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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론 Jul 17. 2023

사람에 지칠 때 나는 다른 그림을 그린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사람과 헤어진다


요즘에 유행처럼 많이 하는 MBTI로 말하자면 나는 INFP이다. 이렇게 굳이 범주화시키는 검사를 하지 않아도 조용히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생각이 많고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것을 선호한다. 지금이야 많이 사회화가 되어서 그렇지 않지만 예전엔 사람들 모임에서 별 주제 없이 소소한 일상 대화, 소위 스몰토크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주기적인 모임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 ​


그런 내가 사람을 주로 그린다. 처음 인물초상화로 그림을 시작했고 부족한 기본을 채우기 위해 참 많이도 관찰했다. 간단한 드로잉으로 1일 1그림을 그리는 지금도 사람을 많이 그린다. 사람과의 만남이 부담스러운 내가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좋아한다.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생각을 나 혼자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나만의 시선으로, 속도로, 적당한 거리에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


하지만 그렇게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다가도 사람으로 인해 지칠 때면 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정말 힘들 때는 사람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애정도 기본적인 에너지를 바탕으로 표현이 된다. 그 에너지조차 빼앗기면 다시 채우기 위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혼자 산책을 하고 혼자 까페에 덩그러니 앉아 멍 때리고 고요를 즐긴다. 그래야 다시 올라와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


이 그림을 그린 날이 그랬다. 작년 이맘때. 한창 더워지는 7월의 가운데였다.

‘아… 지친다, 진짜.’

너무 힘든 날이었다. 학기말이었고 학교는 성적처리와 온갖 업무의 마무리로 정신없었고 점차 더워지는 날씨와 방학이 가까워지는 시기에 아이들도 붕 떠 있다. 그러다 보니 잔소리할 일도 많아졌다. 게다가 이 바쁠 때 집안일에 우리 집 아이들 신경 쓰는 일도 내가 감당할 게 많고 비는 왜 그리 추절추절 계속 오는지.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감정이 상처받을 때 더욱 그렇다. 상대적이지만 ‘왜 나만’, ‘왜 우리한테만’이라는 키워드는 억울함을 만든다. ​


드로잉북을 펼쳤다. 평소처럼 사람을 참고자료로 찾는다. 30분이 지나도 도저히 고를 수가 없다. 마음이 가지 않는 거다.

‘오늘은 그냥 그리지 말까.’

그러면서도 멍하니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본다. 그림이 힘들어진 걸까, 상황이 힘들어진 걸까.


그렇게 휴대폰 자료에서 손가락만 쓸어내다 눈에 확 들어온 사진. 설산이다. 눈 덮인 에베레스트산. 그것도 색색의 노을이 반사되어 흰 눈이 아닌 오색의 눈으로 반영된 풍경.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 이런 걸까. 바로 그리기 시작했고 바쁘고 복잡했던 마음이 이 그림으로 조금 위로가 되었다. ​


사람으로 지칠 때는 사람이 아닌 것에 눈을 돌리게 된다. 산으로, 바다로, 자연으로, 때로는 애완동물로. 그게 당연한 것 같다. 나도 인간이지만 인간이 항상 희망과 에너지를 주는 건 아니니까. 사람에게 받지 못하는 사랑과 위로를 사람이 아닌 존재로부터 받기도 한다. ​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인간 서로 간의 믿음과 애정이 필수다.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지탱하고 유지하여 지금까지 인류가 유지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으로 인해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마음에서 인간을 지운다.


사람으로 지칠 때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바라보자. 내 가족에게, 내 아이에게, 나에게 소중했던 사람들로부터 지칠 때 잠시 떠나도 괜찮다. 지나친 신경 씀으로부터 멀어지자. 사람이 아닌 존재로부터 위로를 받자. 그러고 나야 다시 사람을 향할 수 있으니까. 결국 우리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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