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최고의 바다에서 생긴 일
인스타를 보다가 우연히,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를 보았다.
아이보리색의 모래사장에 단 두 사람만 앉아있는 사진이었는데 그들의 시선이 닿는 바다의 색깔이 투명에 가까운 하늘색이었다. 그리고 시선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색이 짙어지는 바로 그런 바다.
사진에 적혀있는 위치를 보니 놀랍게도 ‘브라질’이었다. 그간 꽤 많은 브라질의 바다를 여행했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내가 가본 브라질의 바다는 대체로 모래사장의 모래가 굵고 짙은 색이어서 바다의 색도 늘 짙었다. 이런 아름다운 바다는 카리브해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브라질에도 이런 바다가 있다니! 어디인지 너무 궁금해 검색해보았더니 놀랍게도 내가 사는 상파울루에서 차로 8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이곳 주재원들끼리는 여행 정보를 많이 공유하는 편인데, 왜 이런 곳이 입소문이 안 났을까 궁금했다.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이번 연말 휴가에 이곳에 갈 계획을 세웠다. 마침 얼마 전 브라질인 현지 직원의 추천으로 이곳에 다녀온 지인이 있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지인의 말로는 바닷가 마을에 도착해서도 아름다운 해변을 보려면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접근성 때문에 이 바다가 입소문이 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 곳이라면 더더욱 가보고 싶었다. 산을 넘고 또 넘어서라도 그 바다를 보겠다는, 그 바다에 몸을 담그겠다는 일념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상파울루’에서 ‘리우데자네이루’까지 차로 6시간을 달렸다. 그곳에서 이틀을 머문 후, 목적지인 예쁜 바다가 있는 작은 어촌 마을 ‘Arraial do cabo(아하야우 두 까보)’로 또 2시간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꽤 높은 산으로 차를 타고 올라간 후, 산길 한쪽에 차를 대고 열심히 걸어서 드디어 그 해변에 도착했다.
저 멀리 옥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보니, 드디어 내가 사진 속 그곳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그런데 접근하기 힘든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좁은 모래사장 위로 빼곡히 파라솔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반 이상 들어차 있었다. 브라질은 연말에 다들 휴가를 가는데, 그 휴가 기간에 대부분 바다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아직은 좀 이른 시기였지만, 우리처럼 휴가를 온 사람들이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바다는 투명하게 맑고, 예뻤다. 물에 들어가서 서면 내 발이 선명하게 다 보였다.
문제는 파도가 생각보다 세다는 것이었는데, 물에 들어가서 내 발을 볼라치면 파도가 어느새 거품이 되어 나를 덮쳐왔다.
파도 보다 빨리, 파도가 부서지기 전 그 위치까지만 가면 넘실대는 파도에 내 몸을 맡기고 파도를 즐길 수 있을 텐데, 그곳에 서서 파도의 박자에 맞춰 폴짝폴짝 뛰어주기만 하면 오랜 시간 맑은 바다에 서서 파도와 함께 놀 수 있을 텐데, 그 위치까지 가기가 쉽지 않았다. 첨벙첨벙 바닷속을 뛰어가 넘실대는 파도와 놀다가도 문득 엄청나게 센 파도가 오면 어김없이 밀려 나오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게 센 파도를 만나면 몸에 끼고 있던 스파게티(튜브 대용으로 물에 뜰 수 있게 도와주는 스파게티 면같이 기다란 물건)와 머리를 묶고 있었던 플라스틱 끈까지도 모두 내 몸을 떠나고 말았지만, 다행히 두 가지 다 가벼운 것이라 파도에 밀려 나와서 곧 찾을 수 있었다.
