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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Nov 25. 2022

축제 같은 김장 100포기

너무 오래 아팠던 사람은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금요일 이른 오후에 일찍 길을 나섰지만 벌써 고속도로는 막히고 있었다. 11월 셋째 주 토요일, 김장하는 날에 맞춰 하루 먼저 나선 참이었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제대로 김장에 참여한 적이 없다가 이번에는 처음으로 ‘일손’이 될 수 있었다. 요리를 할 때면 인터넷 레시피를 찾아보기도 하지만, 결국엔 엄마 손맛을 떠올리게 된다. 음식의 간이 엄마가 해주었던 그 맛인지, 눈으로 보기에 그 색감과 얼추 비슷한지 저절로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고추장이며 된장, 국간장까지 다 엄마가 손수 만들어 주신 것들을 가져와 사용하다 보니 주변에서 엄마 요리와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래도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김치’이다. 시금치나물을 무치거나 미역국을 끓이는 것은 하다 보니 느는데, 김치는 말 그대로 손맛이기 때문에 도저히 흉내 낼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김장에 참여하고 싶었다. 매해 갖다 먹는 김치에서 조금씩 맛 차이는 있어도 마트 김치에서는 나지 않는 그 깊은 맛을 배우고 싶었다. 한 해 두 해 부모님의 주름살이 짙어져 갈 때마다 고향 집이 빈 모습을 상상해보곤 한다. 부모님이 안 계신 세상은, 지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가득할 것 같다. 닿을 수 없는 사후 세계를 더 믿고 싶고, 부디 그날이 최대한 늦게 오기를, 슬픔에 무뎌져 눈물이 나올 수 없을 만큼 먼 미래에 오기를 바랄 뿐이다. 영영 오지 않기를 바라는 그날이 오면 엄마가 해주었던 그 음식들을 내 손이 추억해주기를 꿈꾼다. 화려하고 세련되지 않아도 정갈하고 손이 많이 가는 그 삼삼한 음식들을 통해 엄마를 절대 잊고 싶지 않다. 부모님이 집 안에 쌓여있는, 우리가 어릴 적 쓰던 물건들이나 옷가지 등을 내다 버릴 때면 “우리 죽으면 이거 다 누가 한다니. 우리가 다 해놓고 가야지.”하고 말씀하시곤 하는데 그럴 때면 죽음이 너무 지척에 있는 것 같아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딸린 입이 많아 김장도 배추 100포기를 해야 하는데, 김장을 앞두고 이런 결연한 마음으로 임했다. 내가 먹을 배추는 내 손으로, 엄마의 김치 맛을 내 손으로!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고향 집에 도착해 보니, 이미 내일 있을 김장 준비로 분주하다. 밭에서 배추 100포기를 따서 다듬고, 씻어서 큰 통에 물을 받아 넣고 적당량의 소금을 뿌려 절인다. 무는 채 썰고 마늘은 다지고 대파, 호박, 양파를 나박나박 썰고, 필요한 양념장을 준비한다. 그러니 김장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 토요일엔 여섯 시부터 일어나 새벽밥을 먹고 김장할 장소로 이동했다. 언니와 형부, 큰 집과 부모님과 친하게 지내는 아주머니, 혼자 지내는 아저씨까지 모여 대 김장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알맞게 절여진 김치를 여러 번 헹구어 씻고, 다시 한번 배추 꼭지와 억센 잎을 다듬어 채반에 올렸다. 한쪽에선 넓게 편 김장 매트에 최상의 맛 배합을 찾아 김장 양념을 만들고, 맞은편에선 파김치용 쪽파를 다듬었다. 나는 배추 꼭지를 따서 예쁘게 다듬는 일을 했는데, 물에 절은 배추를 하나하나 품에 안고 다듬으려니 팔과 어깨, 허리가 짐을 싸서 나갈 것 같았다. 결국 남몰래 타이레놀을 먹으며 이어갔는데,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곡소리만 안 낼뿐 끝나지 않는 배추 산과 전쟁을 벌여야 했다.

배추 100포기 중 일부...


