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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미 Jul 16. 2021

자존 갑입니다만

웃기고 진지한 자존갑입니다만 中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급부상하던 때 미처 몰랐던 나의 자존감이 갑자기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너는 참 자존감이 높은 사람 같다.” “닮고 싶다.” “비결이 뭐냐?” 좋은데 민망해서 콧구멍만 벌렁벌렁거렸지만 그리 궁금하시다니 대답할게요. ‘저는 알에서 태어났어요. 박혁거세 님부터 그래왔고, Pa‘알’k 영문명에도 알(출생지) 표기합니다.’ 당황하시는 동안 제 민망함도 사라졌으니 이제 진짜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제 자존감의 진짜 배경은 아빠입니다. 아빠에게 딸은 곧 국가요, 법이요, 존재의 이유였죠. 어느 정도냐 하면, 저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제가 안 예쁘게 생겼단 걸 간신히 알았다지요. 집에 처박혀만 있어도 듣는 소리가 예쁘다 예쁘다~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다여서 일곱 살까진 두서없이 믿었고, 열 살쯤 거울을 째려보며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으나 아빠의 진정성 있는 눈빛과 안정적 목소리 톤으로 보아 안 예뻐 보이는 건 그저 기분 탓이라 느꼈거든요. 중학교에 가서 부쩍 친구들과 사진을 많이 찍게 되면서 깨달은 거죠. 아빠가 연기를 하셨으면 대배우가 되셨겠구나, 톰 행크스 따위는 감히 배우를 꿈꾸지도 못했겠구나~

아빠의 연기력은 그렇게 저의 믿는 구석이 됩니다. 지구상에 적어도 한 명 확실한 내 편이 있다는 든든함이 곧 자신감, 용기, 긍정, 희망, 하여간 좋은 거로 다 삼단 변신 되었거든요.

일곱 살 때 다니던 피아노 학원이 미술 수업과 스토리텔링 등을 병행해주던 곳이었는데 하루는 선생님이 원생들을 다 앉혀놓고 공주님 이야기를 해주면서, 왕이 공주를 결혼시키기 위해 왕자들을 초대했는데, 머리는 좋으나 가난한 왕자, 돈은 많은데 못생긴 왕자, 못생겼지만 착한 왕자, 대략 이런 뻔한 예를 들면서 누구와 결혼시켜야 할까 물으셨지요. 대답들도 뻔했어요. 모두가 착한 왕자요~ 라고 할 때 제가 손을 들고, ‘결혼은 공주가 하는 건데 왜 아빠가 왕자를 고르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피아노 선생님 아직도 간간이 엄마와 마주치시는데 만날 때마는 하시는 그 지겹게 멋진 대사 “그 집 딸 보통이 아니야.”

생각해보면 저는 할 말을 잘해요. 이유는? 든든하니까. 내가 한 말에 동의나 대답이 없어도 솔직히 상처도 잘 안 받아요. 왜? 내 편이 있으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야망 돋게 전교 부회장 선거에 나갔는데, 초반 유력하게 달리다가 막판에 짜장면 돌린 친구가 당선되었죠. 엄마는 딸이 얼마나 상처받고 기가 죽을까 걱정이 되셨는데 밝은 얼굴로 돌아온 제가 그러더래요. “엄마~ 나 꼴찌는 아니야~.” 성취감이 제일 좋았지만, 다 이루고 살지 못한다는 것도 이해했던 것 같아요. 이 정도 사랑받았으니 좀 어그러져도 된단 생각. 그것이 바로 든든한 아빠의 힘.

아이를 키우면서 무슨 전집, 어디 학원, 어떤 학습법 이런 것들에 크게 시간 투자를 안 해요. 확실한 방법 하나. 아빠처럼 살자! 믿고 칭찬하고 응원하고 사랑하자. 인생 틀어지는 거 같고, 유난히 외롭고, 되는 일이 하나 없는 것 같은 하필 그런 때, 내 자식에게 아빠 코스프레라도 하고 사는 게 제 목표입니다.

사람 인생 별거 없지요. 말로는 뭐 마더 테레사보다 못할 게 없는데 정작 육아하기를 제대로 고꾸라졌어요. 멘탈 나가고, 체력은 원래 없었고, 잠 못 드는 밤 젖은 흘러내리고, 내 밥도 못 찾아 먹는 시간이 반복되니까 동물 된 심정이랄까,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말 그대로 엉엉 울면서 신생아와 배틀을 몇 번 했던지…. 심지어 매번 이겼어요. 그렇게 힘든데 엄마 아빠가 오셔서 그저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만 보셨는데 고통, 상처, 흉터 다 사라지더라고요.

남편이 티브이에서 심각한 불화를 겪는 부부 이야기를 보더니 하루는 그래요. 당신은 은연중에 장인어른 같은 남편감을 찾은 거라고, 그런 대접에 익숙해져서 그 대접을 이어 해줄 자기를 만난 거라고. 납득은 안 갔지만 뭉클했어요. 배우자를 고르는 순간에도 아빠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걸 듣게 되니까 그래서 내가 소개팅이 그렇게 안 풀렸구나, 어쩐지 결혼하기 드럽게 힘들더라…. 네에??? 역시 아빠는 내 삶의 최고 자산이라고 서둘러 주장하는 바입니다.

특히 딸 가진 아빠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자존감은 아빠다! 자존감 하나면 인생 버텨내는 모든 능력을 쥐여준 거나 다름없다! 보시다시피 제 자존감의 9할은 아빠니까요. 남은 1할은 뭐냐? 알에서 태어났다고... 자존‘갑’답게 마무리.

#웃기고진지한자존갑입니다만 #웃진갑 #박윤미작가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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