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론 Dec 17. 2023

나를 위한 요리

갑자기 둘째가 월남쌈이 먹고 싶단다.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재료를 샀다.  썰어놓고 보니 알록달록 예쁘다. 학원 간 막내, 약속 있는 첫째는 없고 저녁엔 둘째만 함께 먹었다. 남편은 힐끗 보더니 라면을 끓인다.


재료가 남아 휴일인 다음날 점심으로도 먹었다. 다들 집에 없어 아무도 안 먹다 보니 의도치 않게 나만을 위한 밥상이 되었다. 내 앞에 정갈하게 차려진 월남쌈 재료와 따뜻한 물이 채워진 접시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

‘나는 한 번도 나만을 위한 예쁜 밥상을 차린 적이 없구나.’


애들을 위해 남편을 위해 밥상을 차렸지만 정작 내 입맛을 생각한 나만을 위한 밥상은 없었다. 라면조차 나만 먹기 위해 끓여보지 않았다. 먹고 싶다는 요리를 해주면서 정작 내 입맛을 생각해 요리를 한 적이  없다. 내 아이, 내 남편은 내가 있어 그렇게 해주지만 나를 챙겨주는 이 없이 나를 가장 뒷전으로 미루어 두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가족들이 늦잠을 자는 주말이면 일찍 아침산책을 나간다. 그리고 꼭 카페를 들러 커피와 간단한 디저트를 나를 위해 주문했다. 타인 돌봄과 집안 돌봄으로 답답함이 몰려오는 시기에 그 시간들은 잔잔한 위로가 되었다.


재테크를 위해 카페 출입을 줄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커피 마시는 그 시간은 정신 건강을 위한 의료비 대신이라 생각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경제적 효율성 보다 자기 돌봄이 더 우선인 시기가 있다.


그즈음 처음으로 나에게 얘기해 주었다.

‘너, 지금까지 잘 왔다. 잘 해왔어. 고생했어.’

그리고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데 눈물이 났다.


주말 아침인 오늘도 여전히 가족을 위한 된장찌개를 끓이고 밥상을 차린다. 영하 11도의 날씨에도 이미 산책 후  커피 수혈을 한 나는 그 기운으로 다시 요리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린 아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