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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둘셋 Mar 20. 2024

13. 택씨는 Taxi

라임 지렸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친구들과 약속시간 10분 전인 급박한 상황! 만나기로 한 곳은 서울 사람들은 모르는 지방민들의 오랜 전통이 깃든 만남의 성지, 시내! 시내의 장점은 말 그대로 핫플이지만 주차할 곳이 없다는 사실! 여기서 "지하철 타고 가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당신은 지방의 열악한 교통인프라를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수도권 주민 혹은 광역시민! 일개 지방 중소도시는 버스만 다녀줘도 "감사합니다"라고 머리를 조아려야 할 판이거늘!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친구들이랑 약속 있는데 늦었어. 어떡하지?"

 "아빠가 데리러 갈게. 집 앞으로 내려와~"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나의 남편.

 "이게 지금 말이 되나? 약속에 늦었으면 택시를 타고 가야지 아빠한테 서른다섯 살 먹은 딸내미가 데려다 달라고 전화를 하는 게 맞아?"

 "오빠는 몰라. 아빠랑 나랑은 이런 사이야. 으휴~ 아들만 있는 집 아들이 뭘 알겠어~"

 아들들은 절대 모를 딸과 아빠의 관계성이란 이런 것이다. 보았니? 나, 우리 아빠가 공주처럼 키웠지롱! 콜택시를 부르는 것보다 빠르고 확실하고 안전한 나만의 택시, 나에겐 택씨가 있다. (여기서 내 남편의 역할을 궁금해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미리 말하자면 나의 남편은 아직도, 여전히 운전을 하지 못한다. 20대를 서울에서 보내는 바람에 운전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30대를 지방소도시에서 보내며 어딜 가나 운전 못하는 남자를 남자로 취급해주지 않지만 열심히 그 소신을 지키는 중이다. 덕분에 나는 이 구역의 베스트 드라이버고.)


 택씨는 가부장적이었다. 가부장이 무엇이냐? 남편이 가정에서 가장으로서 권력을 갖고, 그만큼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택씨는 오여사의 남편으로서, 우리 세 딸의 아빠로서 막강한 권력을 가졌지만 그만큼 많은 책임을 졌다. 우리 집안의 생계를 꾸렸고, 우리 모두의 택시가 되어 여기저기 우리를 날랐다.


 언제나, 늘 몸이 약했던 나는 밥 먹듯이 아팠다. 남들은 약 먹고 한숨 자면 깨끗이 나을 만큼 흔한 감기도 나는 꼭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게다가 한 달에 한 번씩 겪는 생리통은 어찌나 심한지, 타이레놀을 아무리 때려 부어도 소용없었다. 아픈 몸으로 학교에서 하루종일을 버티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 느껴질 때면, 어쩔 수 없이 조퇴카드를 꺼내야 했는데 문제는 우리 학교가 집에서 너무 멀었다는 것이다. 중학교부터 스쿨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던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버스를 타고 싶지 않았고, 쫄면 한 그릇이 1200원 하던 시절에 택시는 기본요금부터 너무 비쌌다.

 "아빠."

 "왜?"

 "나 아파."

 "아빠가 갈게. 내려와 있어."

 택씨는 일이 바쁘면 조금만 기다리라고 할지언정 못 간다고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해도 돈을 쥐어주고 택시를 태워 보내는 게 훨씬 효율적인 것 같지만, 택씨는 늘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조퇴를 허락받고 산비탈을 슬슬 내려오다 보면(우리 학교는 산 중턱에 있었다.) 앞에는 졸졸 흐르는 천과 흐드러진 버드나무들이 보였고, 난간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으면 저 멀리서 다리를 건너오는 택씨의 자동차가 보였다.


 '아, 이제 집에 간다.'

 택씨의 등장과 함께 마음의 긴장이 한 겹정도 풀어지고, 아픈 것도 조금은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빠, 나 아파."

 "어디가?"

 "그냥."

 그러면 택씨는 더 묻지 않고 집으로 향한다. 아픈 체를 하며 조수석에 구겨져 있으면 택씨는 조용히, 빠르고, 안전하게 나를 집으로 데려다준다.

 "전기장판 켜고, 따뜻하게 하고 자. 아빠 간다."

 택씨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간다. 다시 생각해도 택씨가 효율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택씨의 책임감이고, 나의 안정감이며, 우리의 관계이다.


 얼마 전에는 급성편도염으로 열이 40도가 넘게 났다. 어린아이들은 종종 40도가 넘는 열에도 멀쩡하기도 하지만, 성인이 40도가 넘으면 정말 죽을 맛이다. 일단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치아가 덜덜 떨려서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데, 그 상황에서 119보다 택씨가 먼저 생각나더라. 눈물 콧물을 흘리며 치아를 부딪히며 고통을 호소하는, 다 큰 딸내미를 데리고 택씨는 또 응급실로 향한다. 갈 때마다 느끼는 응급실의 차가운 현실은, 나는 죽을 것 같아서 방문했지만 나보다 더 죽을 것 같은 사람이 반드시 있고, 당연히 그들이 먼저 치료받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방금 막 저승사자랑 하이파이브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제발 살려달라"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접수처의 의료진을 바라보는데, 택씨가 벌떡 일어난다.

 "우리 애기가 너무 아픈데, 조금 빨리 봐주실 수 없을까요?"

 서른 후반에 애기라는 소리가 아주 겸연쩍긴 했지만 어쩔 수 있나, 택씨에겐 영원히 애기인걸. 그 애기는 응급실에서의 조치로도 열이 내리지 않아 결국 입원을 했고, 택씨는 내내 나의 심부름을 하며 발이 되어줬다고 한다. (여기서 내 남편의 역할을 궁금해할 사람이 또 있을 것 같은데, 내 남편은 집에 남겨진 우리 아들 둘을 열심히 맡고 있었으니 오해 마시길!)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택씨는 나의 TAXI, 영원히 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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