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조용히 눈이 내리는 날에는 가만히 창 밖을 지켜보아야 한다. 특히 우리 집처럼 다섯 식구와 그 식구들의 친구들까지 북적이는 곳이면 더 그렇다. 사람들의 소리가 없을 때 얼른 앉아서 고요를 찾아야 한다. 빨래가 밀려있거나 아이들 방에 청소기를 한번 더 돌리고 싶은 마음 따위는 일단 접어놓고.
부대끼며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혼자 있는 시간은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생각이 없어지고 멍해지지만 오히려 생각들을 만들어준다. 사람 소리가 좋아서 아이를 셋을 낳았지만 항상 좋을 수는 없으니까. '뒷바라지'라는 단어가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아무도 관심 없는 일들을 챙겨놓으며 지낸다. 그 에너지로 가족들은 지내고 나의 에너지는 홀로 쌓아놓는 시간이 필요하다.
속 쓰림 약을 달고 사는 것이 걱정이 되어 다른 차를 끓인다. 식탁에 앉으니 빼곡히 빨래가 널린 베란다 너머로 하얀 것이 소금처럼 내린다. 에어컨 위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깜순이도 집안의 제일 높은 곳에서 풍경을 본다.
쌓여서 뽀득뽀득 몇 발자국 밟아보고 올 수 있다면 좋으련만. 비처럼 녹는 눈은 크기가 아침보다 커졌을 뿐이다.
끝까지 네 곁에 있을게. 바닥에 닿는 눈은 첫사랑처럼 고백만 남기고는 사라진다. 어젯밤에 보았던 영화도 그랬다. 여자는 심장을 꺼냈고 남자는 도망치는 삶이 두려워 여자의 손을 놓았다.
삼십 분 후에 돌아올 가족들이 오기 전에 얼른 정적을 담는다. 눈이 오거나 혹은 빗물받이가 부서지게 탁탁 소리를 내는 장마철에는 그 시간을 담아놓는다. 그럼 똑같은 삼시 세 끼를 차려댈 때도, 아이의 교우관계 때문에 고민할 때도, 나아지지 않는 경기에 요동치는 우리 집 경제활동 상황을 바라볼 때도 그것을 꺼내보면서 지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