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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무늬 Sep 15. 2019

기대보다 재밌고 생각보다 슬프고 예상과는 다르기도 한

[픽션에세이]

“시작하지 말 걸 그랬어”


무슨 책이길래 그렇게 열심히 보느냐는 동료의 물음에

여자는 툭, 이런 대답을 던졌다. 

대답해 놓고 보니 어쩌면 이것은 

동료의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 시절 이후로는 펴 본적이 없던,

아주 오래된 연애소설 한 권이 

지난 주말 우연히 손에 잡혔다. 


이미 읽어 아는 얘기,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끝나는 지 다 아는 얘기.

그런 줄 알면서도 여자는 어쩌자고, 이 책을 다시 손에 잡은 걸까.


그러니 여자가 했던 답은, 

관계에 대한 답인지도 모르겠다. 


시작할 때 이미 다 알고 있던 결말,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끝날지 다 알았던 얘기.

그런 줄 알면서도 여자는 어쩌자고,

어차피 미래완료형이었던, 그 사랑을 시작했던 걸까.


그러게... 시작하지... 말 걸 그랬다.


.......


제목만 보고도 끝을 짐작할 수 있는 소설,

줄거리만 훑어봐도, 결론을 이미 알 수 있는 영화- /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소설을, 그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첫문장에, 첫장면에.. 이미 마음을 다 뺏겨버려

결론을 뻔히 알지라도 

끝까지 보지 않을 방법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알고도 선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론이 어떨지 뻔히 알더라도,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기대보다 재밌기도, 

생각보다 슬프기도, 

예상과는 다르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우리는... 

그 이야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에서 결론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은 어쩌면 충분히,

기대보다 재밌기도,

생각보다 슬프기도,

예상과는 다르기도 했으니까.

그것만으로 그 이야기는, 충분히 행복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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