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생활
그간 노고에 감사드린다면서 주말, 연휴에도 굳이 점심을 먹으러 직장에 나오라는 심보는 뭐냐는 친구의 카톡에 어설프게 자다 눈을 떴다. 새로 지은 건물로 발령이 난 그녀는 하루에 열세시간 일을 한다. 대기업에서 론칭한 음식 브랜드의 식당이 직장 안에 입점되어 있어도 그 한 끼 식사가 쉬는 날 출근을 정당화해주지는 못한다. 주말도 일하는데 아들 얼굴 본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다면서 요즘 홍역 도는데 주사는 맞혔냐고 애들 걱정으로 안부를 묻는다. 결국 엄마들의 대화는 자식 걱정으로 끝이 난다.
일하는 엄마와 집에 있는 엄마. 아이들에게는 어떤 엄마가 더 나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어릴 적 나를 떠올려보면 엄마가 좀 프로페셔널한 멋진 여성이었으면 했다가 어쩔 때는 내 옆에서 잘 챙겨주었으면 싶다가 그랬었다. 우리 집은 일층이 식당, 이층이 집이었고 엄마는 식당 주인, 가정주부이기도 하였다. 엄마의 일은 바쁠 때는 정신없이 바빴으며 한가할 때는 고통스럽게 한가했다. 그런 엄마에게 여러 가지 여성상을 대입해보았던 것을 보면 엄마와 딸은 서로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모녀관계 이전에 여자대 여자인. 우리 딸은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친구들은 아직 그 분야에 몸담고 있는데 나만 멀리 떠나와 멈춘 시간으로 산다는 것은 아직도 불쑥불쑥 나를 괴롭게 만들고는 한다. 몇 년 일하지도 않았던 결혼 전 근무했던 직장은 가끔 꿈에 나올 때도 있다. 그리고 매번 시간에 쫓기어 일을 끝마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눈을 뜬다. 그리울 때도 있지만 다시 돌아가지 않는 건 다른 무언가를 도전하며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엄마, 아내, 직장여성의 중심을 잘 잡아갈 자신이 없기도 했다. 정작 아이들은 일하지 않는 엄마의 사정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이들 눈에 비칠 엄마의 모습을 걱정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기도 하다. 정말 염려해야 하는 것은 자신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내 인생을 사는 것이다.
생각이 복잡할 때는 당장 내일 죽는다라면 어떤 마음일까라고 상상해 보는 것이 단순한 해답을 내놓는다. 죽는다면. 어제 나는 무얼 했지.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나.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나. 내가 원하는 답은 후자였다. 그래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종종 글을 쓰고 밥 세끼를 하며 그 외 잡다한 집안일들을 한다.
올해는 안 해본 것들로 또 한 해를 채워보려고 한다. 목공도 배워보고 싶고 이유가 없지만 마음이 가는 일들을 해보고 싶다. 시에서 대여해주는 텃밭도 신청해놓았다. 이런 소소한 여정들은 당장은 눈에 보이는 어떠한 결과도 가져다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려가든 우회하든, 곁길로 새든 죽음이란 종착역을 향해가는 우리들 신세는 다 같은 것이니까. 행복했다고 웃을 수 있는 자양분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