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포기할 수 없는 낭만 한 모금
그 시대 아빠들은 다 그랬다.
90년대를 기억하는가.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라고 말하며 한껏 띄운 앞머리 뽕과 함께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는 X세대들이 거리를 장악하던 90년대를. '새로운 천년이 온다!'는 설렘과 함께 온갖 기괴한 인테리어가 미래지향적이라며 노래방과 PC방을 뒤덮었던 그때를. 동네 오락실에서 늦게까지 놀고 있으면 학원 째고 철권 하다 엄마한테 잡혀 들어가는 옆반 친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던 그 시절을.
세월이 많이 흘러 그때의 기억들은 거의 다 미화되어 뿌연 애니콜 화질로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생각할 때마다 놀라게 되는 것은 바로 흡연문화이다. 지금의 흡연이 일정한 구역에서 하지 않을 시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로 인식되는데 반해, 그 당시의 흡연이란 거의 '젊음'이나 '남성성' 혹은 '낭만'이라 불려도 될 만큼 파다한,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값싸고 질 좋은 향락 그 자체였다. 남자들은-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더욱 여자의 흡연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 담배는 거의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길거리에서의 흡연은 물론이거니와 당구장, 노래방, 심지어는 식당에서도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워댔다. 간접흡연이니 3차 흡연이니 하는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저 퍼져나가는 연기를 바라보며 몽롱해지는 시야에 몸을 맡겨야 할 뿐.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90년대는 그랬다.
우리 집 택씨도 당연히 엄청난 애연가였다. 지금이었다면 집안에서 마땅한 흡연장소는 베란다나 화장실이겠지만, 그때는 보통 안방이나 거실에서 흡연이 이루어졌다.
"첫아, 재떨이 좀 가져와라."
택씨가 재떨이를 요구하면 우리 세 딸들은 택씨 옆에 쪼르르 달라붙어 그가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담뱃갑을 열면 퍼지는 식물의 향긋한 내음도 좋았고, 한창 불장난을 좋아하던 나에게는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도 멋져 보였다. 택씨는 우리가 옹기종기 모여 앉으면 그간 갈고닦은 개인기를 선보이곤 했는데, 그가 얼마나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재주꾼이었을지 상상할 수 있을 만큼 현란했다.
"아빠, 도넛 또 해줘."
택씨의 입에서 하얀 연기로 만든 도넛들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차례를 정해 도넛의 가운데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깔깔거렸다. 택씨는 코로 연기를 뿜으며 용 흉내를 내기도 했고, 뜨거운 담배를 입에 넣었다가 뱉는 차력쇼 같은 것도 보여주며 그의 담배타임을 알뜰히 즐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환장할 노릇이지만, 그땐 그랬다.
택씨의 평화로운, 누구도 말리지 않는 즐거운 담배타임은 첫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며 위기를 맞는다. 고학년이 된 첫은 학교에서는 '흡연예방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첫은 담배를 구성하는 니코틴, 타르, 일산화탄소 따위의 전문 용어들을 배우며 담배가 그렇게 만만한 장난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빠, 담배를 피우면 폐에 찐득한 타르가 붙어서 폐암에 걸려 죽는대!"
무시무시한 시청각 자료들을 잔뜩 보고 집에 돌아온 첫은 택씨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알리지만, 택씨는 심드렁하다.
"첫아, 어차피 인간은 다 죽어."
그렇다. 택씨는 담배가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첫은 그 이후로 택씨의 담배타임을 이전처럼 재미있게 즐길 수가 없다. 아랑곳 않는 저들이 이상할 뿐이다.
그 뒤로 택씨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늘 마지막에 이 구절이 들어갔다.
'아빠, 꼭 담배 끊으세요.'
첫 번째 편지에서 택씨는 '끊으세요.'에서 맞춤법이 틀렸다며 내 편지를 반려시켰다. 어린아이에게 'ㄶ'받침은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다. 이것저것 고민하다 결국 '끓으세요.'라고 썼던 모양이다. 그 다음번엔 특별히 받침에 유의하며 '끊으세요.'라고 적어 보냈지만, 택씨는 여전히 내 요구를 무시했다.
