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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둘셋 Mar 31. 2024

14. 안전제일주의(1)

자나 깨나 불조심, 차조심, 사람조심!

 내가 천방지축 꼬마였던 90년대만 해도 대한민국에는 '이웃'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내 곁의 이웃. 주택에 살 때는 그 골목의 어린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다 함께 몰려다니며 칼 없는 칼싸움도 하고, 서로의 집 옥상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목이 마르면 누구의 집이든 쳐들어가 물을 마시거나 잠시 쉬고 오기도 했다. 내 발이 닿는 곳의 거의 모든 집 아저씨 아줌마들은 내가 누구네 집 첫째 딸인지 알고 있었고, 나도 그들의 누구의 부모님인지 알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익명성이 너무 없어서 엄마가 없어도 이상한 짓을 할 수가 없었고, 어른들은 다 부모님이고 아이들은 다 친구로 인식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마을'을 마지막으로 경험한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내가 살던 곳이 유독 시골이거나 주택이어서가 아니었다. 8살 가을에 우리는 그 당시 우후죽순으로 지어대던 대규모 단지의 복도식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도 '이웃 간의 정'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존재했다. 홀수층, 짝수층으로 나뉘어 운행하는 두 대의 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펼쳐진 1호부터 8호까지의 복도는 전부가 다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나름의 신도시였던 아파트 단지에는 개교한 지 얼마 안 된 '국민학교'가 있었고,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답게 1층부터 층층이 같은 반 친구들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아파트 전체를 경계 삼아 술래잡기를 하기도 하고, 친구 집 초인종을 함부로 눌러대기도 했으며, 차에 치일 위험 없이 킥보드를 타고 내달리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적당한 민원으로도 수습되지 않을 일들을 6~12세의 꼬마들이 매일매일 해댔지만, 그때의 어른들은 다들 '허허'하며 넘어가주셨던 것 같다. 심지어 여름에는 온 집들이 문을 열어두고 방충망만 쳐 두던 때였음에도, 우리들의 우당탕탕한 소리들을 그저 '누가 노나보다'하며 넘어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어린이에 대한 관용이 넘쳤다. '층간소음'이라는 말이 아직 생기기 이전의, 여느 골목길과 다를 바 없는 복도식 아파트에서의 추억들이다.


 모두의 집 열쇠는 공공연히 화분 밑이나 창틀 아니면 우유 구멍에 숨겨져 있고, 거기에도 열쇠가 없어 우리 집이 안 열리면 열려 있는 옆집에 가서 간식이나 얻어먹으며 엄마가 오기를 기다려도 되는, 마을 전체가 아이들을 같이 키워주던 정다운 시대! 하지만 여기 유독 남을 믿지 못하고, 도래하지 않은 여러 가지 상황을 불안해하며,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남자가 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바로 택씨이다. 오여사가 지나치게 안일한 성격인 탓인지, 이 집 셋이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유독 예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택씨는 모든 안전에 지나치게 예민했다. 오여사는 현관문 앞에 '가스 밸브, 수도꼭지, 형광등'이라고 크게 써놓곤 했는데(가끔 비슷한 느낌으로 버전이 바뀐다.), "이게 뭐야?"라고 물으면 "까먹으면 아빠한테 혼나는 거."라고 대답했다. 택씨는 보통은 근엄한 표정이거나 신나는 표정이었지만, 이러한 안전과 관련한 실수가 생길 시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강도가 들어오게 된다. 그 강도는 얼굴에 복면 같은 것을 쓰고 한 손에는 우리 막둥이를 안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뭘 들었던가...? 잘 기억이 안 난다. 흐릿한 기억으로는 쪼깐한 애기였던 막둥이는 강도에게 꼭 안겨 찢어질 듯한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고, 거실에 모여서 뭔가를 하고 있던 오여사와 둘은 뒤를 돌아 강도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거의 용수철이 튕겨져 나오듯이 움직였던 것 같다. 나는 조금 고장 난 인간처럼 벌떡 일어나 방방 뛰었는데, 그때 내가 웃고 있었는지 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강도를 만났을 때의 바람직한 몸가짐'에 대한 매뉴얼이 없던 터라 다들 그냥 자신의 놀람을 다양한 발성과 몸짓으로 마음껏 펼쳐내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우리 참 오합지졸이다.', '우와, 이제 죽나?'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럴 때 놀라운 모성애로 오여사가 구해주지 않을까 하며 흘긋 쳐다본 오여사의 표정이 너무 황망해서 나도 그냥 포기했다.


 그렇게 모두가 고장 나서 어버버 하고, 방방 뛰고, 으아앙앙 하던 사이 놀라운 일이 펼쳐지는데, 갑자기 강도가 복면인지 모자인지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확인한 강도의 얼굴은 다름 아닌 택씨!

 "헤헤, 그럴 줄 알았지."

 정신없이 방방 뛰던 나는 곧바로 태세를 전환해서 코난인 척을 하고는, 머쓱하지 않도록 몇 번 더 방방 뛰었다. 찢어지게 울던 막둥이는 조금은 누그러진 울음소리를 냈고, 오여사와 둘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여사가 볼멘소리를 하기도 전에 택씨가 먼저 근엄한 소리를 내었다.

 "누가 현관문 안 잠갔어? 진짜 강도라도 들었으면 어떡할 거야? 이렇게 울고만 있을 거야?"

 여름에는 현관문도 열어 놓고 잠도 자던 시대에, 우리 집은 15층, 게다가 맨 끝에 있는 1호. 밖에 나가면 이런 집들이 수두룩 빽빽한데 굳이 이 아파트 단지의 제일 끝 동에 있는 제일 꼭대기 층의 제일 끝 집까지 친히 찾아올 강도가 세상에 어디 있나?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택씨의 말로는 앞으로 문단속을 철저히 하라는 교훈을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하는데, 나는 우리 막둥이가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는지가 더 궁금하다. 모두에게 충격이었을 강도 사건은 이렇게 스즈메급 문단속에 대한 택씨의 신념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택씨가 문단속만큼이나 열심히 단속하던 것이 또 있는데, 바로 우리 딸 셋의 이성교제였다. 아니, 이성도 단속하고 교제도 단속했던 것 같다. '이성', '교제', '이성교제'. 이 모든 것을 단속당한 슬픈 이야기가 계속된다.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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