코와 더불어 오랫동안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었다. 1810년 멕시코는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켰고, 당시 쇠락하고 있던 스페인 제국은 1821년, 마침내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패배하였다. 그 결과 멕시코는 독립을 쟁취했을 뿐 아니라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던 캘리포니아와 텍사스까지 손에 넣게 된다. 그로부터 약 10여 년 후인 1846년, 신흥 세력이었던 미국과 멕시코는 텍사스의 점유 문제로 잦은 충돌을 벌였는데, 급기야 그 충돌은 전면전으로 확대되고 만다. 발발 2년 만에 이 전쟁을 미국이 승리하면서 비로소 미국은 텍사스와 함께 캘리포니아, 유타, 네바다 등 광활한 서부 영토를 손에 넣게 된다.

      

미국 땅이 되긴 했지만, 과거 오랫동안 스페인-멕시코의 지배를 받아 온 캘리포니아는 당연히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이 주류였다. 이런 사실은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도시들의 이름만 봐도 확연이 알 수 있다.

     

‘샌디에고(San Diego)’는 영어로는 세인트 디에고, 즉 ‘성 디에고’를 뜻한다. 디에고는 가톨릭 성인 중 하나로 특히 스페인, 포르투갈의 남자 이름으로 가장 많이 쓰는 이름 중 하나이다. 전설적인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처럼 말이다.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역시 성 프란시스코를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 편에 소개했던 <다저스>의 연고 도시인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는 스페인어 발음으로는 '로스앙헬레스'로 ‘천사들’이라는 단순한 뜻인데, 원래 이 지역은 ‘천사들의 여왕인 성모 마리아의 도시’라는 아주 긴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도시 이름이 너무 길어서 그중 ‘천사들’만 남은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즉 LA의 또 다른 메이저리그 팀 이름이 ‘천사들’ - Los Angeles Angels (LA 에인절스) - 인 이유도 이와 같다.

        

샌디에고 파드리스의 마스코트

이처럼 캘리포니아 지역은 오랫동안 북아메리카 가톨릭의 본 고장이었고, 미국으로 편입되기 훨씬 전인 1769년 ‘샌디에고’에 최초로 프란시스코 수도회가 설립되면서 캘리포니아에 많은 수도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초의 수도회가 설립된 ‘샌디에고’에 ‘파드리스’라는 이름은 정말 딱 들어맞는 이름이 아닌가.  

    

멕시코와 미국의 잦은 마찰의 원인이 된 텍사스는 오랫동안 멕시코인들의 불법 이민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따라서 국경을 넘어오는 불법이민자들을 막기 위한 ‘국경수비대’의 역할이 한층 중요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추신수의 전 소속팀이자 지난해 월드시리즈 챔피언 <텍사스 레인저스(Texas Rangers)>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팀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NBA를 대표하는 명문팀, ‘래리 버드’와 ‘마이클 조던’의 팀 <보스턴 셀틱스(Boston Celtics)>와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 역시 연고지와 찰떡궁합인 팀 이름이다.

     

Celtics는 켈트족을 의미하는데, 좁게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의미한다. 19세기에 있었던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으로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여기저기 떠났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보스턴을 비롯한 미국 북동부 지역에 대거 몰려들었고, 급기야 <보스턴 셀틱스>를 탄생시켰다. 기성용, 차두리 등이 뛰었고, 현재 양현준의 소속팀이자 스코틀랜드의 최대 도시 글래스고에 이주한 아일랜드 이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스코틀랜드 축구의 살아 있는 역사 <셀틱 FC>도 같은 이유로 팀 이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일랜드의 상징색인 초록색을 바탕으로 한 보스턴 셀틱스의 로고

시카고는 ‘붉은 고기의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미국인들의 가장 중요한 먹거리인 고기를 유통하는 거점도시이다. 시카고의 미국 최대의 육류 가공 도시로서의 역할은 역사가 깊은데 이미 18세기부터 미시시피 유역과 5 대호를 연결하는 중심지로서 수상유통이 발달했고, 이 이유로 미국을 가로지르는 횡단철도가 시카고를 중심으로 건설되면서 ‘고기 유통의 도시’가 되었다. 이런 시카고에 <불스(Bulls)> 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횡성 한우스>와 같이 찰떡 궁합이 아닌가.