"아, 왜! 아빠가 맞춤법 맞게 써오면 담배 끊는다며!"
"아빠가 언제 끊는다고 했어. 맞춤법에 맞게 편지 다시 써오라고 한 거지."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다니 분했다. 이게 다 택씨 건강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조금 더 커서 간접흡연에 대해 알고 난 뒤로 택씨가 거실에서 흡연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담배를 완전히 끊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중학생 될 때쯤이었나, 갑자기 웰빙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웰빙 열풍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 같이 쫄쫄이 옷을 입고 에어로빅을 하게 만들고, 집집마다 이상한 착즙기-믹서기와는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 아직도 모르겠는-를 장착하게 하고, 비로소 택씨에게도 닿아 흡연이 질병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어떻게 가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택씨는 어느 날 갑자기 웰빙을 선언하고는 1년간 담배를 끊고 헬스장에 다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1년 치 담뱃값을 모아 오여사에게 전달하는 굉장히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 순간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동안 일부러 담배를 태웠나 의심할 정도로, 택씨의 새로운 의지는 대단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고. 자기 관리 끝판왕으로 소문난 유느님도 죽기 전에 담배 한 모금 맛있게 태우고 싶다고 할 만큼, 쉬이 잊기 힘든 매력이 있는 요물이 분명하다. 택씨는 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다시 본격적으로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다. 물론 비공식적으로는 그 전부터라는 걸 알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5남매 중 막내아들이라 시집살이는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너희 아빠가 제일 효자더라."
오여사가 가끔 이런 말로 속내를 내비칠 만큼 택씨는 효자였다. 택씨는 아버지댁과 같은 동네에서 가게를 열어 아버지의 '5분 대기조'역할을 자처했고, 매주 토요일마다 온 식구를 데리고 아버지댁에 들러 시간을 보냈다. 택씨의 아버지는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고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계셨는데, 택씨는 그의 든든한 손과 발이었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컸었는지 우리 모두 보고, 알고, 겪었으므로, 다시 집어든 담배 한 모금을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택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해가 끝나갈 즈음에 평생 해오던 가게를 접고, 그 동네를 떠난다.
시간을 또 흘러 첫은 아이를 밴다. 첫은 서울에 살고 있었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두려웠기에 예정일을 2주 앞두고 친정으로 돌아온다.
"아빠, 담배 계속 피우면 우리 아들 절대 못 안게 할 거야. 3차 흡연 알지? 우리 아들에게는 니코틴, 타르 노출시킬 수 없어. 내가 아빠 때문에 비염에 축농증에, 얼마나 고생했다고!"
이제 엄청나게 커버린 딸내미는 뱃속의 아들을 인질 삼아 아빠를 협박하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진짜로 그럴 셈이었으니 완전 공갈협박은 아니다. 놀랍게도 택씨는 첫 손주를 품에 안기 전에 담배에게 이별을 고한다. 첫은 생각한다. 아, 이것이 아들과 딸의 차이란 말인가! 물론 장난이다.
그래서 택씨가 지금도 금연 중이냐고? 모르겠다. 몇 달 전에 나랑 같이 휴양림에서 고기 구워 먹고 식후땡 하는 모습을 봐버렸다. 택씨 말로는 한 갑 사서 일 년을 보낸다는데, 믿어야지 별 수 있나. 어쩌면 나보다 더 가까이에서 그를 위로하고, 그의 역사들에 함께했을 존재에게 내가 무슨 말을 보탤 수 있겠는가. 나중에 치르게 될 대가는 미뤄두더라도, 지금 당장 분명히 즐거울 수 있고, 확실한 평안을 얻을 수 있으니 이 어찌 낭만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나는 아직 담배를 시작하지 않았다. 내 인생이 내 힘으로 개선될 여지가 안 보일만큼 막막해지는 순간에, 그를 기억하며 한 모금 해보려 미뤄두는 중이다. 그때가 되면, 나도 이 낭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