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잔잔히 일렁이고 있던 물결처럼.
2/24
개인적으로 너무나 길게 느껴졌던 겨울방학도 끝이 났다. 이젠 정말 개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다행히 기숙사에 다행히 입사할 수 있었고, 그래서 개강 이틀 전인 토요일에 서울로 올라왔다. 고등학교 때도 기숙사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서로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 최신식, 고급의 시설이 아닌 기숙사였다. 그래도 뭐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 적당히 나의 관점을 미화시켰다. 그리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집으로부터 멀리, 홀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나의 마음조차 알고 있는 걸까,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모르겠다. 고등학교 1학년 이후 3년은 성장한 지금, 고등학교 때의 기숙사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 느껴졌다. 약간 고등학교 3학년 처음과 느낌이 비슷했다. 당시 나는 첫 고3의 생활에 적응하느라 첫 일주일이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과분한 1년을 보냈듯이, 여기서도 언제나 그랬듯 나는 적응하고 잘 지내리라 확신한다. 그러니까 3년 동안의 성장은 나 자신을 어떻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어떻게 힘듦과 새로움에 유연하게 대처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 알려준 것 같다.
어느새 해는 지고 서울에서의 첫날도 저물어간다. 룸메이트가 한 명 있지만 아직 오지 않아서 누군지 모르는 상태다. 괜히 또 고등학교 때가 너무 그리워졌다. 스스로에게 한 번 더 되뇌었다. 언제나 처한 상황에서 소중함과 감사함, 그때만의 특장점을 찾고 그 상황에서 최대한 누리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하자. 그 상황이 지나면, 결국엔 후회와 아련함이 남기 마련이다.
끝날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한 나의 고등학교 3년이 쏜살 같이 지나고 나서야 알겠다. 정말, 절대로 한심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고 할 수 없었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너무나도 달라질 것들이 많다. 그 시간들. 왜 그땐 몰랐을까. 정확히 이 감정. 후회와 결을 달리하지만 맥락은 같은 이 느낌. 시간은 앞으로만 가기 때문에 미래에도 난 이 감정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난 알고 있으니까, 최대한 이 감정을 느끼지 않게 해 보자. 그때가 온다면, 난 비로소 그날 죽어도 여한이 없지 않을까.
2/25
나의 예상보다 좋은 밤을 보냈다. 보일러가 시원찮아서 방의 온도는 추웠지만 잠을 설칠 정도는 아니었고, 침대가 그리 편하진 않았지만 딱히 불편하지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선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며 실내 온도가 2도 정도 높아져서 기분 좋게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아침으로는 간단하게 엄마께서 싸주신 견과류와 두유, 내가 직접 내린 커피를 마셨다. 벌써 내일이면 개강이란 게 믿기지가 않는다.
오늘 할 일을 차분히 훑어보고, 어젯밤과는 달리 한 층 더 밝아진 에너지로 하루를 시작한다. 평소 같았으면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시간을 보냈겠지만, 이상하게 하루 할 일을 일찍 시작하게 됐다. 차근차근, 체크리스트에서 할 것들을 지워나갔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하루가 시작된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그렇게 난 하루가 다 가기 전에 토플 공부까지 마무리하며 해야 할 것들을 다 끝냈다. 더 이상 내게 주어진 오늘의 소임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만히 할 것을 생각해봤다. 언제나 그랬듯, 주변에서 달릴 곳을 찾기 시작했다.
난 전부터 서울에 오면 꼭 한강에서 러닝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찾아보니 한강이 너무 넓어서 마땅히 코스를 정하기 쉽지가 않았다. 난 그나마 대중교통을 타고 가깝게 갈 수 있는 뚝섬 공원으로 가기로 했고, 지하철을 타러 출발했다. 서울 지하철이 복잡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지만, 부산에서 여행하면서 충분히 적응된 덕분인지, 전혀 어려움 없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한강은 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이래서 서울에 온 건가 싶기도 하고, 사람들도 많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코스가 계속 직선 형태로 이어져서 좀 지루하다는 점이었다. 더군다나 강바람이 내가 달리는 반대 방향으로 강하게 불어서 평소보다 숨이 차는 느낌이 훨씬 빨리 들었다. 그래도 3km는 달려주고, 다시 왔던 길로 3km를 걸어왔다. 한 번 땀을 내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몸은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는 다이소에 들려서 개강 이후 사용할 노트 8권을 샀다. 8000원을 사용했다. 집을 나오니 모든 게 돈이다.... 현명하게 잘 사용해야겠다.
