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내는 습관

일상생활

by 소박하며화려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얼마큼 알고 사는 걸까. 어제저녁을 먹으면서 문득 내가 습관성 짜증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 톤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 나를 보면서 '지금 무슨 이유로 화를 내는 거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대체 왜 화를 내는 건데. 아까부터.

남편의 목소리도 무거워질 기미가 보인다. 다행히 참는 눈치다. 저녁식사를 앞에 두고 싸우는 건 불편하다.

이유라고 할 것은 딱히 없었다. 그저 저녁을 급하게 차리느라 동동거리고 있었고 오래 삶은 것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주꾸미 머리를 살짝 데치다가 먹물이 터져 나왔다. 냄비 안은 더러운 흙탕물처럼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막내는 놀러 온 친구와 집을 어지르고 있었고 남편은 오늘 온 택배를 뜯어보며 바닥에 비닐을 너저분하게 펼쳐놓고 있었다. 필요하지 않다고 여러 번 말한 공기청정기 대신 남편은 선풍기에 필터를 다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필터로 쓸 부직포 같은 무엇을 구매하였는데 이름 모를 무언가가 거대한 롤처럼 말려 집에 도착했다. 막내는 거대 휴지라며 좋다고 타고 놀았다.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느끼고 따지고 보면 가족들을 위해서 구매한 것인데 집에 무언가가 늘어나는 것이 내심 짜증이 났다. 여름에만 꺼내놓을 선풍기가 집안 곳곳에 놓였다. 자잘한 짐들은 청소기를 돌릴 때 성가시고 뻥 뚫린 공간에서 살고 싶은 내 마음에도 짜증을 안겨준다.

화를 낸다는 것은 상대가 잘못을 했을 상황인데 사실 이런 것들을 놓고 언성을 높일 이유는 없다. 밥을 차려놓고 나는 마음으로 초를 세고 있었다. 빨리 먹으러 오라고 부르는 목소리는 점점 화가 실리고 있었다. 화낼 이유를 찾는 사람처럼. 몸이 무겁게 느껴질 때에 택배 상자, 비닐, 화장실에 막내가 슬라임을 만든답시고 세면대에 펼쳐놓은 잡다한 것들을 치울 생각을 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당장이 아니면 밥을 먹은 후에 하면 되는 거고 누구도 안 치운다고 뭐라 하는 것이 아닌데 나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쫓겨 다급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화의 업이 잉태한 에너지는 오폭(誤爆)한다. -코이케 류노스케. '번뇌 리셋 연습장'

남편도 맞서서 화를 내었다가는 평화로운 저녁시간을 망칠 뻔했다. 십 년이 넘어가는 결혼생활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여기서 한 발짝 더 움직였다가는 싸움으로 번질 것 같은 경계선을 서로가 안다는 것이다. 나도 남편도 서로 감정의 마지노선을 보는 눈이 생겼다. 싸움은 막았지만 저녁 식사시간의 공기가 무겁다.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나 속으로 몇 번을 따져보았지만 입이 안 떨어진다. 다행히 남편이 자연스러운 대화의 시작을 던졌고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대화를 받았다. 가끔 화를 내면 1초 전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찰나의 치밀어 오르는 것만 참았으면 이 시간이 즐거웠을 텐데. 사람의 마음은 왜 이리 충동적인지. 방을 치우라고 하는 이야기에 입이 나온 막내는 모든 것이 아빠 때문이라고 화를 냈다. 아홉 살짜리 인생과 나는 다를 바가 없었다.

9788996023449.jpg 도치의 머리 위에는 화를 낼수록 커지는 먹구름이 생긴다.


주꾸미 머리가 터지기 전으로 되돌아가 보고 저녁을 차리려고 불을 댕기기 전으로 되돌아가 보았지만 어디를 봐도 분노의 요소는 없었다. 오후, 점심, 아침 오늘 하루를 거꾸로 생각해본다. 이유 없는 분노는 자신에게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무언가 잘하고 싶은데 되지 않는 마음들이 요즘 들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한 달밖에 안 되는 시간도 전과 후의 나는 다르다. 한걸음 내딛으면 삶은 욕심이 되고 좋아하는 것은 집착이 된다. 생애 전반을 놓고 보면 아직 후반기에도 접어들지 않았는데 무언가 이뤄보고 싶은 마음은 급하다. 열심히 산다고 살아보았는데 후에 아무것도 손에 남는 것이 없을까 봐 자꾸 나를 질책한다. 그 누구도 내리지 않는 평가를 우리는 자신에게 몇 번이고 점수를 낸다.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한 나는 말없이 바닥을 보이는 국그릇에 미역국을 채운다. 빨갛게 완성하지 못한 주꾸미 볶음 맛이 나쁘지 않은지 묻는다. 편하다는 것은 아무 때나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이해해주는 관계는 항상 감사해야 하는 관계이지 내킬 때마다 짜증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잘 대해야 하는데 나는 종종 그 중요한 사실을 잊는다.

IMG_20190315_093515~2.jpg 화가 날 때는 3초만 생각해보자. (번뇌 리셋 연습장-코이케 류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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