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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연 잔연

완전히 사라져 가는 연기

by 작가

아미타 불 을 속으로 되뇌곤 한다. 믿는 신은 없지만 부처님에게 의지하면 어떤 느낌일까? 손목에 찬 염주를 엄지손가락으로 한 알씩 조심스레 세어가며 나무아미타 불을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나무아미타불이 아니다. 나무아미타, 불이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니 묻지 않는 것이 좋겠다.


떠난 걸 아는 당신 이름 한 글자 씩, 13번, 26개의 나무 구슬에


한평생 닳고 닳으며 살아왔던 기억

여기엔 움푹 파인 음각으로 새겼어요


더 이상 닳을 것 걱정하지 말아요

이젠 세상이 닳아 당신과 함께 하겠죠


한 글자씩 그리워하며 고이 쓰다듬으면

언젠가 그 구슬 매끈해져

마침내 닿을 수 있어요


그 모든 게 다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나,


역겹게

내가 현실의 벽을 넘고 있으면


이상



상상을 던져주고


벽너머로


희망인지 또 다른 절망일지


그래서인지 이상만을

추구할 수가


아미타 불 아미타 불


이런 적이 없었던가

결국엔 잊어가겠지


도전할 것이 사라진 요즘

난 그 무엇도 증명해 낼 수가


하기 싫은 것은 응전이며

하고 싶은 것은 도전이다


응전과 종식

속박과 자유

종속과 독립

예속과 해방


도전과 증명

투쟁과 승리

인내와 성공

열정과 눈물


이거 꿈이야?

소녀 내게 물었다

나 아무 대답하지 못하여

소녀 재차 묻는다

이거 꿈이지?

.

.

.

소녀 아무말 없이 내게 다가와

고이 감았던 눈에 입술 맞춘다

전연 타오른 꿈과 눈물 한방울

잔연 흐리게 올라 너도 지운다



전연: 완전히

잔연: 사라져 가는 연기


우선 서울에서의 삶을 잠정 중단하고, 부산으로 내려간다.


서울은 내가 지금까지 거취 했던 모든 공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지만, 작가라는 불확실한 꿈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대학교에서 수학한다는 강력하고 즉각적인 유인을 그 즉시 합리적으로 압도할 수 없다. 최소 부모님에게는, 아마도.


그러니 부산으로 내려가고 싶다. 부산은 내가 태어난 곳이자, 여전히 나의 고향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곳이다. 부모님이 거주하고 계시는 곳으로도 갈 수 있겠지만, 어렵다. 이상적인 방향으로의 이동이 아니라서 가정 내의 크고 작은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다. 부산에서 따로 싼 값에 방을 구해서 지낸다. 초기 자본금은 부모님께서 지원해 주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 그 외 유지비와 생활비는 스스로 벌어서 사용하고, 그래야만 한다. 내 선택으로 사회와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울타리에서 벗어났으니 책임질 것은 책임지자. 아마 원룸에서 살 게 될 것이다.


자 이젠, 글을 써야 한다. 매일 쓴다. 하루도 빠짐없이, 한 글자라도. 내 글쓰기는 항상 신내림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어떤 날은 죽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 글만 써지겠지만 그럼에도 적어나간다. 예술이 내 종점이지만, 아직 다른 분야에 손을 대기에는 힘이 분산될 여지가 있으니 8대 2 정도의 비율로 가져간다. 글쓰기 8, 그림 및 사진 및 음악 2.


이젠 더 이상 내 마음대로 편하고 쉬운 글만 써서도 안된다. 대학생활을 하면서는, 학업과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힘을 아껴 썼지만 이젠 최선으로, 최고로 해야 한다. 원래는 있는 생각을 변형하고 깎아내서 썼다면, 없는 생각을 있게 하여 쓰는 과정을 더해야만 하겠다.


에세이와 순수창작물(소설)의 가장 큰 차이다. 에세이는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열심히 다듬고 깎아내기만 하면 된다. 허나 소설은 기반이 될 무언가부터 열심히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래서 힘들다. 힘들다고 하지 않았던 것은 과거의 내게만 허용된 것이다. 학업을 내주었으니, 다른 것을 더 챙겨야 할 때다. 목표를 두고, 주기적으로 공모전과 대회를 나가며 일상의 흐릿한 선에 명확하게 맺고 끊음을 표시해 준다. 출간도 한다.


다작을 하니, 다상과 다독도 한다. 생각은 사실, 언제나 하기 때문에 구태여 큰 비중을 인위적으로 둘 필요는 없다. 그래도 하루 한 시간 정도 잡아둔다. 다독. 최소 이틀에 한 권은 읽어야 한다. 장르는, 가려도 되고, 가리지 않아도 된다. 자연스럽게 많이 읽는다. 다독 다상 다작의 반복. 그리고 또 다른 분야의 씨앗에도 조금씩 물을 준다. 그림도 그려주고, 음악도 듣고.


그렇게 매일을 예술과 씨름하면, 얼마 안 가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겠다. 원래 뭐든 균형이 중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예술만 하고는 살 수 없다고 친구가 그랬다. 맞는 말이다. 그렇기에 적당한 기본 삶의 틀은 지켜나가야 장기적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 다행히도 내겐 운동과 아르바이트라는 아주 좋은 수단이 있다. 일주일에 최소 5번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함이 주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 5~6시간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그리고 운동도 매일 하며 예술과 더 자주 접하며 끊임없이 진동할 일상을 단단하게 고정한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고, 헬스장을 다닌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또는 두 번 정도는 바다에 간다. 바다에서 글을 쓸 수도 있고, 그저 누워있다가 올 수도 있고. 그리고 글을 쓰고.


몸무게는 68~70킬로 선을 유지한다.


항상 깔끔하고 단정한 용모를 유지한다.


2주에 한 번 정도는 외할머니를 뵙는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서울에 간다.


2주에 한 번 정도는 여행을 간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비행기를 탄다.


그렇게 1년 정도 하다 보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흐리멍텅하게 초점 없는 눈으로 살지 말아라. 네 손에 들린 것 하나 없어도 밝고 명철한 눈빛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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