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에 대한 한 사람의 친절이 그 나라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집순이인 내가 여러 나라를 여행한 건, 모순적이게도 내가 ‘집순이’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눈요깃거리보다도 늘 입던 편한 옷을 입고 둥지 같기도 하고, 요새 같기도 한 안전한 내 공간에서 아무 긴장감도 없이 거니는 게 나의 즐거움이다.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은 <숨어 사는 즐거움>이라는 책도 저술하였는데, 그 제목이 마음에 들어 어렵게 중고로 구입하기도 하였다. 꼭 필요한 일 외에는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걸 꺼리지만, 기꺼이 짐을 싸들고 여행을 떠날 때가 있다. 움츠러든 뒤에 도약하는 개구리처럼, 나도 폴짝 뛰어오를 때가 있는 것이다. 여행이 무조건 ‘도약’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에겐 자신을 뛰어넘는 행위이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는 <공부하는 삶>에서 "휴식이란 모든 노력을 그만두고 삶의 원천으로 물러나는 것을 뜻한다. 휴식이란 어리석게 힘을 다 써 버리는 것이 아니라 힘을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고 평했다. 나는 집에서 얻은 휴식으로 에너지를 마련하고, 밖에 나갈 힘을 얻는다.
첫 번째 도약은 신혼여행지로 유럽을 택한 것이다. 나는 동남아시아의 유럽이라 불리는 코사무이에 가고 싶었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섬에서 옥빛 바다를 만끽하며 독립된 공간에서 휴식을 원했다. 하지만 남편은 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와 스위스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강남의 층고가 높은 카페에 앉아 고민하다가 남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나라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의견, 하지 않을 선택을 해보는 것도 큰 유익이라 생각했다. 자유여행으로 프랑스 파리와 스위스 인터라켄을 돌며 그곳의 냄새를 물씬 맡았다.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타고, 주 먹거리를 음미하고, 오래된 상점에서 쇼핑을 했다. 파리에서는 주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는데 헤매는 시간마저 재밌는 놀이 같았다. 여행을 할 때 유명한 관광지도 가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이방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개인에게 와닿는 한 나라의 국격은 GDP 지수나 환율 보다도 정다운 현지인의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상점째 우리 집으로 들고 싶었다. 귀여운 쿠키>
파리 지하철에서 만난 파리지앵 노신사는 우리가 만났던 프랑스인들과 달리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대부분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물어보는 게 주된 반응이어서 궁금하지 않냐고 물어보자, 이 분은 당연히 남한일 거라며 웃었다. 한국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는 분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프랑스 만화가 원작이라며 친밀함을 내보였다. 깔끔한 정장과 얇은 목도리, 무심하게 들고 있는 사각 가방까지, 상상 속 파리지앵의 모습을 재현한 듯한 차림이었다. 낯선 공간에서 동등한 인격으로 대해주는 대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당연한 일도 ‘외국’, ‘외국인’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차별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반대편에 있는 호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한 적이 있다. 멜버른에서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줄이 매우 길었다. 유모차에 칭얼대는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그 긴 줄을 서려니 일 분 일 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도착한 버스에는 승객이 가득했고, 우리는 이번엔 타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런데 버스는 긴 줄을 지나 우리 앞에 멈춰 섰다. 버스 앞문이 열리자 일본계로 보이는 기사는 우리에게 먼저 타라고 말했다. 버스에 타려고 대기 중인 승객들은 아무 불평 없이, 어쩌면 당연한 듯 물러서 우리가 타기까지 기다렸다. 버스 앞문 옆으로 유모차가 올라서기 쉽게 발판이 내려왔다.
<항구에서 먹었던 피쉬앤칩스. 아직도 생각나는 엄청난 맛!>
물론 모든 버스가 다 호의를 베풀었던 건 아니다. 브리즈번에서 마운틴 쿠샤와 보타닉 가든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기사가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까만 피부의 기사는 랩을 하듯 매우 빠른 영어를 사용했고, 우리가 들어오던 평범한 단어들이 아니었다. 남편과 나는 당황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죄송한데 영어가 익숙하지 않으니, 조금만 천천히 말해달라고 요청할 뿐이었다. 기사는 쉽게 화를 내었고 자리에 앉아있던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쫓겨나는 줄 알았다. 그때, 뒷자리에 있던 검은 피부의 여성이 웃으며 다가와 아이의 유모차를 접어주었다. 빨개진 얼굴로 땡큐,를 외치며 막힌 숨을 내쉬었다.
일본 오키나와에 갔을 때는 ‘친절’이 무엇인가에 대해 배운 사건이 있었다. 큰 마트에서 장을 잔뜩 본 뒤 계산을 하려는데 줄이 매우 길었다. 온몸을 비틀어대는 아이와 오랜 시간이 걸려 결제를 마치자 영혼이 가출한 느낌이었다. 동시에 테이프 하나를 사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 넓은 마트를 다시 뒤져 테이프를 들고 나오는데 끝없는 줄에 다시 아연실색했다. 내 마음을 어찌 읽었는지, 계산대 앞에 있던 일본인 할아버지가 먼저 계산하라고 양보해주셨다. 어찌나 고맙던지, 모든 일본 사람이 다 친절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이 외에도 해외여행을 하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그 나라 여행의 이미지가 생겼다. 그리고 한 사람이 베푸는 호의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 지 깨달았다. 이후로 한국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고 노력한다. 집 근처에 외국인 학교가 있어 외국인을 자주 만나는데, 되도록 친절히 대하려고 노력한다. 한국말을 전혀 못 하는 일본인 가족을 자주 만나 한국 생활에 도움을 주고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떨어져 노는 인도 아이가 내 아이와 놀 수 있도록 말을 걸었다. 또 다른 날, 무리에 끼지 못하는 러시아 아이가 있어 내 아이와 같이 놀게 했다. 박노해 시인은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의 저서 <사람만이 희망이다>에서 피력한다. 내가 받은 친절은 감동으로 다가왔고 감사함으로 새겨졌다. 외모가 다르다고 쳐다보지 않는 것, 친절한 미소로 화답해 주는 것 같이 소박한 몸짓뿐이지만 내가 아는 감동을 조금이나마 흘려보내고 싶다.
초고 20220926
퇴고 2022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