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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둘셋 May 05. 2024

18. 안전제일주의(2)

아빠 빼고 다른 남자들은 다 늑대!

 얼마 전, 한 달에 한번 있는 둘째 어린이집 부모 모임에 참여했다. 서로서로 집에서의 양육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우리 든리와 동갑인 친구의 엄마가 요즘 아들이 여자친구와 밤마다 영상통화를 하느라 바쁘다는 이야기를 했다. 7세의 연애라니,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마음에 감탄을 보탰다.

 "하온이는 벌써 여자친구가 있어요? 그 집 아들 빠르네!"

 "어? 든리 엄마, 혹시 몰라요?"

 "뭘요?"

 "든리도 여자친구 있는데...?"

 "우리 아들은 아무 얘기 안 하던데...?"

 그랬다. 우리 아들도 여자친구가 있었다. 심지어 나만 빼고 우리 아들의 연애에 대해서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든리가 여자친구를 보는 눈빛이 얼마나 애틋한지 몰라요~"

 "활동할 때도 얼마나 잘 챙겨주는데!"

 "근데 든리 엄마, 표정이 왜 그래요? 충격받았나?"

 한 동안 표정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눈에는 아직도 태어날 때 모습 그대로인 우리 아기가 어느새 커서 이성친구가 생겼다는 것도 놀라운데, 이 친구가 그것을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것에 더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시시콜콜 엄마한테 안 하는 얘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부모가 제일 늦게 아는 소식도 있구나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추궁 아닌 추궁을 시작했다.

 "너 엄마한테 숨기는 거 있지? 말해봐."

 "아무것도 없는데?"

 "너 여자친구 있잖아, 맞지? 왜 엄마한테 말 안 했어?"

 한참을 뜸을 들이며 요리조리 대답을 피하던 둘째는 겨우 이렇게 말을 했다.

 "나는 엄마도 좋으니까 엄마한테는 말을 안했지이~"

 뭔가 기특하면서도 섭섭하면서도, 당연하지 싶다가도 한켠에 서운함이 밀려오는 이 오묘한 기분은 뭘까. 이럴 거면 백 살까지 엄마랑 살겠다고 하질 말았어야지. 매일매일 다정한 눈빛으로 나에게 뽀뽀해주지 말았어야지. 하지만 여기서 더 질척거리면 모르는 여자에게 아들 가지고 질투하는 시어머니 되는 거다. 쿨하게 인정하고 보내주자.

 "그래, 지아랑 잘 지내야 해^^"

 지금부터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지. 나는 남편이 있으니까.


 이런 마음을 느끼고 나니 또 택씨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딸 셋을 키우던 택씨는 우리를 얼마나 단도리를 했는지 모른다. 통금시간은 일몰이었고, 친구 집에서 외박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남자친구는 무슨 남자 사람친구만 되어도 택씨의 레이더망에 걸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를 좋아하던 남자아이가 "너희 집 우편함에 편지를 두었으니 확인해 봐."라고 말해주었는데, 나는 그 편지 때문에 하루종일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편지에 어떤 내용이 있을까 궁금해서가 아니고, 그 편지를 택씨보다 빠르게 내 손에 넣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초조해서 심장이 멈추질 않았다. 택씨가 그 편지를 먼저 발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 뻔히 보였다. 물론 택씨는 남의 편지를 열어 사생활을 추궁할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도, 충분히 나를 앉혀두고 한 시간 삼십 분 정도 학생의 도리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할 수 있는 논리왕이었다. 나는 그 택씨의 구구절절 다 맞는 말과 함께 불러일으켜질 괜한 오해와 또 한 발 앞서가는 괜한 걱정과 심려를 이 한 통의 편지로 야기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물론 택씨의 이런 과한 단도리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딸들이 조금 예쁘긴 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둘은 미모 전성기가 일찍 온 탓에 거짓말 조금 보태면 중학교 때 이 근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이 내 동생과 사귀고 싶어서 나에게 번호를 물어보기도 했다. 또, 그때 유행하던 '다모임'이라는 SNS로 내 동생을 찾아보던 우리 반 일진친구가 정말 얘가 네 동생이냐며 대놓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뺑뺑이 안경 쓰고 앞머리 관자놀이까지 내리고 다니던 반 1등 모범생 스타일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옆 학교 얼짱이 내 동생이라는 게 믿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튼 나를 좋아한다고 3년을 따라다니던 남자애가 동생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며 동생으로 갈아타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일어나던 그 시기에, 드디어 사달이 난다.


