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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Mar 31. 2024

칼국수

재래시장에 가면 하얀 김이 가득 나오는 가게 앞에 멈추게 된다. 칼국수 집이다. 커다란 솥에 국수가락을 익히고 호박과 양파를 얹어 푸짐하게 내주신다. 칼국수의 전분 때문에 걸쭉해진 국물이 뜨겁다. 후후 불면서도 그 뜨근함으로 뱃속이 채워지는 게 좋아 자꾸 젓가락이 간다.


어렸을 때 할머니는 국수를 직접 만들어 주셨다. 주름진 손으로 밀가루를 직접 반죽하셨다. 부드럽고 말캉한 반죽을 위해 온몸의 체중을 싫어 손바닥으로 누르신다. 어느새 둥근 반죽이 완성된다. 너른 판 위에 밀가루를 후루루 뿌린 후 반죽덩어리를 놓고 홍두깨로 리듬감 있게 밀었다. 둥근 반죽은 점점 얇고 넓게 퍼졌다. 할머니는 알맞게 밀린 칼국수 반죽을 착착 접어 칼질을 하셨다. 그리고 칼국수 가닥을 훌훌 흩어놓으셨다. 주방에선 물이 끓고 있고 함께 넣을 고명도 곱게 채 썰려 있다.


별 먹거리가 없는 시골에서 할머니는 고모나 삼촌이 오실 때면 꼭 칼국수를 직접 밀었다. 더 고소하라고 콩가루도 섞어서 반죽했다. 오래간만에 오는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별미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래서 손님이 오시면  오늘의 메뉴는 당연히 손칼국수려니 했다.


손칼국수를 미는 것은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가는 노동이다. 할머니도 어느 순간부터 힘드셨는지 더 이상 칼국수를 밀지 않으셨다. 시장에서 맛볼 수 있었지만 집에서 만든 할머니표 칼국수 맛은 아니었다.


결혼 후 보니 시댁에서도 칼국수를 직접 밀어 만드셨다. 시어머님은 아들, 며느리, 자식들이 간다고 연락드리면 으레껏 연노란 칼국수를 만들어 주셨다. 할머니처럼 콩가루를 넣으신 것이다. 고명은 파나 호박밖에 없었지만 맛있게 양념한 간장이 맛을 완성했다. 먹다 보면 어느새 냉면그릇 하나정도는 금방이다.


할머니도 시어머님도 칼국수를 만드시는 모습을 보면 투박한 손으로 열심히 자식들 먹일 음식을 만드시는 숭고함이 느껴진다. 온몸으로 밀어 넓어지는 칼국수의 면적만큼 이마의 땀방울도 늘어간다. 하얀 밀가루가 그동안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손주름 사이로 들어가 더욱 주름이 많아 보인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사랑을 자식들이 열심히 먹는다.


지금은 시어머님도 힘드셔서 칼국수를 직접 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손칼국수를 보면 언제나 할머니와 시어머님이 생각난다. 음식이 음식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추억과 사랑으로 버무려져 다가온다. 그 힘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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