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러닝

by 뭉클


어쩌다, 러닝

작년 이맘때쯤 나는 짝꿍과 탁구 연습에 한창이었다. 테니스(정확히는, 테니스복)에 로망이 있던 나와, 함께 할 운동을 찾고 있던 짝꿍은 나의 운동 신경을 고려하여 탁구 시작했었다.


탁구는 테니스보다 해볼 만하겠지만 별로 당기지 않았다. 하지만 짝꿍의 인내심 넘치는 트레이닝 덕분에 나는 저질 체력과 가망 없는 순발력으로도 6개월가량을 용케 버텼다. 짝꿍은 수시로 내가 서브 연습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서 자세를 교정해 줬고 수업이 끝나는 날은 내기 탁구도 같이 쳐주었다.


하지만 동체시력은커녕 '공을 전혀 보지 않는다'는 놀라운 분석과 함께 탁구에 대한 흥미도 점점 시들해졌다. 나는 늘 빵에 대한 애정과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으로 내적 갈등을 겪는데 이즈음 덜 먹고 운동하기를 실천하다 살을 잃으며 면역력도 함께 잃었으므로 잘 먹으며 취미로 삼을 운동이 하나쯤은 꼭 필요했다. 루틴으로 삼을 일정정도의 고통이 나를 자유롭게 하리라!


처음 러닝을 대했던 태도는 탁구를 시작할 때와 다르지 않았다. 운동 신경도 없는 주제에 러닝을 너무 우습게 봤다. 할 줄 아는 운동이 변변치 않은 사람들만 달리기를 하는 줄 알았으니까. 이미 마라톤 대회를 여러 번 나가서 메달도 꽤 받아왔던 동생은 내게 러닝의 멋짐에 대해 한참을 설명했고 순발력보다는 심폐지구력이 더 필요한 종목이니 구기종목보다는 나에게 잘 맞을 거라고 추천해 줬다.

그렇게 러닝을 시작했다. 처음엔 혼자서 3km 정도 격일이나 주 2회 뛰었다. 점차 자신감이 붙고 달린 후 밤공기의 상쾌함과 함께 마음의 번민이 사라지는 기쁨을 알아갔다. 5km까지 무리 없이 달리는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짝꿍과 뛰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여름 초입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불발되었던 유럽여행을 계획 중이기도 해서 체력 단련 겸 다이어트를 위해 10km까지 달렸다. 물론 7km를 넘긴 지점에선 괴성도 지르고 가끔 걷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러닝

겨우내 찐 살들 앞에서 자신감이 부쩍 없어졌다. 글을 매일 쓰다 보니 체력이 필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충분히 먹고 자주 달리자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봄이 온다. 다시 길 위에서 자유로워지기. 활력 되찾기.


작년에 러닝을 하면서 자신감도 체력도 붙어서인지 시작하자마자 바로 5km를 뛰었다. 다시 10km를 목표로 뛰어보자 결심하자 짝꿍이 내게 마라톤 대회에 신청하고 본격적으로 준비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10km? 마지막엔 겨우겨우 걷다 뛰다 완주 코스 커버하는 수준인데 괜찮을까?



러닝메이트의 힘

10km든 하프든 풀코스든 뛰어본 사람들은 함께 뛰기 즉, 러닝 크루의 중요성을 한결같이 언급한다. 최근엔 부부끼리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는 경우도 꽤 자주 눈에 띄었다. 힘들어서 대충 뛰고 싶어도 같은 목표를 갖고 있는 사람과 뛰면 놀랍도록 더 높은 성취를 보인다. 내가 '할 수 있어!'라고 되뇌면 옆에서 '이 정도쯤이야!'라며 한술 더 뜬다.


목표 거리의 반을 넘어서면 각종 기합과 기이한 괴성, 확언이 난무하는데 후반부에서 더 끄트머리로 갈수록 그냥, 뛴다. 경보로 갈지언정 걷지는 않는다. 내적 다짐도 있지만 러닝메이트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적어도 민폐는 끼치고 싶지 않다.


속도를 내서 시간을 단축하는 것보다 걷지 않고 계속 뛰는 훈련을 하는 게 더 먼저라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한 달 후에 있을 마라톤 대회에서 10km 코스에 도전하기로 했다. 벅차다. 제안도, 격려도, 지속하는 힘도 러닝메이트로부터 나오고 나의 성장을 기특해하는 사람도 러닝메이트므로 해는 나를 러닝 라이터Running Writer로 키우는 우리의 면면을 기록하고 싶다.


이 글을 시작으로 수요일 연재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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