 때는 빼빼로 데이. 분명히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만 해도 그런 것은 없었는데, 6학년 즈음에 갑자기 새로운 '데이'가 생겼다며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중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완벽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물론 여중에 다니던 나는 그저 '우정빼빼로'나 돌리며 돈독한 우정을 확인하는 아이템이긴 했지만, 남녀공학을 다니던 둘에게는 조금 핫한 날이었나 보다. 별생각 없이 친구와 한두 개 주고받은 빼빼로를 들고 집으로 들어선 순간 나는 정말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는데, 둘의 책상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빼빼로가 빼곡히 쌓여있는 모습이었다. 그 책상이 교실 책상 아니고, 아마도 집집마다 있었던 굉장히 스탠더드 한-왼쪽 위편으로는 책꽂이가 있고 오른쪽 아래로는 서랍장이 있던-컴퓨터 책상을 겸하던 그런 크기의 책상이었다. 그 책상을 빽빽이 채운 빼빼로라니!

 "이거 다 니가 받은 거야?"

 "어."

 "누가 준건지 다 기억나? 너도 이만큼 준거야?"

 "이 바구니는 누가 줬어?"

 "이거 하나만 먹어도 돼?"

 "몰라 나가."

 그때 둘은 진짜로 사춘기를 정통으로 보내고 있던 시기라 싸가지가 아주 없고 도도하기 그지없었는데, 평소에는 재수 없어서 말도 안 걸었지만 이건 안 물어보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 많은 빼빼로를 집까지 어떻게 가져온 것인지도 궁금했다. 나는 그때 한 가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는데, 내가 평생 받을 빼빼로를 다 합쳐도 이 만큼은 절대로 못 받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뭔가 진 것 같아 분한 마음이 들다가도, '평범한 줄 알았던 내 동생이 이 구역의 인기녀?'라는 생각에 괜히 신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자식이 여기서 더 기고만장해지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차피 저거 혼자 먹지는 않을 테니 개이득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랬다. 그렇게 우리끼리 유사 연예인 가족의 기분을 느끼며 몽실몽실 마음이 부풀어 가던 그때, 택씨가 등장한다.


 "아빠, 이거 봐봐! 둘이 이렇게 빼빼로 많이 받아왔다!"

 둘은 가만히 있었고, 나랑 셋은 호들갑을 떨었다. '아빠, 이거 봐라~ 빼빼로 이렇게 많이 쌓여있는 거 처음 보지?'의 느낌으로다가. 우리는 택씨가 둘의 인기를 새삼 느끼고 감명받을 줄 알았다. 대충 '너 인기 짱이구나!'하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택씨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조용히 그 빼빼로들을 쳐다보더니,

 "첫이랑 셋은 잠깐 나가있어 봐라. 둘은 아빠랑 얘기 좀 하자."

 하고는 우리를 쫓아냈다.

 그리고 둘은 한동안 그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나와 셋은 문에 바짝 귀를 대고 뭐라도 들어보려 했지만, 낮은 택씨의 말소리가 웅웅 댈 뿐이었다.


 "너 왜 혼났냐?"

 물론 택씨는 혼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학생으로서의 본분과 인간으로서의 도리에 대해서 이야기했겠지.

 "몰라. 내가 어떻게 하고 다니면 얘들이 나한테 이렇게 빼빼로를 주냐고 하던데?"

 "걔들이 너를 좋아하는 게 니 탓이냐?"

 "그러게 말이야. 모르는 애도 주던데. 앞으로는 걍 주면 버려야 되나."

 "버리지 말고 나 줘라. 나는 여중이니까 내가 받았다고 하면 아빠가 뭐라고 안 하지 않을까?"

 "야, 넌 그걸 받고 싶냐?"

 그 많던 빼빼로를 누가 다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일은 후에 내가 대학을 서울로 진학하기로 마음먹게 해 준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 나의 다짐은 '대학은 죽어도 여길 벗어난다.'였으니.


 이런 택씨의 단도리 덕에 그래도 많이 비뚤어지지 않고 평생을 모범생으로, 착한 아이로, 1인분은 하는 사회인으로 잘 컸다. 그렇지만 애를 너무 억압하면 빵 터진다는 것 또한 나의 20대로 알게 되었다. 택씨가 모르는 20살 이후의 나의 인생은 기숙사에서 보낸 시간보다 동아리 방에서, 강남역 벤치에서, 한강둔치에서, 아직 운행을 시작하지 않은 지하철 역에서, 24시간 맥도널드에서 보낸 밤이 더 많다고 말하면 좀 설명이 되려나. 울타리 밖의 자유롭고, 불안하고, 신나고, 불행한 세계를 20대에 열심히 겪은 첫은, 돌연 서울생활을 접고 다시 아빠 곁으로 돌아와서 얌전히, 안전하게, 평온하게, 소소하게 지내고 있다. 반면 대학시절을 택씨와 함께 보낸 둘과 셋은 지금도 수도권에서 내려오고 있지 않는다고 한다. 하하.. 아빠 좀 적당히 하지.. 하하.. 이게 다 누구 때문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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