파도를 타는 것도 즐거웠지만 파라솔 아래에 앉아 파도를 타며 노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물이 맑고 파도가 높다 보니, 사람들이 파도에 휩쓸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어떤 이는 파도가 덮치는 순간에 더 깊은 바다 쪽으로 수영을 해서 파도와 맞서기도 하고, 어떤 이는 파도 속에 고스란히 몸을 맡겨 밀려오기도 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서서 버둥거리며 (아마 나의 모습도 그렇겠지) 파도와 맞서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구경하다 또 파도를 타러 나갈 때면 몸에 있는 것을 다 빼고 나가야 했다. 몇 번이나 선글라스를 쓴 채로 바다로 나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선글라스를 두고 나가곤 했다.
아이는 한 번도 파라솔 쪽으로 오지 않고 내내 모래사장에서 성을 쌓고, 파도를 타며 놀았는데 그 와중에 눈이 크고 속눈썹이 짙은 한 남자아이가 우리 딸에게 함께 놀자며 다가왔다. 아직 기초 포르투갈어밖에 하지 못하는 우리 딸이 몇 살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서 알게 된 정보에 따르면 그 아이는 우리 딸보다 두 살 어린 7살, 이름은 '안톤'이었다. 두 아이는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바디랭귀지로 대화하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자유롭게 바다를 오가며 놀았다.
그런데 파라솔 아래에 앉아 파도를 타러 간 남편을 지켜보며 문득 '안경을 쓴 채로 바다에 나가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안경은 선글라스보다는 무겁고, 그 정도는 알아서 하겠지 생각하며 걱정을 지웠다. 그때, 남편이 물 안을 열심히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뭘 보는 거지? 혹시 물고기라도 있나? 내가 볼 땐 물고기 없었는데? 혹시 안경을 찾는 거면 어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안경을 쓰지 않은 채 인상을 쓴 남편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 안경 잃어버렸어?"
그러자 남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말을 했다.
"파도에 안경이 휩쓸려갔어."
남편은 안경을 맞출 때 렌즈를 세 번 압축해야 할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다. 그러니 스스로 안경을 찾을 수는 없으므로 일단 앉아 있으라고 했다. 내가 찾아오겠다고 말이다.
남편이 온 방향으로 걸어가니 우리 딸이랑 어울려 놀던 '안톤'의 아빠가 양손을 허리에 얹고 바다를 향해 대장부처럼 서 있었다. 떠내려오는 안경을 놓치지 않겠다는 그의 결연함이 보이는 듯했다. 나를 보고는 바로 이 구역이 남편의 안경이 빠진 곳이니 여기서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분 말고도 남편이 안경을 잃고 나오는 것을 목격한 또 다른 남자분도 함께 안경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나도 덩달아 바다를 바라보며 안경이 떠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그러고 있는데 문득 안톤의 아빠가 안경이 가벼운 재질이냐 물었다. 그래서 아니라고, 약간 무겁다고 하자 그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파도에 밀려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바닷속 어딘가 파묻혀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정상 시력인 나 역시 눈이 나쁜 사람처럼, 안경을 찾아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것을 찾으려면 맨눈이 아닌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때 스노클링 안경이 떠올랐다. 급히 파라솔 아래로 가서 스노클링을 가져왔다. 내가 그걸 가지고 가자 마침 스노클링 안경을 끼고 바다에 들어가려던 안톤 아빠가 말했다.
"당신도 갖고 있군요? 그럼 당신이 들어가시면 되겠네요."
"아 그렇긴 한데, 저는 수영을 못해요."
"아 그래요? 그럼 내가 들어갈게요!"
그때 문득, 혹시나 이분이 우리 안경을 찾다가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되는 마음에 물었다.
"수영할 줄 아세요?"
그는 수영 할 줄 안다며 호기롭게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해변에서 서성이며 계속 눈으로 안경을 찾았다. 그러나 안경은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후, 물속에서 한참을 헤매며 안경을 찾던 안톤 아빠가 나에게 스노클링을 돌려주며 맨눈으로 찾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하고는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속 그분을 보다가, 해변을 둘러보다가, 바닷속에 들어가서 두리번거리다가 파도에 쫓겨나오길 반복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안톤 아빠가 사라졌다. 함께 있던 안톤의 가족들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안경을 찾지 못할 것을 예상했던 나는 안톤 아빠가 포기하고 나오면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파도에 휩쓸리는 동안 그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마도 안경을 찾아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말도 없이 가버린 것 같았는데,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다.
