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둘째가 월남쌈이 먹고 싶단다.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재료를 샀다. 썰어놓고 보니 알록달록 예쁘다. 학원 간 막내, 약속 있는 첫째는 없고 저녁엔 둘째만 함께 먹었다. 남편은 힐끗 보더니 라면을 끓인다.
재료가 남아 휴일인 다음날 점심으로도 먹었다. 다들 집에 없어 아무도 안 먹다 보니 의도치 않게 나만을 위한 밥상이 되었다. 내 앞에 정갈하게 차려진 월남쌈 재료와 따뜻한 물이 채워진 접시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
‘나는 한 번도 나만을 위한 예쁜 밥상을 차린 적이 없구나.’
애들을 위해 남편을 위해 밥상을 차렸지만 정작 내 입맛을 생각한 나만을 위한 밥상은 없었다. 라면조차 나만 먹기 위해 끓여보지 않았다. 먹고 싶다는 요리를 해주면서 정작 내 입맛을 생각해 요리를 한 적이 없다. 내 아이, 내 남편은 내가 있어 그렇게 해주지만 나를 챙겨주는 이 없이 나를 가장 뒷전으로 미루어 두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가족들이 늦잠을 자는 주말이면 일찍 아침산책을 나간다. 그리고 꼭 카페를 들러 커피와 간단한 디저트를 나를 위해 주문했다. 타인 돌봄과 집안 돌봄으로 답답함이 몰려오는 시기에 그 시간들은 잔잔한 위로가 되었다.
재테크를 위해 카페 출입을 줄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커피 마시는 그 시간은 정신 건강을 위한 의료비 대신이라 생각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경제적 효율성 보다 자기 돌봄이 더 우선인 시기가 있다.
그즈음 처음으로 나에게 얘기해 주었다.
‘너, 지금까지 잘 왔다. 잘 해왔어. 고생했어.’
그리고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데 눈물이 났다.
주말 아침인 오늘도 여전히 가족을 위한 된장찌개를 끓이고 밥상을 차린다. 영하 11도의 날씨에도 이미 산책 후 커피 수혈을 한 나는 그 기운으로 다시 요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