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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친 PD Oct 25. 2024

미국 스포츠 팀의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

미친 PD의 미친 이야기

어린 시절, 메이저리그나 NBA 경기를 보기 위해 AFKN을 기웃거릴 때가 있었다. 새벽녘에 혹시라도 부모님이 나오실까, 소리를 죽여 놓고 불빛이 새어나갈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마음껏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지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지금이야 휴대폰으로도 그런 경기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주요 시리즈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VHS 테이프를 구하기 위해 <세운상가>를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니기도 했다. 불편함과 부족함이 간절함과 감사함을 만들어 냈던 것일까. 꼭 스포츠 분야가 아니더라도 불편함이 없는 현대사회에 간절함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가을 야구가 한창인 지금, 올 시즌 전무후무한 천만 관중을 돌파한 한국 KBO리그에선 전통의 명가 <기아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가 31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어 화제고 미국 역시 가장 많은 팬덤을 가진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가 월드시리즈에서 만나 미국 전역이 들끓고 있다. 두 팀의 대결은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명문 팀 간의 대결일 뿐 아니라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의 가장 강력한 MVP 후보인 오타니 쇼헤이와 애런 저지의 맞대결로도 굉장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24 월드시리즈에서 만난 다저스와 양키스

그런데 메이저리그를 얘기할 때마다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양키스>나 <다저스>같이 비하의 뜻을 담고 있거나 <레드삭스>나 <화이트삭스>처럼 양말 이름을 왜 팀명으로 쓰냐는 것.  

    

그래서 미국 스포츠 팀의 이름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으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물론 초기에는 많은 팀들이 생겼다 없어지고  팀 이름이나 연고지가 수시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 복잡한 변화를 모두 다루는 것은 힘들겠지만, 지금 현재 존재하는 팀의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변화 되었는지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 일 것이다.      


1. 지역의 정체성 또는 별명이 팀의 이름으로

최근에는 스포츠단을 창단할 때 팀명을 짓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 중에 하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뉴욕에서 창단한 야구단을 그저 <뉴욕 베이스볼 클럽>이라고 짓는 식이였다.       


중계방송도 없던 시절, 사람들은 경기 결과나 소식을 오직 신문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변변한 팀의 이름이 없다 보니, 현장에서 경기를 보고 경기소식을 전하던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그날 경기의 내용이나 팀의 특징에 따라 팀의 별명 혹은 별칭으로 기사를 작성하곤 했는데 주로 역사가 오래된 명문 팀의 경우에는 이것이 유래가 되어 팀명으로 굳어진 경우가 많다.      


<뉴욕 양키스>는 아마도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가장 구단 가치가 높은 팀일 것이다. 여기서 대번에 드는 의문이 있다. 보통 우리가 ‘양키’라고 하면 미국 북동부에 사는 서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알고 있는데 그런 ‘양키의 무리’라는 뜻의 <양키스>를 팀명으로 하다니?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원래 ‘뉴욕’의 이전 이름은 ‘뉴 암스테르담’으로 네덜란드인들이 원주민들로부터 맨해튼 섬을 사들여 정착했던 네덜란드인들의 도시였다. 그러나 1664년, 제2차 영국-네덜란드 전쟁 이후 영국이 이 지역을 네덜란드로부터 빼앗으면서 당시 영국 국왕 찰스 2세의 동생인 요크 공작-훗날 제임스 2세-의 이름을 붙여 <뉴요크>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뉴 암스테르담

하지만 새롭게 밀려들어온 영국인들의 눈에 원래부터 살고 있었던 네덜란드인들의 무리가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영국인들은 그곳에 정착해 있던 네덜란드인들을 가장 흔한 네덜란드식 이름인 ‘얀 카스(Jan Kass)’라고 비하하며 부르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철수’에 해당한다고 할까- 이것이 영어식 발음으로 변하면서 ‘양키(Yankee)’가 되었다. 그러니까 원래부터 미국 북동부 지역에 살고 있던 네덜란드인들을 ‘양키’라고 부른 것이었는데, ‘양키’는 세월이 지나 원래 그곳에 살았던 토박이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1904년 뉴욕 프레스의 짐 프라이스가 경기 소식을 전하면서 기사에 뉴욕에서 온 ‘양키들’이라는 의미로 <뉴욕 양키스>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이것이 그대로 팀명으로 굳어지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구단가치가 높은 팀 중의 하나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네덜란드와 관련된 이름은 또 있다. 바로 NBA의 최고 명문팀 중의 하나이자 우리 세대에서는 ‘패트릭 유잉’이라는 전설적인 센터를 배출한 <뉴욕 닉스>. <닉스>의 본래 이름은 <니커보커스>이다. ‘니커보커’는 엉덩이 쪽이 넓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승마 바지 비슷한- 바지를 하는데, 주로 네덜란드인들이 입었던 바지이다. 네덜란드인들이 많았던 초기 뉴욕은 당연히 니커보커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고 그래서 그 사람들을 ‘니커보커스’라고 불렀으며 이 '니커보커스' 로부터 <뉴욕 닉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니커보커를 입은 사람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의 상대이자, 박찬호, 류현진 등의 코리안 메이저리거를 배출하고 최근에는 오타니 쇼헤이로 대표되는, <LA 다저스> 역시 재미있는 팀명의 유래를 가지고 있다.