     

'붉은 고기'를 대표하는 붉은 소

미항공우주국(NASA)의 유인 우주비행 프로그램의 근거지인 휴스턴의 메이저리그 팀이 <애스트로스(Astros)> 인 것과 애리조나 사막에 세워진 미친 듯이 덥고 태양이 작열하는 인공도시 피닉스의 NBA팀 이름이 <선즈(Suns)>인 것도, 디즈니랜드의 고장 올랜도의 NBA팀 이름이 <매직(Magic)>인 것도 이제는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NBA팀 중에 <필라델피아 76ers>라는 팀이 있다.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서 미국의 독립선언이 있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1776년 바로 필라델피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팀의 이름이다. <NFL>의 최고 명문 팀 중에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49ers>도 같은 맥락이다. 금맥을 찾기 위해 서부로 대거 이주했던, 골드러시의 해인 1849년부터 미국 서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서 있었던 미국의 독립선언

2. 연고지와 팀명이 안 어울리는 팀들

앞서 서술한 것처럼 대부분의 팀 이름은 그 연고지의 역사를 조금만 알아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만큼 잘 맞아떨어지는데 반해 연고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팀들도 있다.


연배가 좀 있는 세대들에게는 ‘매직 존슨’과 ‘압둘 자바’의 팀, 젊은 세대들에게는 ‘코비 브라이언트’와 ‘르브론 제임스’의 팀이자 NBA 최고 인기 팀 중에 하나인 <LA 레이커스(Lakers)>가 대표적이다. 아니 건조한 사막 기후인 캘리포니아에 호수(Lakers)라니? LA에 호수가 몇 개 있는지는 몰라도 팀 이름으로 쓸 만큼 상징적인 것은 아닐 텐데?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레이커스(Lakers)>는 본래 호수의 본고장 미네소타의 ‘미니애폴리스’를 연고로 둔 팀이었다. 수많은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 ‘미니애폴리스’ 에서 LA로 연고지를 이전한 것은 1960년.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스포츠단의 서부개척 시대에 발맞춘 구단의 결정이었는데, 이름만은 그대로 <레이커스(Lakers)>로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역사와 정통성을 지켰다.    

  

아름다운 호수의 도시 미니애폴리스

가장 이상하게 생각했던 팀은 바로 <유타 재즈(Jazz)> 였다. 아니 유타가 어떤 곳인가. 미국 개신교도들을 피해 서쪽으로 도망 다녔던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이른바 ‘몰몬교’ 신자들이 정착한 곳 아닌가.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중계를 다녀온 선배들은 하나 같이 유타 주 사람들의 특징을 ‘경건과 독실’로 명명했다. 주민 대부분이 아주 독실한 몰몬교도들이며, 예배와 경건 생활을 하고 있어, 아직까지도 <유타 재즈>의 일요일 홈경기 수는 미국의 모든 종목과 팀을 통틀어 가장 적다.  예배와 경건 생활로 인해 일요일 경기에는 관중이 오지 않아 평균관중 수 하락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인 것이다.     

  

솔트레이크시티의 몰몬교회의 모습

<재즈(Jazz)>는 원래 ‘뉴올리언스’에서 창단되었다. 아하, 그렇다면 이제 이해가 간다.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라면, <뉴올리언스 재즈>라는 팀 이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연고지를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로 옮긴 것은 1979년. 당연히 유타주민들은 계속해서 시와 구단에 경건하지 못한 음악인 ‘재즈’라는 팀 이름을 쓰지 못하도록 민원을 제기했다. 구단은 팀의 역사를 바꿀 생각이 없어 버티고 있었지만, 10년 가까이 계속되는 주민들의 민원에 이제는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80년대 후반, 칼 말론- 존 스탁턴, 두 슈퍼스타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유타 재즈>는 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이 이끌던 <시카고 불스>에 대항하는 팀으로 올라서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고, 결국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뉴올리안스의 재즈공연 포스터

진짜 뜬금없는 NBA의 팀 중에 <토론토 랩터스 (Raptors)>가 있다. 아니 캐나다의 대표 도시에 웬 공룡? <토론토 랩터스>는 1995년에 창단된 비교적 신생팀이다. 이 당시에는 팀 이름을 주민들의 공모로 정했는데 그때 가장 많은 표가 나온 것이 ‘랩터스(Raptors)' 였다.  토론토 인근에서 공룡 화석이 발견된 적이 있기는 해도 팀 이름이 될 만큼 공룡 화석의 대표적인 지역은 아니어서 구단은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모로 팀 이름을 정하기로 한 이상, 번복할 수는 없었다. 당시 <랩터스>가 1위를 차지하게 된 주요인이 무엇인지 사람들의 추측은 계속되었는데,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주장이 있었다. 창단을 준비하던 1994년으로부터 1년 전, 전 세계는 이 영화에 열광했었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공원>. 당시 천문학적인 흥행 수입과 관객 몰이를 했었는데 이 <쥬라기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공룡이 바로 <벨로키 랩터>였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다.  

         

<쥬라기 공원>에 등장한 <벨로키 랩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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