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보여준 기적

Fernando de noronha라서 가능한 일

by 초록풀잎


2021년 12월 중순

아이의 방학과 남편의 휴가를 맞아 브라질의 유명한 신혼여행지

Fernando de noronha(페르난두 지 노롱냐)로 향했다.


이곳은 천혜의 자연이 보존되고 있는 섬으로,

관광객 수를 제한하고, 관광객들은 환경세와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야 한다.


왜인지 접근이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었던 곳.


그런데 찾아보니 얼마 전에 생겼다는 직항도 있고,

비행기 값이 비싸다고 들은 것 같았는데 브라질의 다른 여행지보다 약간 비싼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는 의외로 손쉽게 천혜의 섬에 발을 들였다.


여행 둘째 날, 우리는 섬 곳곳의 풍경을 두루두루 둘러보기 위해 섬 투어를 신청했다.

트럭을 개조한 툭툭 같은 차를 타고 하루 종일 섬의 전망 좋은 곳에서 풍경을 보고, 스노클링을 하고, 저녁에는 노을 스폿에서 노을 보는 그런 코스였다.


투어의 첫 번째 장소는 전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바다로 손꼽히는 (브라질에 그런 바다가 있을 줄이야!) Praia do sancho(산초 해변)에 가서 해수욕을 하는 것이었다. 세계 최고의 해변이라 그런가 접근이 어찌나 어렵던지, 절벽 사이로 만들어놓은 사다리를, 딱 한 사람밖에 못 들어가는 좁은 통로에 있는 사다리를 조심조심 내려가야 해변에 닿을 수 있었다.



그 고생을 하면서 내려가 보니 과연,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물속에 들어간 내 다리도, 물속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다리도 다 보였다.

파도가 약하진 않았는데 구명조끼를 입고 들어가서 파도에 몸을 맡기자 정말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물에 뛰어 들어간 사이 아이는 모래놀이를 선택했고, 남편은 나를 따라 들어와 둥둥 떠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잠깐 놀더니 이 재밌는 파도를 아이와 같이 타야겠다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멀리서 보니 남편이 아이를 안고 파도를 거슬러 들어오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 혹시나 이 맑은 물에 물고기가 보이려나 해서 스노클링을 열심히 했으나 물고기는 없었다.

다만 에메랄드 빛 바다 물 사이로 비쳐 든 햇살이 만들어내는 바닷속 무늬를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저 멀리서 아이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엄마 빨리 나와!"


왜냐고 물으니 어처구니없는 답이 들렸다.


"아빠 안경 잃어버렸어!"


순간 악몽이 되살아났다.

딱 1년 전 arraial do cabo 바닷가에서 남편은 안경을 잃어버린 전적이 있다.


https://brunch.co.kr/@firstmind97/115


그때 열심히 찾았지만 안경을 찾지 못했고, 도수 있는 선글라스 덕분에 위기는 모면했지만

남은 여행 내내 밤낮없이 실내에서도 시커먼 세상에서 지내야 했던 남편.


이후 여러 번의 바닷가 여행을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기에 사실 안경에 대해서 아무 염려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의식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실수를 두 번이나 할 거라고 누가 생각을 하겠는가. 말이다.


불과 5분 전 바닷속에서 나와 함께 둥둥 떠서 파도를 탈 때도 그는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려다 유독 센 파도를 만났고, (그의 변명에 의하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아이를 안은채 파도를 등져 안경이 빠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망연자실 해변에 앉아있었고,

그의 부주의함에 너무 어이가 없었던 나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없을 것을 알면서도

해변을, 바닷속을, 파도를 계속 헤쳐가며 찾았다.

다만 경험에 의한 학습이 되어 있었으므로 포기는 빨리 했다.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그 해변을 떠나면서 가이드에게 말했더니 흔한 일이라고 했다.

가이드가 스노클링 안경이냐고 물어서 일반 안경이고 좀 무겁다고 했더니 (남편은 눈이 많이 나빠서 안경 렌즈를 3번 압축했고, 테도 뿔테가 아니라 무게가 좀 나가는 편) 찾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곳에 있던 해변 관리인에게 우리의 안경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해변 관리인은 이곳에 분실물 보관소가 있다며 본인이 청소하다 발견하면 가이드에게 전화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들을 옆에서 들으면서 정말 100퍼센트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안경은 무게가 있으므로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의해 모래에 파묻힐 것이라고,

혹시나 밀려 나와도 누군가의 발에 밟힐 것이라고,

그래서 그걸 다시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0퍼센트라 생각했다.


이후 남편은 투어 내내 앞이 잘 안 보인다며 멋진 풍경들을 앞에 두고도 그냥 차에 앉아있거나, 벤치에 앉아있기만 했다.

그리고 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다행히 챙겨 온 도수 있는 선글라스를 쓰고 이후 또 시커먼 세상 속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만 나왔는데 남편과 아이 둘이서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선글라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두 번이나 위기에서 구해준 고마운 선글라스를 '선 그라시아스'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투어 다음날부터는 우리끼리 자유롭게 예쁜 해변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군데 해변을 가보았지만 그 어느 해변도 산초 해변만 못했다.

사다리 두 번만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가이드 투어라 당시 40분 시간을 주었었는데, 안경을 잃어버린 덕분에 20분밖에 놀지 못했었다.

그 점도 아쉽고, 또 진짜 혹시나 분실물 보관소가 있다고 하니 찾아가 보고 싶기도 했다.


바닷가에 분실물 보관소라니!

환경세를 받고,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는 이곳 페르난두 지 노롱냐라서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틀 만에 다시 산초 해변에 갔다.

그리고 국립공원입장료를 결제하는 카운터에 가서 혹시나 진짜 물어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물었다.


"분실물 보관소가 어디인가요?"


"바로 여기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남편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분실물 중 안경이 있나요?"


그러자 직원은 정말 너무 아무렇지 않게 서랍에서 안경을 꺼내 주었다!!!!!!

안경은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로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남편의 안경이었는데 그는 정말 너무 놀라며 자기 안경이 맞는지 써봐야겠다고 ㅋㅋㅋㅋ

안경을 급히 써보았다.

갑자기 밝은 세상을 보게 된 남편은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고 나 역시 옆에서 무한 감사를 표현했다.


페르난두 지 노롱냐라서 가능했던 놀라운 기적.

안경을 받아 들고도, 다시 쓰고서도 믿기지 않아 우리 세 사람은 한참을 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곳에 다시 오길 참 잘했다고.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물어보길 참 잘했다고.


우리는 그렇게 다시 사다리를 타고 산초 해변으로 내려갔다.


참 고마운 바다, 참 고마운 파도를

그리고 안경을 주워서 분실물 보관소에 가져다준 참 고마운 사람을 생각했다.


우리에게 기적을 선물해준 산초 해변.

천혜의 바다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키기 위해 관광객의 입장을 제한하고, 매일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의 노력이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나저나

이 아저씨.

안경에 줄을 달아줘야 하나,

아니면 라식 수술을 시켜줘야 하나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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