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이란

날 죽인다, 날 살린다

by JE

처음엔 사랑이 뭔지 몰랐기에

난 민우를 사랑이라 생각했다.
민우를 좋아하던 때의 나는 사랑이 아니라

안정을 원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옆에 서면 세상이 덜 무서울 것 같았고,
그 옆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약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민우는 세상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그 얼굴 뒤에 나는 나를 숨겼다.
사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그를 통해 나를 지키고 싶었다.
누군가의 ‘연인’이라는 타이틀이
내가 외롭지 않다는 증거처럼 느껴졌으니까.
그건 사랑의 모양을 한 의존이었다.
그래서 그 관계가 끝났을 때,
나는 그를 잃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곁에 있던 나’를 잃어서 아팠던 것이다.
그땐 몰랐다. 난 민우가 나의 첫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사랑이 아니라, 나는 단지 버림받는 게 두려웠던 것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의 아픔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다시 약해질까 봐,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워서였다.
그다음엔 재현이었다.
그 애는 달랐다.
그를 만났을 때, 나는 이미 조금은 무너져 있었다.
사람을 믿는 법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도
조금씩 잃어가던 시기였다.
그런데 재현은 그런 나를 보면서도 도망치지 않았다.
그의 시선에는 불쌍함이 아니라 이해가 있었다.
그게 나를 녹였다.
그를 사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변했다.
조금 더 다정해졌고,
조금 덜 예민해졌고,
조금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변화는 거짓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래서 재현은 내 첫사랑이었다.
그는 나를 바꾸게 만들었고,
그 변화가 내 안에 오래 남았다.
헤어지고 나서 나는
재현이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그와 함께 있던 ‘그때의 나’를 그리워했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던 나,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던 나,
그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의 잔인함을 알았다.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무너지는 고통. 그게 나를 오래 괴롭혔다. 그 사랑은 끝났지만, 그 상처는 여전히 가장 깊숙한 서랍에 잠들어 있다. 먼지가 쌓였지만, 가끔 열면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다.

진정한 나의 첫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하람이었다. 나는 그 애에게서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는 법을 배웠다. 그 애 앞에서는 꾸미지 않았고, 애써 강한 척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였다. 나의 허물, 나의 상처, 나의 불안까지 다 보여줬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에게 내 ‘진짜 아픔’을 숨겼다.
힘들다는 말, 슬프다는 말,
그런 건 이상하게도 그 애 앞에서는 쉽게 꺼내지 못했다.
사랑을 믿고 싶었지만,
여전히 상처받을까 봐 겁이 났다.
하람을 사랑한 건,
내가 ‘사랑을 믿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그 애 앞에서는 방패를 내려놨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나를 가장 무방비하게 만들었다.
나는 하람을 통해

‘사랑이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것이다.
그 무너짐은 이전의 어떤 아픔보다도 조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건 미움이 아닌 수용의 무너짐이었다.
그 애를 탓할 수 없었고, 사랑을 후회할 수도 없었다.

왜냐면 그 사랑 안에서 나는 가장 ‘나’ 다운 나였으니까. 민우에게서 나는 두려움을 배웠고, 재현에게서 변화를 배웠고, 하람에게서 내려놓음을 배웠다.

세 번의 사랑은 세 번의 죽음이었고, 세 번의 부활이었다.

나는 사랑을 통해 구원받았다.

그리고 사랑 때문에 무너졌다.

그 모순이 내 삶의 전부다.

나는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사랑이 나를 죽일지라도,
그 죽음 안에는 늘 어떤 생이 숨 쉬고 있었다.
사랑이란 결국 나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다.
그건 나를 지치게도 하고, 살게도 만든다.
나는 그 애정으로 독기를 품었고, 그 애정으로 부드러워졌다.
그 애정은 나를 찢어놓았고, 그 애정은 나를 다시 꿰매놓았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사랑은 나의 구원이며, 나의 멸망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태어나고, 그 사이에서 살아간다.
사랑은 낭만이 아니다.
사랑은 모든 시작이자, 모든 끝이다.
그리고 그 끝마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