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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무늬 Sep 19. 2019

당신과의 약속이 하루의 전부일 누군가

[픽션에세이]

다녀오겠습니다”


남자의 차에서 내린 아이는

제 등치만한 가방을 메고

한껏 시무룩하게 교문을 들어선다.

아침 내내 남자는 

아이의 뒷모습이 영 마음에 남는다.


대체 남자가 뭘 잘못한 걸까..

이번 주말엔 꼭 같이 자전거 타기로 한 약속,

당직도 바꿔가며 지켰겠다..

명절에 받은 용돈,

엄마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갈 뻔한 것도 지켜줬겠다-


그런데도 어제밤부터, 아이의 표정은 계속 어둡다.

남자가 퇴근해 들어올 때 잠깐, 눈이 반짝이더니, 

이내 뾰루퉁해서는, “다녀오셨어요” 

한마디 하고는 끝이었다.


바쁜 업무를 잠시 미뤄두고, 아내에게 SOS를 친다.

“애한테 무슨 일 있어?”


아뿔싸. 아내의 답장을 받고서야,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당신 어제, 햄버거 사가지고 들어온다고 약속했었어”


.........


영화 <솔드 아웃>은 제목 그대로,

사려고 했던 물건이 매진된 후의 상황에 관한 이야기다.


아들에게 장난감 로봇을 사주겠다고 약속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바빠서 그 약속을 까맣게 잊고 만다.

크리스마스 이브 직전에야 약속을 기억해 내지만,

급하게 찾아간 매장, 코앞에서 로봇은 매진되고,

영화는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어떻게 약속을 지키는지 그 과정을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가 로봇 하나를 구하기 고군분투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멀어진 아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이었다.

한 번, 두 번...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아들과의 거리를 멀어지게 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의 경전 탈무드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아이에게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거짓말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해서

‘그냥 한 번 해보는 말’도 있다는 것-

가끔은 안 지키거나 지킬 수 없는 약속도 있다는 것-

그런 ‘빈말의 세계’같은 건, 상상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세상...


‘이거 하자, 저거 꼭 해줄게’

그 약속이 하루의 전부일 아이들에게

지킬 수 없다면 덜 약속하고,

약속한 것보다 더 해주는 어른이 되기는, 어려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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