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뜯어 가래떡 해 먹기
벚꽃과 함께 쑥이 돋아났다. 연한 청녹빛의 쑥잎이 부드러운 솜털을 달고 쑥쑥 뻗어 나는 계절이다. 하룻밤 사이에도 쑥은 손가락 한 마디씩 자라는 것 같다. 어제 본 잎과 오늘 본 잎의 크기가 다르다. 너무 작아도, 너무 커도 못 먹는 쑥은 제때에 뜯는 게 중요하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쑥이 얼마나 자랐는지 여쭤보자 바로 답장이 왔다.
"제법 자랐어. 쑥 뜯어서 떡해먹게 이번주에 올 수 있으면 와."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바구니를 들고 양지바른 곳을 돌아다니며 쑥을 뜯은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칼질 한 번에 쑥을 깔끔하게 똑똑 떼어냈지만, 나는 온갖 풀떼기가 뒤엉켜 골라내는 게 더 일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래도 좋았다. 어머니를 쫓아다니며 흙장난을 하고 어머니의 냄새가 담긴 바람이 코 끝을 간지럽힐 때면 마치 어머니의 사랑이 나에게 당도한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봄에 쑥이 얼굴을 내밀면 어머니가 생각나고, 쑥떡보다 이야기를 나누며 쑥을 뜯는 재미가 그리워 고향을 찾게 된다. 지난 주말에도 쑥을 뜯으러 고향을 찾았다. 아이들은 시골에 간다는 말에 환호성을 지르며 따라나섰다.
어머니가 생각하는 쑥을 뜯는 현실과 내가 그리워한 풍경은 전혀 달랐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떡을 만들 쌀을 물에 불리고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아침 식사를 하셨다. 아침 여덟 시에 맞춰놓은 내 알람은 무색하게 "쑥 뜯으러 간다는 사람 다 어디 갔어. 한나절 되도록 안 일어나면 어떡해. 쑥 뜯으러 안 가?" 하며 재촉하셨다. 유일하게 늦잠을 잘 수 있는 토요일에 일곱 시도 안 돼서 아침을 먹어야 했다.
높이가 이십 센티미터쯤 되는 빨간색 동그란 작업 방석에 달린 끈을 양다리에 끼고 자세를 잡았다. 고무줄 끈이 Y자로 되어 있어 그 사이에 다리를 쑥 넣으면, 엉덩이에 의자가 매달린 형국이다. 우습지만 쪼그려 앉아야 할 땐 이보다 편한 의자는 없다. 나와 어머니옆에 초등학생인 첫째도 해보겠다고 따라 앉았다. 쪼르륵 앉아 이슬 내린 쑥을 뜯었다. 유치원생인 둘째는 방금 주운 달팽이를 관찰했다. 쑥은 비탈지고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의자는 엉덩이에 달고 있으나 마나였다. 경사진 언덕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고, 가시 덩굴을 피해 쑥을 뜯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쑥을 뜯었는데 이렇게 힘들었던가 떠올려 보았다. 그때는 어머니와 내가 다른 날, 따로 쑥을 뜯었다. 어머니와 같이 있으니 속도는 훨씬 빠르지만 고난도의 기술을 요했다. 전문가를 따라다니는 시답잖은 조수의 탄식이랄까?
쑥 바구니가 아직 바닥을 보이는데 아이들의 흥미가 더 빨리 바닥났다. 첫째는 청개구리를 쫓기 시작하고, 둘째는 민들레 꽃을 따서 모은다. 그마저도 지겨운지 동물 농장이 있는 산으로 뛰어 올라간다. 이윽고 첫째가 미는 밀차에 둘째가 타고 동네길로 내려간다. 얼마 뒤, 밀차에 온 동네를 다니며 뜯어 온 풀을 한가득 싣고 왔다. 염소에게 줄 먹이를 구해 온 것이다. 아이들이 한 수레, 두 수레 실어 나를 때마다 염소들은 이게 웬 횡재인가 두 눈을 굴리며 뛰어와 아이들을 맞이한다. 아이들이 가져온 풀에 시선 고정이다. 아이들은 염소들이 질겅질겅 풀을 씹으며 꼬리를 흔들자, 더욱 신이 나서 염소 몸보신에 힘을 기울인다.
어머니와 한 나절 쑥을 뜯자 얼추 떡을 할 만큼의 양이 되었다. 쑥을 삶아서 불려둔 쌀과 함께 떡 방앗간에 갖다 주면 몇 시간 뒤 떡을 받아볼 수 있다. 쑥을 삶으러 집으로 가기 위해 아이들을 찾으러 나섰는데, 흔적이 심상치 않다. 어머니는 나보다 먼저 아이들의 발자취를 발견했다. 어마어마한 뒤풀이 현장을!
"아이고! 얘네 양파밭에 심어 놓은 양파 줄기 다 잘라갔네. 그것도 큰 것만 골라서 다 잘라버렸으니 이걸 어떡혀. 아이고! 이거 튤립 내가 제일 아끼는 건데 이걸 뚝 분질러 버렸네. 아이고 아까워라."
어머니는 웃음 섞인 통탄을 내뱉었다. 아이들은 조용하면 일친 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아이들은 엄마도, 아빠도 찾지 않고 조용히 자신들의 세계를 넓혀 가고 있었다. 잘 받아먹는 염소들에게 신이 나 이 풀 저 풀 뜯어다 주고 급기야 밭에 급습해 양파 줄기까지 잘라갔다. 아,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새끼들이지만 이 뒷감당을 어찌하나. 나는 눈앞이 노랬다. 양파와 꽃이 안 핀 튤립 잎까지 다 풀인 줄 알고 잘라다 염소에게 준 것이다. 나중에 도착한 남편은 아연실색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온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여. 더 갔다 해. 애들이 뭐 알고 그러간, 그러니까 애들이지"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응원에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활짝 웃으며 다시 염소에게 뛰어갔다. 나도 저렇게 자랐겠지만, 철없이 뛰노는 걸 보니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싶다. 도시에서 책가방 메고 학교에 다닐 때 보면 다 큰 것 같은데 시골에 오면 더 어리게 느껴진다.
방앗간에서 갓 뽑아온 쑥 가래떡을 먹으며 봄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허공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벚꽃, 지상을 알록달록 뚫고 나오는 들꽃,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쑥까지!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첼 카슨'은 "대지는 꽃을 통해 웃는다"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3월 한 달, 아이들 새 학기에 적응하느라 함께 고생하고 나니 이처럼 달콤한 보상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