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에세이]
“시작하지 말 걸 그랬어”
무슨 책이길래 그렇게 열심히 보느냐는 동료의 물음에
여자는 툭, 이런 대답을 던졌다.
대답해 놓고 보니 어쩌면 이것은
동료의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 시절 이후로는 펴 본적이 없던,
아주 오래된 연애소설 한 권이
지난 주말 우연히 손에 잡혔다.
이미 읽어 아는 얘기,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끝나는 지 다 아는 얘기.
그런 줄 알면서도 여자는 어쩌자고, 이 책을 다시 손에 잡은 걸까.
그러니 여자가 했던 답은,
관계에 대한 답인지도 모르겠다.
시작할 때 이미 다 알고 있던 결말,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끝날지 다 알았던 얘기.
그런 줄 알면서도 여자는 어쩌자고,
어차피 미래완료형이었던, 그 사랑을 시작했던 걸까.
그러게... 시작하지... 말 걸 그랬다.
.......
제목만 보고도 끝을 짐작할 수 있는 소설,
줄거리만 훑어봐도, 결론을 이미 알 수 있는 영화- /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소설을, 그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첫문장에, 첫장면에.. 이미 마음을 다 뺏겨버려
결론을 뻔히 알지라도
끝까지 보지 않을 방법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알고도 선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론이 어떨지 뻔히 알더라도,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기대보다 재밌기도,
생각보다 슬프기도,
예상과는 다르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우리는...
그 이야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에서 결론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은 어쩌면 충분히,
기대보다 재밌기도,
생각보다 슬프기도,
예상과는 다르기도 했으니까.
그것만으로 그 이야기는, 충분히 행복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