‘Dodge’라는 동사는 ‘요리조리 피하다’ ‘회피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동사에 -er을 붙인 ‘Dodgers’는 ‘요리조리 피하는 사람들’ ‘회피자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바쁠 것 없이 넓고 평화로운 LA에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아닌가.      

브루클린의 트롤리 전차를 피하는 사람들

<LA 다저스>의 원래 연고지도 뉴욕이었다. 본래 팀명은 <브루클린 다저스>. 뉴욕시절부터 <양키스>와는 아주 강력한 라이벌 관계였는데 당시 뉴욕의 브루클린은 정말 많은 ‘트롤리 전차’가 다녔다고 한다. 길에는 여러 갈래의 철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그 사이로 그곳 사람들이 ‘요리조리’ 다니던 모습에서 양키스 팬들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놀리는 의미로 ‘다저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우리 생각으로는 ‘양키스’나 ‘다저스’를 자신들을 비하한다고 느껴 절대로 팀명으로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다양한 혈통의 이주민들이 모여 살던 초기 미국에서는 자기들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브루클린 다저스>가 항공노선이 보편화되어 먼 거리의 도시들과의 원정 경기가 가능해진 1950년대 후반, 미국 스포츠단의 서부개척 시대에 발맞추어 서부의 대표적인 도시 LA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최고의 인기 구단 <LA 다저스>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서부개척 시대에 같이 연고지를 이전한 팀이 또 하나 있다. <LA 다저스>와는 죽고 못 사는 사이, 바로 ‘바람의 손자’ 이정후의 소속 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다. 이 팀 역시 원래 연고지는 뉴욕이었다. 뉴욕 시절 팀 이름은 <뉴욕 고담스>. 맞다. 배트맨에 나오는, 우리가 아는 그 ‘고담시티’의 ‘고담’이 맞다.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고담시티의 지도가 뉴욕과 매우 흡사하다고 해서 뉴욕의 별칭으로 불렸다.


뉴욕 고담스는1885년 어느 한 경기에서 믿기지 않는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그 경기를 전한 기자가 기사에서 이들을 뉴욕에서 온 ‘거인들’이라고 불렀고, 이를 흡족하게 여긴 구단이 아예 팀 이름을 <고담스>에서 <자이언츠>로 바꿨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초기 뉴욕의 대표적인 팀이었지만, 점차 베이브 루스나 루 게릭 등의 슈퍼스타가 등장하면서 <양키스>에 밀리게 되었고, 결국 <다저스>와 함께 1958년 서부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탄생하게 되었다.      

자이언츠라고 불리는 뉴욕 고담스 선수들에 대한 기사

2. 팀을 상징하는 색깔이 팀의 이름으로    

초기 야구팀의 유니폼은 모두 흰색이었다. 염색 기술이 지금과 같지 않아 색깔 있는 유니폼을 입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야구가 급격히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구단들은 돈을 벌기 시작했고 거기에 교통 여건이 좋아지면서 현재와 같은 홈 앤드 어웨이 경기 방식의 리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더러워진 유니폼을 쉽게 빨 수 없었던 원정 팀들은 색깔 있는 유니폼을 착용하기 시작했는데, 전통은 계속 이어져 지금까지도 홈팀은 흰색, 원정팀은 유색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흰색 유니폼을 입던 시절에는 경기를 하는 선수가 어떤 구단의 소속인지 구별하기 힘들었고 기자들이 경기 관련 기사를 쓸때에도 특별한 이름이 없던 팀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항상 고민이었다. 이 때문에 각 구단들은 팀 간 구별을 위해 색깔이 있는 양말을 신었고 기자들도 <보스턴 레드스타킹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타킹스> 등 스타킹 색깔로 팀을 부르기 시작했다. 유니폼은 점차 긴 바지로 바뀌어 무릎까지 오는 스타킹 대신 양말을 신게 되었는데, 이로써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팀 중의 하나인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같은 구단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메이저리그 진출 기에 추신수가 뛰었던 <신시내티 레즈(Reds)> 역시 <레드 스타킹스>에서 유래되었다가 아예 팀 이름을 <Reds>로 바꿨다. 이 팀은 1950년대에 팀 이름을 한 번 바꾸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에 의해 촉발된 '매카시즘'의 영향 때문이었다. 미국 사회 내에 암약하는 공산주의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사회 각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유린당했는데 이 이념의 광풍 속에서,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깔인 <Reds>란 이름을 지속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원래 양말색깔로부터 팀 이름이 유래되었기 때문에 <레드삭스(Redsox)>로 변경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이미 <보스턴 레드삭스>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던 상황에서 중복을 피하게 위해 결국 <레드레그스(Redlegs)>로 팀명을 바꾸게 된다.  매카시즘 광풍이 수그러질 무렵이었던 1959년, 다시 신시내티는 원래 팀명인 <레즈(Reds)>로 돌아오게 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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