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고뇌
평범한 하루였다.
특별히 힘든 일도, 특별히 좋은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유 없이 마음이 내려앉았다.
무언가가 나를 안에서부터 천천히 가라앉히는 듯한 감각.
그 중심에는 하람이 있었다.
자꾸만 그가 떠올랐고, 보고 싶고, 그리웠다.
아무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무거운 걸까.
웃고 떠들 수 있는데도, 속은 점점 더 침전물로 가득 차갔다.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하람과의 인연의 끈은 정말로 끝난 걸까.
묻고, 또 묻는다.
답은 없는데, 마음만 흔들렸다.
난 그저 그냥 저 끝도 안 보이는 지하, 깊은 심해 속으로 추락하고 있을 뿐이었다
며칠 뒤,
하람이 누군가와 영화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게 누구였을까.
여자인지, 아닌지.
작은 단서 하나에도 마음은 요동쳤고, 나는 또 그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사실 나는 그가 어떤 모습으로든 내 곁에 있기를 바란다.
연인이면 물론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 삶 속에, 내 세계 속에, 여전히 하람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으니까. 그건 집착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과, 그 속에서 내가 사랑했던 나 자신까지 소중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고, 그때의 나도 사랑했다.
하람이를 생각하면 ‘보고 싶다’라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사귀던 그때 나의 모습도, 하람이의 모습도, 같이 있던 우리의 모습도, 더운 여름 같이 손 잡고 걸어가던 우리의 배경이 그립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중
우연히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누구랑 있냐는 질문에 동창이 재현이랑 있다는 답을 그냥 잘못 들었겠지 했다.
근데 얼굴을 보니 나의 첫사랑이었던 재현이와 너무 닮아 있었다.
동창에게 어디 학교냐고 물었을 때 나와 같은 학교가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처음엔 그냥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빛이 스쳐 지나간 순간, 진짜라는 걸 알았다.
숨이 막히듯 가슴이 조여들었다.
당황, 놀람, 충격이 한꺼번에 몰려와 머릿속이 하얘졌다.
웃음과 욕이 섞여 나왔지만, 사실은 버겁고 벅찼다.
하람이 때문에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 나타난 재현이,
심지어 하람이랑 썸을 타며 재현이의 팔로우를 끊었는데,
얼마 전 다시 팔로우가 오고 나서 학교 이외의 공간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게 뒷골목이라니,
난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번 주의 나는 그리움과 충격 사이에서 흔들렸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과거와 현재 사이에 갇혀 있었다.
분명한 건 하나뿐이다.
나는 아직도 하람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재현이와의 마주침은 그냥 묻어둔 첫사랑과의 추억을 마주했다는 것.
이 마음이 언제까지 지속될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의 첫사랑이던 재현은 가슴 한편 서랍 속 첫사랑으로 남아 있는 과거 속 나의 사랑이고,
하람은 독기뿐이던 내 세상을 조금 내려놓고도 편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주고,
헤어졌음에도 여전히 내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주는 나의 애정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