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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Feb 17. 2024

빵 고르듯 원서 고르기

추천 원서의 한계


어째서 원서는 완독이 어려울까?

요즘 들어 맘에 드는 책을 원서로 읽는 시도들이 유독 많이 보인다. 원서를 읽기보다 소비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어찌 됐든 원서 읽기에 대해 '해볼 만한'일이나 '올해 꼭 해낼 일' 정도로는 생각하는 듯하다.

 


원서는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이나 선택 기준이 있지 않은 한 대체로 추천을 받게 되는데 이 부분이 원서 완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나 자신이 거의 고려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서의 첫 장을 펴기 때문이다. 혹자는 뉴베리Newbery 수상작은 읽을만한데 내용이 유치(?)하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는 읽고 싶은데 너무 어렵다고도 한다. 취향과 난이도 사이에서 잠재독자는 혼란스럽다. 취향이 있어도, 없어도 원서를 고를 때 난감한 건 마찬가지인 셈.



조금 가볍게 접근할 필요는 있다. 빵을 고르는 마음으로. 나는 무엇에 매혹되어 여기까지 왔는가. 오늘은 뭘 고르지?



원서 읽기의 본질은 '독서'이다. 영어 원서든 중국어 원서든 어떤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각기 제 그릇에 담았을 뿐이다. 어떤 책은 모국어 책으로 읽었다가 원문이 궁금해져서 원서를 찾아보기도 하니까. 결국 하나의 이야기에 대해 다른 표현 방식인 것이다. 평소 읽는 모국어책의 독서량이나 독서 수준을 체크해 볼 필요는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편독을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게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잘 읽히는 작가의 문체, 장르, 더 솔깃한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니까. 다만 두껍거렵거나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책을 덮어버리는 습관은 원서 읽기에도 영향을 준다. (물론, '당신과 맞지 않는 책을 읽고 있다면 지금 당장 덮으세요. 모든 책의 목표가 완독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책들이 시중에 널려있다. 경우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모국어 책도 약간 버거우면 덮어버리는데 원서를 어떻게 한 장 한 장 읽어 낼 수 있겠는가. 대단한 목표로 이 읽기를 시작하지는 않으므호기로운 도전은 해프닝으로 끝나 서재 깊숙이 꽂힌다.



평소 읽는 모국어책들을 점검해 보자. 소설이나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자기 계발서에 진심인 사람인지, 벽돌책도 너끈히 읽어내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나의 취향을 알고 나서 해야 할 일은 난이도를 살펴보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취향이 맞으면 난이도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므로 이 순서를 지키는 편이다. 왜 읽는지가 분명하거나 이유 없이 좋을 때 '왜 이걸 이렇게까지 읽고 있는 거냐'의 과정에서 앞으로 나아간다.



원서를 본격적으로 읽고자 계획한 사람들은 각종 지수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를 테면 AR, SR, Lexile 지수와 같은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 달달 외우던 정의를 나도 거의 기억하지 못하며 사실상 원서를 고를 때 참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만든 리딩 레벨 참고용 지수이므로 아이들에게 읽힐 책을 고를 때는 도움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취향이 확고하고 모르는 내용에 대한 인내심이 비교적 탁월한 어른들은 다섯 손가락 법칙이면 충분하다. 관은 자주 이성보다 정확하다.



읽고자 하는 책의 첫 페이지를 편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씩 펼친다. 3개 정도가 적당하나 독서의 목적이나 읽는 장르에 따라 4개나 5개가 나오더라도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가령, 소설보다는 자기 계발서나 창의성에 관한 책들이 목차를 통해 전체적인 주제를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모르는 단어가 있어도 맥락으로 커버가 된다. (아이들이나 영어 초급자의 경우, 뉴베리Newbery와 같은 소설이 더 쉬울 수도 있다.)


누가, 무슨 장르를, 왜 읽느냐에 따라 추천 원서는 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크로와상이 인생 디저트일지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스러기 많은 버터 덩어리이며 크로플 따위를 양산하는 해괴망측한 사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책도 어느 정도 읽고 원서도 장르와 난이도에 맞춰 골랐다. 약간 어렵긴 하지만 읽을 만은 하다. 그런데 왜 완독은 힘들까? 우리는 책 한 권을 읽으면서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얻으려고 한다. 누군가가 수개월, 혹은 수년을 고민해서 쓴 책을 휘리릭 독파할 욕심을 내는 것이다.


책은 살아내는 만큼 읽힌다는 말이 있다. 가끔 책이 나랑 맞지 않아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반드시 완독은 하지 않아도 돼!'라는 말이 주는 해방감이 덫이 되어 어렵거나 맞지 않는 것은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작 독서의 메리트는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편견과 알지 못했던 세계에 '귀 기울이는 것' 아닌가?



약간의 인내는 필수다. 다만, 여기에 관용도 조금 더해보는 것이다. 한 문장 한 문장 꼼꼼히 읽지 않아도 되고, 어떤 묘사는 내 마음에 꽂히지 않는군. 읽히지 않고, 와닿지 않는다는 느낌도 하나의 감상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학교에서 독해와 문법에 집착하던 습관을 내려놓고 맥락으로 커버할 수 있는 책부터 도전해 보면 어떨까? 취향과 난이도를 모두 충족하고 싶어 하는 독자들은 소설을 읽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좋은 자기 계발서(습관 형성이나 창조성 계발 등) 또한 삶을 흔들어 놓는 인문의 일부이므로 편견은 접어두어도 좋겠다.



가볍게 빵을 고르는 마음으로, 하지만 원서보다 나 자신을 먼저 살피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길. 원문의 맛은 에프굽의 맛이다.



*자기 계발서는 <Be Your Future Self Now>, <Atomic Habits>, 삶의 태도나 창의성에 관해 읽고 싶다면 Elizabeth Gilbert나 Cheryl Strayed의 책을 권한다. 그 밖에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 많지만, 수요 없는 공급일 것이므로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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