기숙사에 돌아오니 7시가 좀 넘은 시각이었지만 배가 고파서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로 결정했다. 학교 앞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난 지금까지 살면서 맥도널드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내가 이전에 살던 곳에 맥도널드가 없기도 했고, 딱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진 않았다. 그래서 처음 시도해 보았지만, 다음에 또 먹을 생각은 없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조금씩 설레는 마음을 정리하고 내일 있을 일정들을 머릿속으로 펼쳐나갔다. 내일은 동아리에서 개강 파티도 있다. 솔직히 딱히 가고픈 마음은 아니지만, 친목 도모를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일단은 가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떤 느낌인지는 봐야 되니까!
2/26
첫날이었다. 모든 게 새로웠고, 그래서 하루가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7시에 일어나서 아침으로 기숙사 식사를 먹었고 점심은 학식을 먹었다. 내가 맛에 대한 기준이 낮은 건지, 정말 맛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난 충분히 만족하며 먹을 수 있었기에 행복했다. 방학 때는 아침은 거의 거르다시피 살았지만 이제는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챙겨 먹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주중에 운동을 해야 했다. 헬스장도 내가 직접 알아봐야 했다. 모든 걸 스스로.
대학교 수업들은 모두 만족스러웠다. 비록 8개 과목 중 2개밖에 안 들었지만,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실재적인 학문을 다룬다고 생각했다. 저녁에는 예정돼 있던 동아리 개강 파티에 참석했다. 그 안에서도 조를 나눠서 진행이 됐는데, 난 개강 파티에 참석한 것을 하나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난 하고 싶은 동아리가 몇 개 있는 상태였다. 그중에 하나가 작곡 동아리였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우리 조 안에 작곡 동아리를 하시는 선배가 계셔서 좀 자세히 알아볼 수가 있었다. 작곡 동아리가 내실이 없이 진행되는 그런 곳일까 봐 신청을 고민하고 있었던 찰나에 생긴 기회였다. 다행히 작곡 동아리는 생각보다 더 진지한 동아리였다. 내가 원하는 방향과 비슷한 것 같았다. 그 사실 덕분에 오늘 하루를 기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바로 동아리 신청을 하고 말이다. 첫 시작을 기분 좋게 끊었다. 내일은 1교시가 예정돼 있어서 어서 잠에 들어야 했다.
나는 오늘 컨디션이 좋지 못해도 참고할 일을 하는 법을 배웠고, 내가 내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잘하고 있다!
2/27~3/1
이후로는 비슷한 일상이 반복됐다. 한 가지 강의를 수정하는 바람에 난 1교시가 4개가 되었다. 하하하하....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면, 똑같은 시간이지만 더 높은 효율로 할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
대학교 수업에 대해서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학교야 말로 주입식 교육 그 자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복되는 이론 강의식 수업. 하지만 달랐다. 교수님들이 하나같이 무언갈 배워가는 것을 굉장히 중시하셨다. 난 그런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정말 시간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실, 내가 좋은 점만 보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지금까지의 강의 모두가 ‘진짜’라는 느낌이 든다. 뭐 이제 시작인데, 이렇게 좋은 점만 보고 나아가는 것도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첫 주라서 교수님들이 대부분 ot만 진행하시고 수업을 일찍 끝내주셨다. 3시간짜리 수업들은 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솔직히 1시간이 넘어가면 좀 힘들어지기 시작하는데, 3시간 수업이 하루에 2개 있는 날은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느낀 것 중 한 가지는 정말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비단 대학뿐 아니라 사회에 던져질 20살에게 모두 해당되는 것일까. 확실히 부모님의 밑에서 벗어나서 거의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하고 움직이는 시기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느냐에 따라 하루의 차이는 엄청나다. 나태해지고자 하면 한 없이 시간을 버리며 보낼 수 있고, 발전하고자 한다면 정말 무궁무진하게 수많은 기회가 열려있는 곳이다. 적어도 내가 느낀 대학이란 곳은 그런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포기하지 말고 잘 나아가야 한다. 여긴 중고등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힘들다고 담임선생님과 상담하며 마음을 풀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현명하게 헤쳐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체감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의지라기보단,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조만간 생기겠지.
특히 목요일을 마무리 한 뒤 저녁과 3월 1일은 내게 조금 힘들었다. 딱히 원인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도 빈번하게 힘든 상황이 닥칠 수 있으니 이걸 타파할 수 있는 '방법'만 알아내면 됐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여러 경험을 앞으로 하다 보면 뭔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내가 동아리를 많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들은 대부분 2개만 해도 충분히 많다고 하지만.. 뭐 내가 남들처럼 살고 싶은 게 아니니까 굳이 그 기준에 맞춰야 될 이유는 없다. 동아리를 4개 할 생각이다. 독서, 작곡, 러닝, 음식 관련.
새롭게 시작한 일상의 첫 일주일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잘 해냈고, 생각 외의 해결되지 않는 변수는 단 한 개도 없게 만들어준 운명에 감사하다. 앞으로도 항상 열린 마음과 눈으로 많은 걸 받아들이고, 느끼고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