  김치에 양념을 묻히는 일보다 그전에 재료를 준비하고 양념을 배합하는 과정이 훨씬 오래 걸리고 힘들었다. 물론 양념을 바르는 게 쉬웠다는 것은 아니다. 배추 백 포기의 잎사귀를 한 입 한 입 펼치며 적당량의 양념을 넣는 건 세밀함과 집중을 요하는 일이다. 양념을 너무 적거나 많이 넣으면 김치의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잎 부분이 아닌 하얀 줄기 부분에 알맞게 묻혀야 한다. 양념을 바르는 사람 말고도, 손에 빨간 양념을 묻히지 않고 뒷설거지를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배추김치 위에 파란 잎을 전체적으로 올리고 굵은소금을 살짝 뿌려야 김장의 맛이 제대로 산다고 한다. 각자의 집에서 가져온 김치통과 자녀들의 통까지 가세해 빼곡한 김치통 산맥을 이룬 뒤에는, 남은 양념에 파김치와 호박지(호박김치), 겉절이까지 담그고 나서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한쪽에서 언니가 부지런히 삶은 수육과 방금 무친 겉절이, 콩나물과 두부를 넣은 된장국으로 점심이 뚝뚝 해결되었다.

말 그대로 '꿀밥'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일회용품을 사용했지만 자연에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재료를 준비하는 것부터가 김장이라면 뒷정리까지도 모두 김장이다. 굳은 고춧가루 양념과 배춧잎들, 갖은양념과 잔해들을 물로 박박 닦고 빨랫줄에 걸고 마당까지 한 바퀴 청소하고 나니 손발이 떨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한때 엄마가 명절이나 김장 이후에 가족들이 다 떠나고 나면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았다고 했는데,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이제 면역이 생기셨는지 김장이 끝난 다음에도 계속 일을 하셨다. 김장을 하느라 몸은 힘들었지만 끊이지 않는 대화 덕분에 축제같이 느껴졌다. 사소한 농담에도 큰 웃음소리가 나고, 어리숙한 행동에도 칭찬으로 격려하고, 서로의 김장 패션에 박수를 치며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평소에는 시간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고 생각했는데, 이날은 내가 시간을 밟고 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허투루 보내는 순간이 한순간도 없다고 느껴졌다. 김장에 참여는 했지만 아직 제대로 할 줄은 모른다. 여전히 부모님 없는 김장은 상상조차 안 된다. 부모님께 이제 연세도 있으시니 일을 줄이고 여행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즐기며 사시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받아 가는 게 훨씬 많다.



  김장을 마치고 앞다투어 거실에 있는 안마기를 차지하려고 줄을 섰다. 코로나 백신을 맞고 난 뒤처럼 온몸이 뻐근했다. 해거름에서야 집에 들어온 부모님은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이셨다. 안 하던 일을 해서 힘든 거라며 고생했다고, 자신은 괜찮다는 아빠는 손을 운동화 솔로 벅벅 문질러 닦으셨다. 손톱에 낀 검은 때와 손바닥의 굳은살은 운동화 솔로 문질러야 조금씩 닦인다고 하셨다. 힘들다고 다 죽어가던 소리를 내던 나는 부끄러워졌다. 진짜 아픈 사람은, 오랫동안 아팠던 사람은 아프다는 말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프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아픈 사람에게 나는 어떤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미국의 존경받는 교육 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로 손꼽히며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파커 J. 파머는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장 어려운 일은 남의 고통을 ‘고치겠다고’ 덤벼들지 않는 일, 그냥 그 사람의 신비와 고통의 가장자리에서 공손하게 가만히 서 있는 일이다. 그렇게 서 있다 보면 자신이 쓸모없고 무력하다는 느낌이 든다. 바로 우울증에 빠진 사람이 이런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거나 힘이 되고 싶을 때 나는 이 말을 떠올린다. 고치겠다고 나서지 않고, 뻔한 거짓말이나 칭찬을 하지도 않고 그저 그 사람의 곁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은 나를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라면, 나 또한 그런 위로를 주고받고 싶다. 고치려 하지 않고 함께 고통 받음으로써 동행하고 고독의 가장자리에서 존경과 믿음으로 힘이 되길 원한다. 김장을 마친 날 밤, 뜨끈한 춘천 닭갈비를 만들어 식탁에 내었다. 축제 같은 김장의 진짜 마무리는 공감과 위로, 칭찬과 격려였다. 그리고 덤으로 빠질 수 없는 맛있는 음식이 함께 했다.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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