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된다는 건

일상생활

by 소박하며화려한

늙는다는 건 어떤 것일까. 지금의 상황과 가끔 비교를 해본다. 질병으로 점점 표정이 없어지는 어머님을 보면서. 우리만 가면 아이가 돼버리는 아버님을 보면서. 동네에 유일한 술친구였던 장군님이 얼마 전 돌아가셔서 이제는 같이 마셔줄 사람이 없다는 아버님이 막걸리를 세병이나 주문하시는 탓에 남편은 배가 부르게 마셨다.

파킨슨 병을 앓으신지 2년째 되어가시는 어머님은 성격의 안 좋았던 부분만 남아 간다. 울었다가 웃었다가 감정의 변화도 심해진다. 아버님이 흔드시는 막걸리병 속의 내용물처럼 성격의 굳은 심지 부분만이 걸쭉한 잔여물이 되어 남는다. 쓸데없는 고집, 필요 없는 자존심, 남보다 급한 성미. 눈물로 호소하는 어머님의 말을 백 프로 다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얼마 전에 알았다. 그런 어머님을 아버님은 혼자서 책임지시고 있다. 같은 노년의 길을 걸으면서 먼저 넘어진 옆사람을 일으키는 일은 힘이 든다.

남편은 나보다 열두 살이 많다. 생애 같은 시기를 걷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시간은 같지 않다. 끝까지 함께 늙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종종 찾아온다. 아직 어린 자식들을 키우는 시기에 그런 걱정이 웬 말이겠냐만은 벌써 노인의 길을 걷는 시부모님을 곁에서 보면서 나의 노후도 상상을 안 해볼 수 없다. 노인이 되어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혼자서도 즐거울 수 있는 힘. 늙어서 자식에게 걱정거리로 남고 싶지 않은데 그 생각은 아들 덕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전쟁세대 아버님도 같은 마음이신 것 같다.

나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시부모님. 82년생 김지영 세대의 지영이가 베트남 참전용사인 노병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격주로 주말이면 시부모님과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아버님은 식사 때마다 약주를 하시는 분이라 한 번씩 기분이 상할 만한 대화가 이어진다. 연세가 드시면서 술이 점점 약해지시는 것인데 술기운이 봉인된 마음을 풀면 그때 쏟아내시는 말들이 나와 남편의 마음에 충돌을 일으킨다. 노인들은 과거에서 살고 말투는 순하지 않다. 옛날 희생하던 어머니상을 그대로 나에게 투영시킨다. 정치에 있어서는 더욱이 대화할 수 없다. 며느리이기에 참고 나는 점점 지워져 갔다. 나를 잃는다라는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남편은 부모님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분노에 대한 감정을 포기로 대응한다. 부모님보다도 윗세대에 계신 그분들은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발끈하는 마음을 누르기가 힘들었다. 난 끓어오르는 30대의 중반을 지나고 있으니까.

언젠가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가 방영되던 적이 있었다. 우리 아버님은 신구 할아버지 캐릭터에 조금 가깝다. 제사 중요시하고 아내 희생을 당연시하는. 자존심에 말 안 해도 자식들이 다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 교수랑 결혼한 첫째 딸이 맞고 산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울며 사위를 때리던 장면이 마음에 찡하고 꽂힌 적이 있었다.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무뚝뚝했던 과거의 모습과 정작 아버지가 품고 있었던 마음이 달랐었다는 부분도. 드라마의 중반이 넘으면서부터는 신구 할아버지가 맡으신 그 역할에 연민을 품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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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은 나눌수록 교집합 같은 부분이 생긴다. 시대가 달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고유의 감정 같은 부분이다. 표현 방식, 행동 양식이 달라도 아버님이 나에게 주는 감정, 또 내가 아버님한테 드리는 감정들은 분명 맞아떨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순간의 기분은 상해도 어쨌든 나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신다라는 믿음 같은 것들이 결혼생활이 지속될수록 쌓여가고 있었다. 나를 잃어간다라는 마음은 슬슬 갖지 않게 되었다. 나는 누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그대로인 것으로 지켜지는 것이니까.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늙은 시부모님을 감싸 안고 있었다.

늙어간다는 것은 힘이 없어지는 것. 할 수 있던 것들도 먼발치에서 구경만 해야 하는 것. 피부에 기름기가 없어지고 국물 우러난 후의 멸치처럼 쪼그라든다는 것을 늙어가는 시부모님을 보며 느낀다. 대화할 상대가 필요해도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임종의 이유로 떠나간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미칠 듯 화가 나다가도 몇 주만에 더 희어지고 줄어든 어머님 머리가, 굽어진 아버님의 뒷모습이 그런 감정들을 다독여준다. 언젠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김치를 해다 드리는 친정 엄마한테 억울하지도 않냐고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고생하는 엄마를 곁에서 보면서도 딸밖에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미워서. 좀 깍쟁이처럼 살라고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었다. 불쌍하지 않냐고. 늙는다는 것이 불쌍하지 않냐고.

누구든 노인의 때를 맞이한다. 나도 그럴 것이고. 힘이 없어질 때에 먼저 가신 시부모님을 기억하는 날들이 올 것이다. 무릎이 아플 때. 또는 지팡이를 짚게 될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조금만 더 노인의 마음을 미리 이해해보려 한다. 늙어간다는 건 생애 주기를 끝낼 때가 가까워졌다는 의미도 있지만 늙어갈 사람들에게 그 과정을 가르쳐준다는 의미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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