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자주 끼는 반지 두 개가 있다. 은반지인데 하나는 넷째 손가락에 끼고, 하나는 둘째 손가락에 끼는 내가 좋아하는 반지다. 보통 반지를 화장대 보석함 위나, 그 안에 넣어놓고 쓴다. 그런데 오랜만에 반지를 끼려고 보석함을 보았는데 반지가 없었다. 어디 간 걸까.
이 반지 두 개를 세트로 거의 매일같이 꼈는데 코로나로 인한 격리가 시작된 후로 거의 끼지 않았다. 멋으로 끼는 반지를 굳이 집에서도 낄 이유는 없으니까. 그런데 요즘 아이가 학교를 일주일에 한두 번, 하루 2시간씩 가게 됐다. 2시간은 차로 20분 거리의 학교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왔다가 또 데리러 가기는 애매한 시간이라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아이 친구 엄마와 학교 주변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엊그제 학교 가는 날, 오랜만에 반지를 껴볼까 하고 화장대에 놓인 보석함을 열어보았다.
없었다.
다른 팔찌, 반지는 다 있었는데 유독 내가 좋아하는 그 두 반지만 없었다. ‘보석함이 아니라 화장대 서랍에 넣었나?’ 하며 서랍을 다 뒤졌다. 처음엔 대충, 두 번째엔 꼼꼼히, 세 번째엔 정리하며 찬찬히 뒤져보았다.
없었다. 서랍 뒤로 넘어갔나 싶어 서랍까지 몽땅 빼서 다 보았다. 없다.
‘혹시 귀중품 모아놓은 파우치에 넣었나?’ 그 파우치를 열고 대충, 꼼꼼히, 찬찬히 세 번을 찾아보았다.
없었다. 그때부터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나는 여행을 가서 반지를 끼고 다니다가 잠잘 때 빼서 핸드백 안 지퍼에 넣어두는 습관이 있다. 여행지 호텔의 테이블에 놓았다가 잃어버릴까 봐 걱정되어서 말이다. 그래서 자주 들고 다니는 핸드백을 뒤졌는데, 없어서 최근에 거의 쓰지 않은 가방까지 다 꺼내었다. 가방을 뒤지다 오래전에 넣어놓은 다른 반지를 하나 찾긴 했다. 그러나 내가 찾는 은반지 두 개는 없었다. 마침내 최근에 여행 갈 때 들고 갔던 유난히 지퍼가 많은 쇼퍼백을 떠올렸다. ‘그래 거기 있겠구나!’ 신이 나서 열어보았는데, 없었다.
대체 어디 간 걸까.
이번엔 선글라스 통을 뒤지기 시작했다. 가끔 주머니가 없는 큰 가방을 들 때, 액세서리를 선글라스 통 안에 넣어놓기도 하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선글라스 통을 다 확인했는데,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잃어버려도 할 수 없지 뭐.’라고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도무지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은반지 중 하나는 동대문에서 산 2-3만 원짜리 반지지만 다른 하나는 무려 뉴욕 5번가 티파니에서 산 반지였기 때문이다.
첫 뉴욕 여행의 번화한 거리,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무대인 그 티파니 매장에서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산, 추억이 담긴 여행의 기념품이기 때문이다.
종일 반지를 찾는 나를 보고 아이가 먼저 나서서 가방을 뒤져주고, 이곳저곳 찾아주었다. 나는 아이에게 혹시 보석함 위에 있던 반지를 가져가서 놀다가 네 방 어딘가에 흘린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아이는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남편이 대뜸 선글라스 케이스를 이야기했다.
“선글라스 케이스에 넣고 그러지 않았어? 차에 있는 선글라스 케이스에 넣어둔 것 아니야?”
‘아하! 바로 거기였군!’
“자긴 정말 똑똑하다!”를 연발하며 나는 거의 그곳에 있을 것이라 확신을 했다. 그리고 저녁을 다 먹자마자 주차장으로 향했다. ‘드디어 찾았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차를 열어보았지만, 그곳에도 없었다.
얼마 전 차에 선팅 작업을 하느라 하루 동안 차를 맡겼는데 돌아온 차 안에 원래 글로브박스에 넣어두었던 선글라스들이 쇼핑백에 담겨 조수석에 놓여 있었다. 그들이 차를 손보면서 빼놓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그들이 가져간 게 아닐까?
브라질은 빈부격차가 심하고, 저소득층의 소득수준이 물가보다 매우 낮다. 그래서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한 나라 중에 하나다.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다가 핸드폰을 날치기당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고, 차가 막히는 도로에서 정체 중인 차들을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총으로 위협해 돈을 받아 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의 경험담으로 들었다. (나는 다행히 겪어보지 않았다) 국제이사하는 이삿짐에 깜빡하고 결혼할 때 받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넣어놓는 바람에 고스란히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친구도 있고, 집 안 청소를 해주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옷이며 화장품 심지어 쌀까지 가져가는 경우는 매우 흔한 일이다. 그래서 아주머니를 구할 때 뭔가를 가져가지 않는 아주머니를 구하는 게 일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요건이 되는 나라가 바로 이 브라질이다.
그렇다 보니 ‘선글라스 케이스 안에 반지가 있었다면 가져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전에 에어컨 설치 기사분들 오셨던 날 그 반지를 어딘가에 잘 넣어놓는다고 넣어둔 것이 생각났다. 안방에 에어컨 설치를 하러 오셨는데 나는 밖에 있고 그분들이 안방에서 작업하고 계시니까 화장대 위 보석함 그 위에 얹어놓은 반지가 눈에 띌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그 반지를 잘 보관한다고 생각한 곳이 어디였더라.
그 순간 내가 반지를 예쁜 주머니에 넣어 속옷 서랍 구석에 넣은 것이 생각났다. 곧바로 서랍을 뒤져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반지가 나왔다.
잘 넣어둔다고 넣어놓고선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내가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아이와 남편에게 반지를 찾았다며 신이 나서 이야기를 했다.
왜 거기다 두었냐는 아이의 질문에 “아 그 에어컨 아저씨들 오는 날 아저씨들이 가져갈까 봐 그 서랍에 넣어 뒀지.”라고 말하면서 내가 너무 아저씨들을 물건 훔쳐 가는 그런 나쁜 사람으로 몰아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이에게 급히 해명했다.
"아니 그렇다고 아저씨들이 도둑이라는 건 아니고, 사람은 누구나 좋은 물건을 보면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거든."
그때 마침 내가 쓴 책 <초등학생을 위한 개념 국어:고사성어>에서 나오는 예가 떠올라 아이에게 그 이야기로 설명을 해주었다.
"엄마 책에서 '견물생심' 봤지? 그 왜 아이가 자동차 사달라고 조르는데 엄마가 집에 자동차 많다고 안 사주는 거. 생각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견물생심이란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걸 말하거든. 너도 그런 적 있지 않아? 뭘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러자 아이가 지난주 친구 집에서 본 물건에 대해 말했다. 너무 신기해서 갖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래 그런 것이 견물생심이야. 그런데 내 물건이 아니면 가지면 안 되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
"내가 돈을 모아서 사거나 엄마한테 사달라고 해야 해."라고 아이가 당차게 대답했다.
“그래 맞아. 보고 갖고 싶다고 다 가져와 버리면 그건 도둑질이 돼. 경찰서에 잡혀가.”
그저 조심하기 위해 한 행동을 아이에게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아이는 그럭저럭 이해한 것 같았지만 나는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누군가를 의심하고 방어하는 나의 행동이 아이에게 어떻게 비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