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차이

일상생활

by 소박하며화려한

둥글게 차오른 보름달 앞에서 소원을 빈다. 막내가 받은 용돈을 저에게 맡기게 해 주세요라고. 막내도 소원을 빈다. 엄마가 제가 번 돈을 뺏어가지 않게 해 주세요.

막내는 명절 특수로 받게 된 용돈들을 '벌었다'라고 표현한다. 노동이 전제되지 않고 얻어진 돈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이학년의 씀씀이에 맞지 않는 금액을 아이의 수중에 두는 것이 나는 영 찜찜한 생각이 든다.

어릴 적 엄마가 시집갈 때 준다며 뺏어간 용돈들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나의 첫 컴퓨터가 되어주었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유용하게 사용된 건지는 몰라도 나는 명절 때마다 모은 돈으로 가지고 싶었던 무언가를 사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당장 살 것도 아니면서 친구들과 아이쇼핑은 왜 이리 즐겼는지. 돈이 없고, 조른다고 사줄 엄마도 아니지만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위시리스트의 목록들을 남몰래 작성하고는 했었다.

교복을 입었던 10대의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이거나 소가죽으로 된 다이어리, 운동화, 가방 따위였다. 엄마 몰래 용돈을 주는 외삼촌 덕분에 딱 한 번 거금을 들여 장지갑을 사본 적이 있었는데 아끼고 아껴 쓰다가 가죽이 이쁘게 손때가 탈 때쯤 동대문 인파에 밀려 소매치기를 당하여 잊어버리고 말았다. 잘 간직했더라면 두고두고 마음에 들어했을 텐데. 용돈도 물건도 나의 손 안에서는 길게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이런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엄마가 된 후의 나는 과거의 엄마와 같다. 아이의 돈을 모아서 써버린 것은 아니다. 차곡차곡 놔두었다가 계절별로 필요한 옷이나 신발을 사준다. 성인이 되어서야 그동안 모은 돈을 보여준 엄마와는 그런 면에서는 다르다. 아이도 자신의 돈으로 철마다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견물생심이라는 이치는 태초부터 타고나는지 아이는 손에 들어온 돈을 놓지 않는다. 낮에는 심지어 소파에 누워 이불처럼 돈을 배 위에 덮고 있기도 했다. 저렇게도 좋아하는데. 조금만 쓰게 해 줄까 마음이 흔들린다. 아이의 위시리스트는 고작 컵떡볶이이거나 슬라임이다. 이천 원, 삼천 원 따위의 조잡한 소품들이다.

엄마의 소원과 아이의 소원이 상반되는 가운데 달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달에게 소원을 들어줄 힘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행히 우리 다섯 식구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 이런 낭만이라도 있어야지. 굳이 중요하지 않은 사실로 죽자고 따지고 덤빌 필요도 없지. 난처한 달님을 위해서 큰 아이가 다수결의 원칙을 제안했다. 누구의 소원이 더 중요하다고 동의하는 사람의 수에 따라서 달이 이루어주면 되겠다고.

그 밤, 우리들 마음속에 누구 편이 더 많았는지는 모른다.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이를 앞에 두고 추석의 보름달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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