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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Jan 29. 2024

걷기와 등산의 어느 즈음

나와 취미가 다른 남편과 어떻게 즐길 것인가

남편은 취미부자였다. 대학생 때는 등산을 좋아했고 결혼해서는 한동안 스키와 자전거에 빠져 살았다. 겨울이면 스키장에 시즌권을 구입하고 시즌방(자주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스키장 주변에 잡은 월세방)을 이용하기도 했다. 수도권에 있는 우리 집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2박 3일 종주를 하거나 주말이면 서울 남산이나 한강까지 왕복하기도 했다.


활동적인 취미 이외에 오디오도 좋아한다. 나름 감각이 예민한 사람으로 작은 차이도 민감하게 느끼니 오디오를 샀다 팔았다를 거듭하면서 지금의 오디오 구성을 이어갔다. 지금도 거실엔 TV대신 여러 개의 오디오 세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디오 뒷 쪽엔 굵은 구렁이 같은 오디오 케이블들이 여기저기 똬리를 틀고 있다. 그 이후로는 낚시에 빠져 주말마다 낚시터행이었다.


그러던 남편이 50이 넘어서면서부터 그런 활동들이 귀찮아졌나 보다. 낚시야 지금도 꾸준히 하지만 퇴근하고 와서 저녁식사 후 대부분의 시간을 유튜브나 ott의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허리 디스크도 안 좋아 몇 번 시술을 한 터라 앉아서 하는 활동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지내왔다.


그에 반해 나는 걷는 걸 엄청 좋아해서 시간이 되면 나가 산책을 한다. 작년에는 매일 가는 동네 개천옆 산책길이 지겨워서 좀 더 멀리 있는 곳으로 걷기 원정을 가기도 했다. 12킬로가 넘는 시화 방조제를 걷고 여주 남한강변 둘레길을 가기도 했다. 둘레가 10킬로미터가 넘는 호수산책길도 걷고 처음 가보는 동네를 무작정 걷기도 한다.  이렇게 하루종일 걸어도 힘들지 않은 내가 정말 못하는 것이 등산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둘은 취미로는 항상 따로였다.


얼마 전, 저녁을 먹다 말고 자기 배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자꾸 앉아만 있으니까 배가 진짜 많이 나왔어.”

“저녁에 막걸리도 자주 마시잖아. 야참을 그리 먹는 거 치고는 많이 안 나온 거지.”

“그래도 좀 심각해. 등산을 다시 시작해야 하나. ”

이제야 건강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며칠 전, 한참 유튜브 영상을 보던 남편이 급히 나온다.

“우리 여기 가자!”

가지고 나온 태블릿 pc를 보니 눈이 하얗게 쌓인 산 풍경이었다.

“나 산 못 타는 거 알잖아. ”

“아니, 여기는 케이블카로 정상까지 가서 안 힘들어. “

등산을 겁내하는 나에게 남편은 열심히 발왕산 눈꽃 보러 가는 게 힘들지 않다는 걸 계속 설명했다. 꼭대기까지 케이블카로 올라가고 눈꽃과 상고대를 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산능성이를 가는 거라 산책이라 생각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래? 산책하는 정도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

“그렇지? 내일 가자! “

그렇게 우리는 급작스럽게 발왕산을 가게 되었다.  눈산이니 급히 내일 새벽에 배송되는 아이젠 2개를 주문하고 케이블카도 예약했다.


다음 날, 새벽 6시에 남편이 나를 깨웠다.  발왕산이 있는 용평리조트까지 2시간 반정도 걸리는 거리여서 일찍 출발했다. 아직 해가 뜰 생각도 하지 않는 밤 같은 시간이었다. 강원도를 향해 동쪽으로 가다 보니 어느새 앞의 하늘이 따스한 색으로 물들고 해가 떠올랐다. 드디어 용평리조트에 도착했다.


스키를 타러 오는 사람들 이외에 우리처럼 발왕산 눈꽃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가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발왕산 케이블카는 국내 최고 길이의 케이블카라고 한다. 아래에서 발왕산 정산인 하차장까지 18분 정도 소요된다. 산을 두어 개 넘어가듯이 7킬로 남짓 가다 보니 어느새 주변은 눈으로 가득한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와! “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눈이 다 녹아 춥기만 했던 아래쪽과 달리 발왕산 정상은 정말 겨울왕국이었다.!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이고 나무들이 눈옷을 입고 한들거린다. 게다가 하늘은 어찌나 맑던지 눈 색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게 파란색이란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남편이 말한 대로 눈길은 아주 평탄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무겁게 눈을 지탱하고 있는 나무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눈을 도대체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황홀했다. 연신 휴대폰을 들었고 그날의 사진에는 평소에 잘 찍지 않던 남편의 모습도 가득했다. 남편도 너무 잘 왔다면서 좋아했다.


그렇게 다녀온 경험이 너무 좋았는지 남편은 바로 다음 장소를 잡는다. 이번에는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가잖다. 그리고 덕유산 눈꽃이 정말 좋단다.

“등산하는 거 아냐? ”

“아냐, 거기도 케이블카로 올라가.”

찾아보니 등산은 아니다. 그럼 뭐, 나도 좋다!


등산을 좋아하는 남편과 평지 걷기를 좋아하는 내가 서로 맞출 수 있는 지점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걸 미리 찾아 알려주는 정보통들이 가득하다는 것도 고맙다. 찾아보니 부부가 함께 등산을 하면서 알려주는 채널도 여러 곳이다. 오늘도 다음 행선지를 찾으며 슬그머니 약간의 등산로를 얘기하는 남편의 말을 조금 너그럽게 들어본다. 날이 따뜻해지면 해안가를 도는 둘레길도 추천해봐야겠다.


가끔 취미가 너무 달라 따로 노는 우리들의 모습이 걱정스러울 때도 있었다. 너무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우리의 노년도 따로국밥일까 하는 염려도 했다. 각자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교집합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 접점을 찾은 듯하다. 이러다 내 체력이 좋아지면 조금씩 함께 작은 산을 오를 수도 있으려나 하는 기대도 살짝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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