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출근한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벌써 세 번째 물음이다. 사실 그동안 나의 학력이나 전공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 날만큼은 달랐다.
“어 맞아...”
“와 그럼 한강 작가 잘 아시겠네요? 나이도 엇비슷하니..”
“잘 알지.... 나는. 하하”
하긴, 노벨상이라니. 이런 호들갑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부커 상을 받았을 때도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노벨 문학상이라니.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고 교내 백일장을 휩쓸고 다녔던 나였지만, 국문과 입학 이후에 선배와 동기들의 글을 보면서 많이 힘들어하던 내가 떠올랐다. 아주 먼 기억 속에 아직 웅크리고 있는 그 모습. 나는 왜 이런 표현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 것을 보지 못했을까. 주로 이런 자책과 후회들.
안간힘을 쓰면서 그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매주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발버둥 치고 머리를 잡아 뜯었던, 신촌 어느 골목 선술집에서 취기가 달아올라 문학이란 이런 거라고 큰 소리로 떠들던 부끄러운 모습. 돌이켜보면 그때 나에겐 ‘나의 글'이 없었다. 모두 어디선가 봤던 표현과 남의 생각들. 더 예쁜 문장을 만들기 위해 이 것 저 것을 조합했던 조악한 글들.
“한강 작가님 얘기 좀 해주세요. 대학 땐 어땠는지..”
옆자리 후배들이 의자를 당겨 앉아 물었다.
글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정도로 내가 친했었나? 그와는 같은 학회를 했다. 매주 써온 시를 놓고 같이 합평회를 하고, 몇 번의 MT를 같이 갔고, 신촌에서 몇 번 술잔을 같이 기울였다.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야 들릴 듯 말 듯 한 나긋나긋한 목소리. 신입생이었던 나는 도통 모를 가사의 노래를 나지막이 읊조리던 모습.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환하게 웃어주던 맑은 얼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의 모습은 이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의 글은 달랐다. 학회 합평회에서 그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학부에서 발간했던 우리들의 시집인 ‘해빙기’에 실린 그의 시들, 시창작론 시간에 정현종 교수님에 의해 소개된 그의 글들까지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말이나 행동은 나긋나긋하고 느릿느릿했지만, 그의 글들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생생했고 힘이 넘쳤다. 사실 대학 입학 전까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소설은 그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목선>이라는 소설이었다. 태어나 처음 본 것 같은 그의 문체와 서사,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결말. 난 <목선>이 한승원 작가의 등단작이라는데 놀랐고, 첫 번째 합평회 때 한승원 작가의 딸이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후배들에게 한강 작가와의 에피소드를 있는 힘껏 늘어놨다. 글쓰기는 이미 포기한 상태였지만, 아직까지 ‘말발’은 살아 있던 나는 후배들의 표정에 밝아질 때마다 약간의 과장을 더하며 기억을 소환했다. 만족스러운 듯한 후배들의 반응은 이어졌고, 마치 내가 노벨문학상이라도 탄 것처럼 한껏 우쭐거렸다. 그리고 자랑스러웠다. 그와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에서 글을 나누며 삶의 고민을 했다는 것이. 나도 오랜만에 행복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34년 전의 내 모습을 더듬어 봤다. 그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보다 더 생각나는 게 없었다. 시인이 되고 싶어 막연하게 들어온 국문과. 몇 자를 끄적이기 위해 보낸 많은 나날들. 1학년이 지나가기 전에 이미 꿈을 포기했던 것. 청송대에서, 백양로에서, 신촌 거리에서 스쳐 지나갔던 많은 인연들. 이 퍼즐 조각에 무엇을 보태면 세상 고민을 짊어지고 도서관 구석에서 글을 쓰고 있던 내가 나올까.
‘쉰넷의 나’는 ‘스무 살의 나’를 잊었다. 스무 살의 나는 ‘잊어버린 사람’이었다. 스무 살 그때 이후 달려온 34년.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고시를 보고, 치열하게 면접을 보고, 그리고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방송사에 들어가 PD가 되고,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고, 큰돈을 날리기도 하고, 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일념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온 나날들. 이 세상 부조리가 싫어 펜과 돌을 들었었던 스무 살 남자아이, 나는 그 애를 어디에 버려두고 그 세월을 달린 걸까.
그 애를 등 뒤에 두고 나는 정글에서 살아남겠다고 완악해졌고 영악해졌으며 내 아이를 잘 기르겠다고 근시안이 되었고 이기적이 되었다. 그러느라고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스무 살 남자아이가 품었던 인간애와 열정은 낯선 것이 되었다. 그래도, 스무 살 그 후 30년이 넘도록 삶과 세상과 인간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은 한강 작가 덕분에 스무 살의 나를 엉성하게나마 기억할 수 있었다.
54년 삶의 여정에서 ‘잊어버린 나’가 얼마나 더 있을까. 엉성하게나마, 스무 살의 나는 기억했지만, 서른 살, 마흔 살의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타인이 그 잊어버린 나를 대면시켜 줄 때, 영영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탄식하게 되는 ‘나’는 또 얼마나 될까. 두렵지만 이제는 천천히 그 세월의 상자를 열어야 한다. 열어서, 낯선 그 ‘나’들과 인사 나눠야 한다. 잊어버린 데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었겠거니 받아 안아서 모두를 묶어 ‘나’로 세워야 한다. 언제 적 나는 나고 언제 적 나는 내가 아니라고 분별하지 않고 싶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이 생을 잘 마감하고 싶다. 삶 어느 모퉁이에서 한강 같은 이를 만날 일이 또 생기면야 좋겠지만 그것만 바라다가는 진짜 ‘나’를 다시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나는 ‘잊어버린 나’들을 수면 위로 떠올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려 한다. ‘나에 대한 글쓰기’는 그 수고 중 하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