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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Mar 24. 2023

다섯 살의 하루

사랑스러운 다섯 살 어린이 관찰 일기

푸른이의 아침은 눈 깜박임으로 시작한다. 작은 발을 길게 뻗어 기지개를 한번 켜고, 손을 뻗어 엄마의 머리칼을 만지작 거린다. 엄마가 일찍 일어나 곁에 없을 땐 동그란 엉덩이를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며 웅크린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나 아기 변기에 가서 앉는다. 작은 몸을 일으켜 조그만 손으로 바지를 끌어당겨 입으면, 팬티가 내복 밖으로 나와 있고 허리 밴드는 뒤엉켜 구불거린다.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 곁으로 와서 눈을 맞춘다.


  "우리 푸른이 일어났구나. 잘 잤어? 어이구 예뻐라. 자고 나니 더 예뻐졌네."

따뜻하고 보들보들한 푸른이를 꼭 끌어안고 노래 부르듯 토닥인다.

"예뻐서 예뻐서 푸른이. 귀여워서 귀여워서 푸른이. 쪼꼬매서 쪼꼬매서 푸른이. 멋져서 멋져서 푸른이"

머리부터 볼, 눈, 코, 목, 배, 어깨, 엉덩이, 다리, 발바닥까지 뽀뽀를 하면 푸른이가 배시시 웃는다.

"엄마 그런 노래가 어딨어? tv에서 그런 노래는 안 나왔잖아"

몸에 힘을 빼고 온몸에 뽀뽀 세례를 받던 푸른이가 묻는다. 엄마가 만든 노래라고 알려주면 해사한 미소를 짓는다.

"엄마. 푸른이 배 쭉쭉 내려가라 해줘."

손바닥 하나로 가득 차는 배를 둥그렇게 쓰다듬으며 쑥쑥 내려가라 노래를 부른다. 나의 엄마가, 할머니가 어릴 적 해줬던 리듬에 맞춰 푸른이의 개그 코드에 맞춰 살을 덧대 속삭인다.

"쑥쑥 내려가라. 푸른이 배는 똥배, 엄마 손은 약손. 쑥쑥 내려가라. 응아로 뿌지직 나와라, 방귀로 뿡뿡 나와라, 쉬로 졸졸 나와라. 푸른이 배는 똥이 가득! 엄마 손은 약손이다"

푸른이는 온몸에 힘을 주고 깔깔 대고 웃는다.

"엄마, 푸른이 진짜로 방귀 뀌었어."

"잘했어. 푸른이 방귀 아빠 회사로 날아간다~"

"아빠가 푸른이 방귀 어떻게 했어?"

"얼른 잡아서 먹었지. 아빠가 회사에 있다가 어, 저기 푸른이 방귀잖아. 안돼! 내가 먹어야 돼! 하고 얼른 잡아서 꿀꺽~"

"악~ 더러워. 흐흐흐. 아빠가 푸른이 방귀 맛있대?"

"응. 복숭아 엉덩이에서 나온 방귀라 복숭아 맛이 난대."

"흐흐흐. 아빠 좋아. 보고 싶어. 아빠한테 빨리 오라고 전화해 줘. 푸른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줘."


  요리를 할 때면 자기도 플라스틱 아동용 칼을 가져와 거든다. 사실 거든다기보다는 방해 공작이 맞는 말이지만 스스로 훌륭한 요리사라고 자부하고 있다. 김밥을 말 때면 얼토당토않게 재료를 넣고 김을 쭈그러트리곤 솔에 참기름을 왕창 묻혀 콸콸 발라댄다. 그리고는 자기는 안 먹고, 엄마가 만든 예쁜 김밥만 입에 넣는다.


  네 돌이 지난 푸른이는 놀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푸른이가 식탁에 앉아 밥을 안 먹고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고 있으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건다.

"푸른아. 밥 안 먹으면 다시 애기가 될 수도 있어. 그럼 키즈카페도 못 가고, 주스도 못 먹고, 놀이터에도 못 가. 너무 쪼끄맣다고 달팽이가 와서 업어갈 수도 있어."

푸른이는 깜짝 놀라 얼른 숟가락을 든다. 아기가 아니라 어린이가 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푸른이의 머리는 돌고래 떼가 뿜어낸 물보라 같다. 목 위까지 늘어진 머리카락 끝이 둥글둥글 말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엄마가 애기 머리에 파마해 놨네"하고 말하지만 자연산 세팅 파마이다. 미용실의 이발기 소리와 뾰족한 가위를 무서워해서 몇 번이나 미용실에 갔다가 자르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행히 미용사 출신의 친구 엄마가 집에서 가끔씩 잘라준다. 화장실에 간이 의자를 놓고 앉아 '꼬마버스 타요'를 틀어주곤 순식간에 싹둑싹둑 자른다. 남자아이 치고 머리가 길지만 끝이 동그랗게 말리는 머릿결이 얇고 부드러워 바람에 날릴 때마다 꽃보라가 이는 것 같다.


