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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Jul 05. 2023

도토리묵이 맛있는 건

그 시절 엄마의 마음 챙김


친정엄마는 요리를 잘하신다. 다른 음식도 맛있지만 특히 엄마의 도토리묵은 정말 최고다. 가을이 되면 직접 동네 산을 다니시면서 도토리를 주워 가루를 내고 묵을 쑤신다. 그야말로 오리지널 자연산 도토리묵이다. 묵을 쑤시는 솜씨도 동네에서 다 인정한다. 탱글탱글한 젤리 못지않게 탄력 있고 쫀득하다. 잘 만들어 통에 넣어둔 도토리묵은 툭 건드리기만 하면 아기 엉덩이마냥 통통 튄다. 탱탱 소리가 나는 듯 입안에서의 맛도 바로 상상이 되어 오감을 자극한다. 어딜 가도 엄마표와 비슷한 맛도 못 먹어봤다.

이 최고의 맛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얘기한다.

“어머, 어쩜 이런 맛이 나요? 와!”

“아니, 솜씨가 아까워요. 도토리묵 가게 내면 대박 나겠네.”

그러면 항상 엄마는 똑같이 말씀하신다.

“아이고, 됐어요. 누구 고생하는 꼴을 더 보려고요.”


아마 그런 말씀을 하시는 어른들 중 가게를 직접 해보신 분 들이거나 엄마의 삶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그런 말을 하셨을까. 엄마의 도토리묵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아신다면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못하실 거다. 그리고 그걸 나도 어른이 되어 엄마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알았다.


엄마는 시부모님에 결혼 안 한 시누 2명, 그리고 어린 시동생이 있는 집에 시집을 왔다. 예전이면 흔했을 시집살이, 넉넉히 않은 형편 속에서 엄마의 자리는 좁았다. 아빠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어느 한 구석 마음 둘 곳이 없을 때마다 엄마는 돌아다녔다고 한다. 봄나물 캐러 간다는 핑계도 괜찮았으니까. 들에 있는 밭이나 산을 다니며 철마다 냉이를 캐고 고사리를 꺾고 두릅을 땄고 가을이면 도토리를 주웠다.  그게 식탁의 반찬이 되었고 엄마의 도토리묵이 되었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를 혀. 다 내 얼굴에 침 뱉는 거지. ”

“그래도 그렇게 산을 휘젓고 다니면 조금 속이 풀렸어.”

“집에 가만히 있었으면 못 견뎠지. 그렇게 돌아다니니까 살았지.”

엄마는 산을 다니며 먹거리를 따면서 돌아다니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다. 때로는 아무도 없는 산속에다 대고 속풀이를 하기도 했단다.

내성적인 데다 애교도 없는 나에게 엄마가 서운해하기도 했다. 딸에게 바라는 공감의 정도에서 나는 밑바닥이었으니까. 그런 내가 나이가 들면서 엄마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집 딸내미들은 엄마 역성도 들어준다던데 너는 어찌나 정 없던지.”

그랬지, 내가. 그래서 엄마가 더 외로워했을까.


엄마는 이제야 푸근해진 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시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고된 삶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들과 남편에게 서운함도 경험한 나는 이제야 진정으로 엄마를 이해하며 이야기를 들어준다. 엄마도 이제야 편해진 딸 앞에서 옛날이야기, 주변 속상했던 이야기, 서운했던 것들, 이런저런 마음의 표현을 하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철이 든 중년의 딸이 칠십이 넘은 엄마의 이야기에 맞장구치고 같이 화도 내주고 뒷담도 한다. 어떨 땐 차마 엄마가 하지 못했을 말을 내가 대신하기도 한다.


지금도 남편은 장모님의 도토리묵을 최고로 친다. 하지만 엄마의 도토리묵에 담긴 깊은 이야기를 아는 나는 도토리묵을 먹을 때마다 엄마 삶의 고됨을 함께 느낀다. 그 힘듦이 돌아와 결론은 최고의 맛이 되었지만 어느 명품도 얽힌 역사와 사연은 있기 마련, 엄마의 도토리묵은 그런 음식이었다.


몇 주전, 시장을 가시다가 갑자기 털썩 주저앉으면서 아예 걷지 못하는 상황이 되셨다. 무릎연골이 다 닳아 걷지 못하게 되신 것이다. 고되었던 삶을 엄마의 무릎도 함께 견디고 있었다. 연골주사를 몇 번 맞으시더니 괜찮아지셨다고 하시며 또 이곳저곳 다니신다. 걷고 동네를 다니고 움직이는 게 엄마에게는 자신을 돌보는 시간들이었으니까. 요즘 유행하는 자기 돌봄, 마음 챙김을 수십 년 전 엄마는 이미 알고 자신을 돌보신 것이다.


며칠 전에 친정에 다녀왔다. 조금 나아지셨다고 텃밭에 사신다. 그 발소리를 듣고 자란 텃밭의 오만가지 채소는 초록으로 가득하다. 괜한 속이 상해 잔소리만 늘어놓았다.


“주사 맞는 것도 임시니까 이제 좀 일도 덜해요.”

“주방 정리하는 것도 내가 와서 할 테니까 괜히 자꾸 무리하지 말아요.”

“그거 안 해도 돼, 아껴서 다니라니까.”

"자꾸 그렇게 쭈그리고 앉지 말라니까요."


엄마에게 움직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만 그와 함께 더 오래 건강히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에 자꾸 잔소리가 나온다. 그나마 이제야 엄마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딸이 되어 죄송하면서 다행이다 싶다. 엄마가 마음을 위로받는데 더 이상 산과 들이 아니라 딸과의 시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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