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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Jun 16. 2023

나의 바닷가

당신의 케렌시아는 어디인가

몇 년 전 근처에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이 생겼다. 일찍 어두워지는 우리 동네 특성상 이렇게 밤새도록 불 밝히는 곳은 처음이었다. 늦은 밤시간에 가끔 나가기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아지트가 생긴 것이다.


  주말이 되면 새벽 산책을 마치고 항상 이 곳을 들렀다. 한참 걸어 무거워진 발걸음을 돌려 횡단보도만 건너면 갈 수 있었다. 두꺼운 유리문을 힘껏 밀고 들어가면 백색소음같은 다양한 소리가 들린다. 두런두런 사람들 소리, 음식포장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빨대로 음료를 마시는 소리, 그리고 주문이 완료되었다는 기계음 소리까지. 백 가지 소리가 들리지만 한 가지도 주의깊게 듣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올 초 건강검진을 하며 위가 안 좋다는 결과를 듣고 커피를 끊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동안 가장 아쉬웠던 것이 이 곳에 못 온다는 것이었다. 커피대신 다른 음료를 마시면 되었지만 나에게는 이 곳에서의 커피 한잔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컸다.


  어느 날, 정호승시인의  '바닷가에 대하여'라는 시를 읽다가 무릎을 탁 쳤다. 위로 받고 나 자신으로 돌아가 온전히 있을 수 있는 곳, 나에 집중할 수 있는 곳, 나의 감정을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 줄 수 있는 곳, 어느 누구한테도 신경쓰지 않는 곳, 나를 둘러싼 모든 의무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곳. 나에게는 바로 이 곳은 바닷가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내 고민과 힘듦은 전적인 내 몫이었다. 자매도 없고 친정엄마한테도 절대 얘기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색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나 혼자 견딜 수 있다고, 혼자 해결하고 다스릴 수 있다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 적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잘 견디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나만의 바닷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받고 내 자체로 존재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 바닷가가  친한 친구일 수도, 노래일 수도, 일 수도 있다. 어느 전망좋은 까페일 수도, 따끈한 해장국집일 수도, 책일 수도, 집앞 놀이터일 수도 있다. 그 바닷가가 또 누군가에게는 버스안일 수도, 나를 보고 웃는 아이일 수도, 형제일 수도 있다. 그 바닷가가 누구이든, 어디이든, 무엇이든 간에 누구든지 나만의 바닷가는 있어야 마땅하다.  자신을 위로할 무언가는 꼭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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