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크루

by 뭉클



"토요일 아침 6시 반에 같이 뛰실 분 있으신가요?"



5~6km를 꾸준히 뛰어왔지만 러닝 크루들은 뛰는데 진심이며 구력도 대단하므로 나는 조금 망설였었다.


내향형 러너의 머릿속은 대략 이러하다.

같이 뛸 사람이 필요해... 아니 안 필요해.. 아니 그래도 같이 뛰면 더 뛸 수 있어... 그래도 안... 아니 필요해..


채팅방에 들어와서 인사를 하자마자 '체력이 괜찮은지, 많이 뛰어봤는지' 묻는 통에 나는 좀 더 쪼그라들어 있었는데 막상 만나니 모두 친절했다. 특히 러블리영이란 아이디를 가진 언니(예쁘면 무조건 언니)는 내게 선을 넘지 않는 친절을 보여주었고 긴장은 금세 풀렸다. 내일 합천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를 뛸 예정인데 안 나오고 쉬려다 가볍게 뛰러 나왔다는 언니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어머, 어머, 대단하세요. 멋져요."를 연발하며 몸을 풀었다.


K는 그날 마침 이런저런 이유로 아침에 일어날 수 없었고 나는 홀로 크루들 사이에서 뛰게 된 것이다.


6시 반이 되자 사람들이 꽤 모였다. 달리기 시작! 오늘은 7km 정도 되는 코스를 뛸 예정이었다.


북적이던 사람들은 금세 각자의 페이스로 달리면서 제각기 그룹을 짓게 되었는데 다 같이 모여 뛴 적은 처음인 내 눈에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나를 중심으로 앞쪽으로 펼쳐진 레이스. 늘어진 거리, 각각의 점, 나는 어디쯤일까? 브런치에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 인생이라는 마라톤, 모두 이런 느낌일까? 문학적 은유로도 이어졌다.


5km까지는 기존에 해오던 방식으로 곧잘 호흡과 리듬을 잘 유지했다. 5km를 넘어가자 호흡이 가빠오고 조금씩 다리가 느릿느릿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풀코스를 뛴다던 언니들은 저 멀리서 빛나는 별처럼 보였다. 가볍게 달리면서 걷는 사람처럼 수다를 떨었다. 이따금씩 꽃이 많이 피었다는 말이나 일상의 이야기를 나눌 만큼.


빛과 소금 같은 언니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뛰면서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저 언니들은 내일 풀코스를 뛸 몸이잖아. 너는 다 뛰기만 해도 용한 몸이고. 오버 페이스는 해롭다. 저 언니들을 놓치지만 말자. (나중에 든 생각인데 언니들이 기다려준 게 틀림없다. 인정하기 싫지만 분명 더 천천히 뛰었을 것이다.)


살다 보면 미래를 다 알고 살아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러닝을 하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게 된다. 이 길의 끝을 알고 있는데 다리가 천근만근일 때의 마음이라니.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 시간도 결국 끝이 난다.


내가 헐떡거리며 도착점에 다다르자 모두들 박수를 쳐주었다. K 없이 혼자 뛰어서 그런지 그런 환대 앞에서 수줍기도 했지만 뿌듯함도 컸다.


우리는 다 뛰고 나서 사진 한 방 찍고 쿨하고 헤어졌다. 다음 러닝을 기약하면서! 나는 헤어지면서 빛과 소금 언니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덕분에 끝까지 뛰었어요. 고마워요. 풀코스 완주도 응원해요, 파이팅!"


나도 언젠가 '빛이 되어야지' 하고 결심했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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