그러고도 나는 한참을 파도와 씨름을 했다. 스노클링 안경을 쓰고 바닷속을 헤매다 파도의 습격으로 밀려 나오고, 또 밀려 나오며 그렇게 애타게 안경을 찾았다. 왜냐하면 남편이 운전을 못 하면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차 안에 남편의 시력에 맞는 선글라스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밤 운전은 힘들 테니 혹시라도 밤에 운전해야 할 일이 생기면 운전이 내 몫이 될 것이었다.
8박 9일 여행 일정 중 고작 4박째였던 날이었고, 앞으로 두 개의 도시로 더 이동할 일이 남았으며, 마지막 구간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상파울루까지는 무려 6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앞으로 남은 운전할 구간을 머릿속으로 계산하자 나는 그의 안경이 더욱 절실해졌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나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해지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가기로 하고 서둘러 짐을 싸서 나왔다.
브라질에서 제일 예쁜 해변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남편이 말했다.
"저 예쁜 바다를 영원히 보고 싶어서 눈을 두고 왔네."
그의 어이없는 말에 딸과 함께 셋이서 한참을 웃었다. 사실 나는 처음 남편이 나에게 와서 안경이 없어졌다고 말할 때부터 참 다행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하는 그가 민망함과 어이없음으로 미소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그 순간 자신의 실수 때문에 스스로 화가 나서 화를 내거나, 혹은 내가 그의 실수에 대해 화를 냈다면 이후 우리의 여행은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둘 다 이 상황을 웃어넘겼고, 차 안의 선글라스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
평소 익숙지 않아 고이 모셔만 두었던 선글라스를 쓰고 남편이 차를 몰았다. 비행기를 타고 온 여행이었으면 어땠을까. 차를 타고 와서 선글라스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차 안에 선글라스가 있었던 것, 그것이 기적이었다.
이후 우리 세 식구는 온종일 안경 이야기를 했다. 신고 있던 조리가 벗겨지면, '안경 대신 신발을 잃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말하고, 아이가 물 뚜껑을 떨어뜨리면, '안경 대신 물 뚜껑을 잃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저녁을 먹으러 가서는 레스토랑이 왜 이렇게 어둡냐며 한탄하는 남편을 놀리며 아이와 함께 상상 놀이를 했다.
"지금 이 식당에 갑자기 안톤 아빠가 나타나는 거야. 우리가 가고 난 후 안경을 찾았다며 안경을 들고 오는 거지. 그럼 얼마나 좋을까?"
무슨 말을 시작하든 그 끝이 안경으로 끝나는 남편을 보며 딸에게 말했다.
"아빠가 상파울루로 돌아가 안경을 찾아 쓸 때까지, 아빠는 계속 안경 이야기를 할 거야. 두고 봐."
정말로 남편은 이후'기-승-전-안경'으로 모든 이야기의 끝을 안경으로 끝내는 놀라운 입담을 선보였다.
안경이 없어 그는 좀 불편했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낮에만 다니고 특히 마지막 날에는 차 막힐까 봐, 그래서 혹시나 밤에 운전하게 될까 봐 아침 일찍 ‘리우데자네이루’를 떠나 ‘상파울루’로 돌아와야 했지만, 그 잃어버린 안경 덕에 우리는 여행 내내 안경 이야기로 웃을 수 있었다.
상파울루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 정말 그림같이 예쁜 그 바다, 브라질에서 제일 예쁜 그 바다의 사진을 노트북 바탕화면에 깔았다. 그 후 노트북을 켤 때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경 이야기를 한다.
“안경을 삼킨 바다네?”
“지금쯤 안경이 떠내려왔을까?”
“안경 보고 싶다.”
우리는 그 바다에서 안경을 잃은 대신, 그 바다를 떠올리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안경을 삼킨 그 바다는 우리 가족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 쓴 날 2020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