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이 좋은 이유

내게 온 문장 - 오소희 <내 눈 앞의 한 사람>

by 초록풀잎


"도대체 문제집을 왜 풀어야 하는 거야?"


절규에 가까운 아이의 애타는 외침이 들려온다.


"왜 풀어야 하는지 알아서 더 힘들어."


이내 한숨과 함께 포기의 말도 들려온다.



하루 5페이지씩 풀어야 하는 수학 문제집.

아이는 왜 풀어야 하냐고 따지다가, 지금 수준에 맞는 단계를 풀지 않으면 나중에 얼마나 힘들어질지를 이야기해주면 이내 수긍하고 억지로라도 문제집을 푼다.

끊임없이,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이유를 곱씹으며 말이다.



한국에 있었어도 수학학원에는 보내지 않았을 테지만, 이 정도 문제집은 풀었을 것이다. 선행을 해서 아이 수준보다 높은 것을 푸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기 학년에 알아야 할 수학 진도를 나가고 있는 것뿐이다.

아이는 올해 3학년 나이인데, 사실 문제집이 많이 밀려서 2학년 것을 아직 풀고 있다.

그런데도 아이는 수학이 쉽지 않고, 아직 재미가 없다.



요즘 아이는 3일에 한 번 학교에 간다. 학교에 가는 날은 더없이 즐겁고 행복하지만, 그 외의 날들엔 온라인 수업과 씨름을 하고 있다. 학교는 같은 반 학생들을 X반, Y반으로 나누어 하루는 X반 등교, 다음 날은 Y반 등교, 그리고 다음날은 X, Y반 모두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는 것으로 스케줄을 짰다. 선생님들이 학교 가는 애들 챙기느라 그런지 온라인 수업의 수준이 이전보다 더 낮아졌다. 라이브 수업도 길지 않고, 숙제도 없는 날이 많다. 아이는 수업 사이사이에 침대에 누워 있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고, 인형을 갖고 놀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매일 아니 격일로라도 학교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 일정 외에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영어 과외를 받고, (학교에 제대로 갔으면 안 시켰을 것 같다) 일주일에 두 번 포르투갈어 과외를 받는다. 그리고 수영 레슨 1시간, 테니스 레슨 30분씩 두 번, 피아노 레슨 1시간을 받는다. 이 시간 이외의 시간에는 모두 노는 시간. 그리고 내가 내주는 숙제, 하루에 수학 문제집 5페이지가 전부다.



남편의 브라질 주재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는 해에 아이는 5학년이 된다. 수학을, 제 나이에 배우는 것은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아이에게 문제집을 풀리지만 아이는 유독 그것을 힘들어한다. 선생님과 같이 하는 건 다 재밌고 좋은데, 어려운 포어도 너무 재밌다는데 유독 내가 시킨 수학만 어렵고 하기 싫고 미루게 되는 것이다.


이대로 괜찮을까.

한국에 돌아가서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을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그럴 때마다 오소희 언니의 책을 읽다 발견한 구절을 생각한다.

내가 꿈꾸는 아이의 미래는 바로 이 퀼트 담요의 한 조각이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 이곳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무게를 들어 올려 수직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이다. 절벽에 난 길이 다양할수록 절벽 아래서 불가능에 짓눌리는 사람도 줄어들겠지. 달의 계곡에서, 나는 마르셀로와 같은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하고 바랐다. 저마다 다른 사랑과 삶의 방식들이 한 조각씩 동등해서, 펼치면 놀랍도록 아름다운 한 폭의 퀼트 담요 같은 세상을 꿈꿔보았다.
<내 눈 앞의 한 사람> p274


32486004800.20221019140118.jpg




내 아이가 자신의 재능으로 자기만의 행복한 삶을 꾸리기를, 마음으로 바라는 나.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렇게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해도 될까 걱정하는 나.

내가 갖고 있는 가치와 현실 사이에서의 갭 때문에 겪는 혼란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지향하는 삶은 책 속 문장처럼 아이의 삶이 퀼트 담요의 한 조각이길 바란다.


아이가 오르는 절벽이 아이만의 길이 있는 절벽이길 바란다.


그 가치를 향해 불안해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이 나의 목표다.


20220805_144732.jpg


어제 언니 공동체에서 열린 줌 미팅에서

오소희 언니의 책 속 한 문장과 함께 이런 나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소희 언니가 명쾌한 답을 주셨다.



아이에게 주어진 현재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고, 추출해 내는 것이 중요해.
아이가 그곳에서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을 믿음을 갖고 주렴.
아이가 그것을 잘 가져가면, 아이는 나중에 어디서든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지금 할 수 있는 것,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힘껏 받아들여.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딱 하나라면 그것을 최선을 다해서 주는 거야.



새삼 우리가 브라질에 와 있다는 게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아이도 나도 한국에선 경험해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


이곳에서의 삶에 감사하며,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힘껏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곳에서 아이가 누리는 것은 모두 아이의 삶에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 있어서 놓치는 것들에 집중하지 말고,

이곳에 있어서 누릴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겠다.



매일매일 초록의 자연을 벗하며 걸을 수 있는 것,

모국어가 아닌 말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것,

숙제가 아닌 재미로 운동을 배울 수 있는 것,

틈 날 때마다 수영하러 달려 나갈 수 있는 것,

지구 반대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것,

다디단 과일들을 매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것,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언어로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것.




이곳에 살고 있어 참 좋다.

아이와 함께 이곳을 누릴 수 있어 참 좋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