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라의 가난한 사랑 노래

- Rio de Janeiro, Brazil 2020.12.

by 초록풀잎


브라질은 치안이 안 좋기로 소문이 난 나라다. 내가 사는 상파울루를 비롯해 브라질 최대 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 역시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하다. 치안 문제에서 핵심은 파벨라(Favela)에 있다.


파벨라란 가난한 사람들이 벽돌로 얼기설기 집을 짓고 사는 동네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산동네와 비슷한 느낌이다. 상파울루에는 도시 중심에서 벗어날수록 파벨라를 많이 볼 수 있는데 혹시라도 차를 타고 가다 길을 잘 못 들어 파벨라에 들어가게 되면 총기로 위협하는 사람들 때문에 차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다. 그런 소문 때문에 브라질에 와서 처음 운전을 시작할 때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게 된다. 길을 모르니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는데 내비게이션은 파벨라를 걸러주지 않기 때문에 언제 파벨라로 들어가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대단지이고, 관리가 철저한 아파트라 아파트 안에서는 치안에 대한 걱정이 없는 곳인데 문제는 아파트 주변 동네에 파벨라가 있다는 것이다.


처음 이사 와서 집 근처 대형 마트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가서 장을 본 후 나오는 길에 출구가 두 개가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해주겠지'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둘 중 가까운 출구를 선택해서 나왔는데 길이 일방통행이라 엄청나게 돌아서 집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라가다 보니 주변에 허름한 집들이 있는 길을 지나게 되었다. 저녁 시간이었는데 조명이 변변찮아서 주변이 어두웠다. 남편은 아무래도 이리로 계속 가면 파벨라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될 것 같다며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고, 그 말에 나는 더욱 긴장되었다. 남편은 그 길에서 최대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고 우리는 다행히 별 탈 없이 큰길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그때 긴장하는 우리를 보며 딸아이가 물었다.


"파벨라가 뭐야?"


에어컨 수리기사가 왔던 날, 내가 반지를 서랍 깊숙이 넣어둔 이유를 설명할 때도 진땀을 뺐듯이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파벨라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야."라고 말했지만, 그곳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도둑이거나 강도는 아니지만, 그곳에 들어가면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대. 그래서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브라질은 부자들은 엄청 부자인데 파벨라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너무 없어서 그런 경우가 있나 봐." 그렇게 설명했다.


이곳 상파울루 뿐 아니라 리우 데 자네이루에는 더 많은 파벨라가 있다. 특히 그곳에는 산을 깎아 집을 지은 파벨라가 많은데 그 풍경이 이색적이라 파벨라를 둘러보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다. 또한 리우데자네이루 시장에 가면 화가들이 파벨라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팔고 있다. 파벨라가 그들의 관광상품이 된 것이다.


이번 리우데자네이루 여행 첫날 우리는 코파카바나 해변 바로 앞에 위치한 호텔에 묵었다. 옥상에 수영장이 있어 수영하러 올라갔더니 길게 뻗어있는 코파카바나 해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풍경이 너무 멋져서 '코파카바나 해변이 이래서 유명하구나.' 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바다를 한참 보다가 옥상 2층 테라스로 가려고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엄청난 풍경을 마주했다. 내 눈앞에 파벨라가 펼쳐진 것이다.


저 멀리 호텔 뒤쪽에 위치한 높은 산, 그 중턱까지 빼곡하게 벽돌집이 층층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 집의 마당이 이웃의 옥상이 되는 벽돌집. 그 맨 위에 있는 집은 대체 매일 거길 어떻게 오르내릴까 싶게 높은 곳에 있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집들이 그 나름의 균형감과 통일성을 갖고 있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집에서 이곳을 보면 코파카바나 해변이 한눈에 펼쳐져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운 풍경은 어떤 의미일까. 앞으로는 선베드에 누워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들과 함께 코파카바나의 멋진 해안선을 내려다보며, 뒤로는 파벨라를 보는 내 마음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저녁이 되자 파벨라에 한집 두 집 불이 들어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집이 켜 놓은 불빛들로 인해 파벨라의 풍경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그 불빛 중에는 깜빡깜빡 크리스마스 전구가 반짝이는 집들도 있었다. 아이가 그 반짝이는 집을 보며 물었다.


"파벨라에 왜 트리 장식이 있어?"


"크리스마스니까 트리 장식을 했지."


"파벨라 사람들은 가난하다며? 트리 장식 살 돈이 있어?"


"가난해도 크리스마스니까 트리 장식할 수 있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그들의 터전을 보며

문득 오래전 교과서에서 배운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가 떠올랐다.

'가난하다고 해서 **을 모르겠는가.'라는 구절이 반복되는 그 시.


상상해본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가난한 삶이지만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불빛을 켜며 함께 기뻐할 사람들의 모습을.

크고 비싼 장난감은 아니지만, 아이가 좋아할 자그마한 선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부모의 미소를.

그리고 그 선물을 받아 들고 함박웃음 지을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가난해도 크리스마스를 즐기며 함께 작은 불빛이라도 켤 낭만이 있는 사람들이라 다행이다.

파벨라에 살아도, 으리으리한 100평짜리 저택에 살아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오는 크리스마스라 참 다행이다.


Feliz natal!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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