  계단을 내려갈 땐 엄마보다 앞서 내려가 "내가 1등!"하고 외쳐야 하고, 엘리베이터 버튼도 꼭 본인이 눌러야 한다. 혹시라도 모르는 사람이 버튼을 눌러버리면 내 다리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푸른이가 누르고 싶었는데..." 속삭이며 슬퍼한다.


  놀이터에서 봄 꽃을 마주했다. 푸른이는 꽃을 좋아한다. 꽃 이름을 알려주니 "개나리가 어제보다 더 많이 폈어"하고 종알거리고, 새순을 보며 "새싹도 있네"하고 인사한다. 주먹처럼 열린 목련을 우러러보더니 "우아. 꽃방울이다!" 외치며 깡총거린다. 꽃망울을 어디서 꽃방울이라 잘못 알아들었는지, 꽃이 방울처럼 보여서 그렇게 말하는 건지, 꽃방울이라 외치는 목소리에 웃음이 난다.

  손에 늘고 있던 자동차 그림이 그려진 마스크가 나뭇가지에 걸려 달려가려다 뒤를 돌아본다. "어? 이게 뭐지?" 마스크를 붙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유심히 쳐다본다. 나는 이럴 때마다 대상 물체의 목소리를 내며 푸른이에게 말을 건다.

"푸른아, 나 나뭇가지야. 나도 빠빵이 마스크 쓰고 싶어. 나 그 마스크 줘"

그러면 푸른이는 "안돼. 이거 소중한 거야"하고 대답한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또 생각이 났는지 꺄르륵 웃는다. "나뭇가지가 내 빠빵이 마스크 달래. 아 너무 웃겨. 도대체 어떻게 쓴다는 거야"


놀이터에서 같이 놀던 친구 엄마가 푸른이에게 젤리를 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햄버거 모양 젤리에 푸른이 눈이 왕딸기만 해진다.

"엄마 이거 지금 먹어도 돼?"

식사 시간 전에는 간식을 안 주기 때문에 푸른이는 꼭 나에게 물어보고 간식을 먹는다.

"그럼 먹어도 되지."

푸른이는 좋아서 깡총깡총 뛴다.

"엄마 이거 뜯어줘. 근데 이거 왜 푸른이한테 줬을까?"

푸른이에게 젤리를 뜯어주며 장난스레 대답한다.

"글쎄. 푸른이가 너무 예뻐서 주셨을 것 같은데."

푸른이는 젤리를 받아 들고 아까워서 아주 조금씩 깨물어 먹는다. 진지한 표정으로 자기 생각을 말한다.

"푸른이가 귀여워서 줬나 봐."

푸른이에게는 먹을 거 주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다.


기분이 상하면 "치. 엄마랑 안 놀 거야. 엄마 미워"하고 나비눈을 뜨고 고개를 홱 돌린다.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푸른이를 붙든다.

"안돼. 엄마는 푸른이랑 놀고 싶단 말이야. 푸른이랑 노는 거 엄청 재밌는데. 같이 놀자"

푸른이는 더 단호하게 대답한다.

"싫어. 엄마 미워."

나도 얼른 대답한다.

"엄마는 푸른이 좋아."

푸른이도 이에 질세라 말을 잇는다.

"엄마 싫어. 미워."

옆에서 토라진 마음을 표현하는 건, 나에게 기회를 주고 마음을 풀어달라는 손 내밈의 표현이다.

"엄마는 푸른이 예뻐. 엄청 좋아."

어느새 푸른이는 포도알 같은 조그만 엉덩이를 내 무릎 위에 올리고 앉아 몸을 푹 파묻는다.

"나도 엄마 좋아. 내가 빠빵이 길 만든 거 보여줄게. 이리 와봐."

내 손을 잡아끌며 자기 세계로 나를 초대한다.


해사한 봄을 맞으며, 봄맞이 글로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나의 봄에 대해 써보았다. 언제나 나를 용서해 주고 우주처럼 사랑해 주는 푸른이. 푸른이는 마른땅의 샘 같고, 간질거리는 솜사탕 같다. 푸른이는 나의 봄이다.


그네 타는 푸른이. 뒤에서 밀어줘야 하지만, 혼자서 의자에 앉을 수 있다는 자긍심이 넘친다.






**푸른이는 둘째의 가칭(태명)입니다. 첫째도 둘째도 똑같이 사랑하지만 첫째 이야기는 많이 썼던 지라 둘째 이야기를 기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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