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에세이]
“다녀오겠습니다”
남자의 차에서 내린 아이는
제 등치만한 가방을 메고
한껏 시무룩하게 교문을 들어선다.
아침 내내 남자는
아이의 뒷모습이 영 마음에 남는다.
대체 남자가 뭘 잘못한 걸까..
이번 주말엔 꼭 같이 자전거 타기로 한 약속,
당직도 바꿔가며 지켰겠다..
명절에 받은 용돈,
엄마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갈 뻔한 것도 지켜줬겠다-
그런데도 어제밤부터, 아이의 표정은 계속 어둡다.
남자가 퇴근해 들어올 때 잠깐, 눈이 반짝이더니,
이내 뾰루퉁해서는, “다녀오셨어요”
한마디 하고는 끝이었다.
바쁜 업무를 잠시 미뤄두고, 아내에게 SOS를 친다.
“애한테 무슨 일 있어?”
아뿔싸. 아내의 답장을 받고서야,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당신 어제, 햄버거 사가지고 들어온다고 약속했었어”
.........
영화 <솔드 아웃>은 제목 그대로,
사려고 했던 물건이 매진된 후의 상황에 관한 이야기다.
아들에게 장난감 로봇을 사주겠다고 약속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바빠서 그 약속을 까맣게 잊고 만다.
크리스마스 이브 직전에야 약속을 기억해 내지만,
급하게 찾아간 매장, 코앞에서 로봇은 매진되고,
영화는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어떻게 약속을 지키는지 그 과정을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가 로봇 하나를 구하기 고군분투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멀어진 아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이었다.
한 번, 두 번...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아들과의 거리를 멀어지게 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의 경전 탈무드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아이에게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거짓말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해서
‘그냥 한 번 해보는 말’도 있다는 것-
가끔은 안 지키거나 지킬 수 없는 약속도 있다는 것-
그런 ‘빈말의 세계’같은 건, 상상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세상...
‘이거 하자, 저거 꼭 해줄게’
그 약속이 하루의 전부일 아이들에게
지킬 수 없다면 덜 약속하고,
약속한 것보다 더 해주는 어른이 되기는, 어려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