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간

일상생활

by 소박하며화려한

자신만의 무엇을 가져라. 요즘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인 것 같다. 시간부터 물건까지 자기 자신의 취향이 담뿍 들어간 소중한 무언가를 확보해놓으라는 것은 바쁜 생활에 치여사는 현대인들에게 약간의 숨 쉴 공간을 내어주기 위해서 나온 이야기들일 테지.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도 자신만의 서재를 만들라는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나의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서재를 갖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은 예전부터 있었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책상에서 무언가를 끄적거려보고도 싶어 지고 가끔 컬러링 북을 놓고 색칠이라도 하려고 하면 개방된 공간에서 하는 것이 무언가 쑥스러웠다. 아이들도 지나다니면서 엄마가 무엇을 하나 궁금한 눈초리다. 특히 글을 쓸 때에는 불쑥 끼어들어 말을 거는 가족들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나의 서재는 주방에 있는 커다란 식탁이기 때문에 식구들에게 항상 개방이 되어있다. 저녁을 먹으면 얼른 행주질을 해서 이전의 공간으로 돌려놓는다. 그럼 세 아이가 차례대로 이곳에 와서 문제집을 풀거나 숙제를 하고는 철새처럼 떠난다. 거기까지가 나의 임무의 완료다. 아이들이 사라지면 나는 한결 느긋해져서 넓은 식탁을 점유하고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한다.


얼마 전 시집올 때 장만해왔던 식탁의 의자가 부러져 새로 6인용 식탁을 구입했다. 의자만 망가졌을 뿐 식탁은 멀쩡해서 딸의 방에 넣어놓고 책상으로 쓰려고 마음먹었다. 물론 나만의 책상으로. 벽에는 편안한 느낌의 포스터 한 장을 붙이고 바람이 드는 창가에 풍경을 하나 달아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딸아이는 책상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고 결국 아이와 아이의 친구에게 양보해주어야 했다. 나만의 서재 역할은 그래서 새로 들어온 6인용 식탁이 이어받게 되었다. 벽에 붙이려던 포스터는 결국 구입하지 않았다.


식구들이 사라지면 식탁에 나타나는 나는 마치 저너머의 사람처럼 느껴진다. 같은 시공간을 살고 있지만 다른 차원의 사람처럼. 그때만 허락되는 내 공간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나의 공간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짐은 많지 않지만 딱히 맞는 자리도 없으며 공간이 있다고 해서 생활이 달라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루하루 글을 쓰겠노라 마음을 먹었지만 한주, 두 주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깨달은 사실은 중요한 건 공간이 아니라 나의 하루에 몰입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게을렀고 끈기도 부족했다.


새로 산 식탁의 벤치의자는 누우면 내 몸에 꼭 맞는다. 무얼 쓸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에는 누워서 부엌 천장을 본다. 그러고 보니 정해진 공간이 없는 나는 집안 곳곳이 나의 것이다. 소파에서 핸드폰으로 무얼 쓸 수도 있고 안방,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글은 쓸 수 있다. 남편은 안 보이면 아빠 방에 있냐고 아이들이 묻지만 엄마인 내가 보이지 않으면 아이들은 이곳저곳을 찾는다. 오히려 자유로운 기분이다. 어느 한 부분에 정의되지 않는 사람처럼 자신이 느껴졌다. 잠시 눈을 붙였는데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고 내 몸이 떠오르는 꿈을 꾸었다. 천장 위까지 둥둥 떠올라가 전등갓을 손으로 쓸어보거나 벽지에 묻은 손이 닿지 않은 얼룩들을 닦았다. 그렇게 온 공간을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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