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 얼른 갈아입을 옷만 챙겨서 내려와."
택씨는 이렇게 다짜고짜 나를 챙겨 어딘가로 데려가곤 했다. 천천히 불러도 될 것을 꼭 서두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황급함으로 나를 설레게 했지. 그러면 나는 잔뜩 기대한 채, 그러나 기대감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며, 과장된 호탕함으로 택씨의 옆자리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래서 우리 어디 갈 건데?"
그날 택씨는 이름 모를 강 하류에 자리를 잡고 여유로운 낚시를 즐겼고, 나는 혼자 수영을 하다 물살에 휩쓸려 죽을 뻔했으며, 택씨는 죽다 살아났다는 내 말을 가벼운 농담으로 넘긴 뒤 몇 마리 민물고기들과 함께 평화롭게 집으로 귀가했다고 한다. 나 진짜로 옆에서 놀던 커플분들 아니었으면 죽었다니까 안 믿네.
택씨는 훌륭한 드라이버다. 택씨의 조수석에 앉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내비게이션이 뭐야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 전국도로지도 한 권으로 택씨는 전국을 누볐다. 사실 전국도로지도도 잘 보지도 않았다. 초록색 바탕에 하얀색 글씨로 된 표지판만으로도 택씨는 가고자 하는 곳에 정확히 도달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우리 세 딸들은 그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솔직히 말하면 잘 앉아있지 않았다. 보통 한 명은 뒷유리 밑에 누워있었고, 한 명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란히 앉아있는 경우는 산길을 오르내리는 급회전 구간에서 뿐이었는데, 우리 셋 모두 뒤를 돌아 아빠다리를 하고 좌우로 출렁이는 상반신의 움직임을 극대화하여 즐겼던 것 같다. 카시트도 안전벨트도 의무가 아니던 그 시절, 안전과 맞바꾼 낭만이 있었다.-농담 따먹기나 하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곳에 도착해 있었다.
택씨는 욕심도 많았다. 아마도 세 딸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매주 토요일마다 할아버지댁을 방문했던 터라 우리 가족에게는 일요일 하루밖에 허락되지 않았는데, 택씨는 그 하루를 가득 채워 살뜰히 시간을 보냈다. 바닷가를 가더라도 한 군데만 가는 것이 아니라 해안선을 쭉 타고 올라가며 경치가 예쁜 바다마다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고,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해맑게 뛰어놀던 우리들이 슬슬 지쳐 나가떨어질 때가 돼서야 집으로 향했다. 택씨는 늘 계획이 있었고, 그 지역의 유명한 것들을 모두 섭렵하고 나서야 비로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곤 했다. 조금 미안한 것은 그때는 우리 셋 다 너무 어려서 어디를 갔다 왔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인데, 그럴 때마다 택씨는 굉장히 답답해한다.
"여기 너 그때 아빠랑 가봤잖아. 그 가는 길에 절도 들르고, 가서 호떡도 사 먹고."
"너 그때 춥다고 해서 얼마 못 놀고 차에 들어가서, 그다음에 여기 갔었잖아. 기억 안 나?"
안타깝게도 초등학생들에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절은 절이라서, 어딜 다녀왔고 어딜 안 가봤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렇지만 훌쩍 떠날 때의 설렘, 새로운 공간에 도달해서 느끼는 해방감, 산과 바다의 빛깔과 소리들은 제법 선명해서 여행을 좋아하는, 운전을 잘하는, 지도를 잘 보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이게 다 택씨 덕분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아있는 여행은 새해를 맞아 온 가족이 함께 해돋이를 보러 떠난 날이다. 1월 1일은 아니었고 그보다 좀 더 뒤, 5일이나 7일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새해를 맞이했고, 아무래도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니 택씨는 해돋이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서해에도 해 뜨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서. 어찌어찌 일어나서 차에 탑승했고, 잠깐 눈 붙였다 떴더니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에 도착했다. 도무지 해가 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어두움 속에서도 사람들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발을 동동거리며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우리는 함께 동동거리다가, 너무 추우면 다시 차로 들어왔다가, 다시 또 궁금해지면 밖으로 나가 동동거리기를 반복하며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아빠, 해는 몇 시에 떠?"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10분만 더 기다려보자."
너무 추워서였을까. 자동차 시계를 가만히 응시하며 숫자가 바뀌는 것을 바라보던 나는 시간을 재촉했고, 택씨는 꽤 정확하게 일출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해 주며 나를 달랬다. 도무지 사라질 것 같지 않던 어두움은 어느 순간 어슴푸레해지다가, 앞에 있는 사람의 패딩 색깔을 맞출 수 있을 만큼 밝아졌고, 손톱만 한, 그렇지만 강력한 빛이 저 멀리서 떠올랐다. 매일 뜨는 해를 굳이 굳이 바닷가까지 와서, 굳이 굳이 어두움을 헤아리며, 굳이 굳이 코가 새빨개질 때까지 추위와 싸우며 봐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 뻔했던 순간에 만난 하얗고, 발갛고, 노란 그 빛은 다른 생각들을 모두 잊게 할 만큼 황홀했다. 한번 머리를 들이민 태양은 생각보다 빠르게 치고 올라왔고, 태양을 정확히 바라보면 눈이 멀어버린다는 상식을 탑재한 나는 그 빛을 고대로 담아 일렁이는 바다를 열심히 바라보았다. 해가 뜨는 것은 매일같이 일어나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매일 같은 일을 다른 자세로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터져 나오는 함성들에서, 마주 보는 눈빛들에서, 서로 맞잡은 손에서. 추웠지만 따뜻했고, 지쳤지만 힘찼다. 희망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이런 순간이 아닐까.
택씨는 이런 순간을 선물하는 것을 좋아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순간을. 하지만 중학생이 된 첫은 빠르게 흑화 하여 앞머리를 광대까지 내리고서는 더 이상 택씨와 함께 여행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아빠, 나 그냥 집에 혼자 있을게, 다녀와. 중학생이 공부해야지, 무슨 바닷가야.
다음 시간에는 성인이 된 첫과 택씨의 여행에 대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