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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shion MD Jerry Mar 02. 2022

8. MD와 '심리학'

Semi Pro급 심리학자 MD

 기진맥진. 퇴근하는 길이다. 평소보다 늦은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시즌 발주가 눈앞이다 보니, 판매율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포트폴리오 구성도 살펴보니 눈 깜짝할 새에 퇴근 시간 이미 늦어있다. 정신줄 놓고 있는 스스로를 채근해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 스피드게이트에 사원증 찍는다. '띠딕' 태깅 소리 들으며, 잠시나마 퇴근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도 잠시, 허기가 진다. 정신없이 점심을 챙겨 먹었고 시간도 제법 흘렀으니, 배가 고픈 것이 당연하다. 스스로 항상 다이어트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다수의 상황에서는 필자의 의지 굶주림노예가 되고 만다. 매년 초 필자의 목표 중 하나는 다이어트지만, 이제껏 목표 달성의 기쁨을 느껴본 적은 없다. 의지박약인가... 이때,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온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회사 형이다.


 '어디냐!? 아직 퇴근 전이면, 지하에 삼겹살 먹고 있으니 내려와"

 

 흔히들 말하는 '번개'다. 때로는 힘든 부탁이지만, 때로는 이겨 내기 힘든 유혹이다. 게다가 필자는 번개를 거절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러니 다이어트는 항상 뒷전일 수밖에... 그렇게 신속한 단념과 발 빠른 실행으로 삼겹살 집에 간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소주 한잔을 받고 삼겹살을 먹어본다. 두툼한 삼겹살에서 터져 나오는 육즙의 훌륭함으로 첫 한 점의 행복감과 만족감이 채워진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에는 삼겹살은 입에도 대지 않던 필자였다. 어릴 적 삼겹살을 먹고 급체한 이후로 그 뒤에는 시도는커녕 쳐다도 보지 않고 살았다. 심리적으로 삼겹살에 대한 강한 기피증이 생긴 것이다. 입사 후 변화가 왔다. 영업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회식은 많았고 회식의 주요 메뉴 중 하나는 삼겹살이었다. 안주빨이라도 있어야 버틸 수 있던 터라 열심히 먹기 시작하더니 맛을 알아 버렸다. 대한민국에서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삼겹살이었던 것 같다. 때마침 필자의 마음을 잘 표현한 심리 법칙을 하나 발견했다.


 가르시아 효과 

  : 특정 음식을 먹고, 구토나 복통 같은 불쾌한 경험을 한 후 그 음식을 기피하게 하는 현상이다.


 음식뿐만 아니라 처음 한번 좋지 못한 기억을 가지게 되면, 필자에게는 피하거나 외면하는 관성이 생겼다. 대학 시절, 그렇게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열심히 듣는 과정은 이상하게도 C+이다. 오히려 뒤에 앉아서 딴짓하는 과정의 성적이 좋을 정도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 시절 필자의 자리는 대다수 뒷자리에 위치한다. (참고로, 학점이 아주아주 훌륭하지 않다.) MD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평소에 판매가 잘 되는 Basic 상품인데, 꼭 필자가 베팅을 하면 그렇게 불경기이거나 품질에 문제가 생긴다. 

  처음 MD를 맡을 당시, 스웨터와 티셔츠 담당이었다. 아무래도 잘 모를때는 기존의 DATA를 바탕으로 좋은 점은 가져가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작년에 대박났던 스웨터의 소재를 그대로 쓰고, 디자인도 간결히 해서 약간의 디테일을 넣은 상품에 베팅을 하였다. 여기서 필자의 불행이 시작한다. 소재도 같고 디자인도 간결했는데 약간의 그 디테일이 문제였다. 가슴 쪽에 차별화포인트로 다소 얇게 패턴을 넣었는데, 웬걸,,, 구매한 뒤 몇 번 입으면 패턴이 풀려서 구멍이 나는 것이었다. 매장에서 우스갯소리로 말하길 입기만 하면 기가 막히게 가슴에 보여주기 위해 구멍나는 옷이라고 했었다. 끔찍했다. 수량은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죄다 불량이라니...고생길이 눈에 보였다. 상품의 불량 사유를 조사하고 불량상품을 모아 소각하기까지 품의란 품의와 사유서란 사유서를 작성하고 나서야 이 사건을 3개월만에 종료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고생을 죄다 모아서 한 뒤에서야, 나만의 루틴이 하나 생겼다. 바로 Basic 상품에는 베팅을 최소화하는 습관인 것이었다. 이렇듯 살다 보면, 자신만의 루틴이라면 루틴, 징크스라면 징크스가 있기 마련이다. 필자 뿐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분들이 크고 작은 징크스가 있을 것이다. 놀랍지만, 그런 징크스들을 친절하게도 심리학자들이 심리학적인 법칙으로 알기 쉽게 정의해 두었다.


 디드로 효과 

  : 하나의 물건을 구입한 후 그 물건과 어울리는 다른 제품들은 계속 구매하는 현상

 

 쇼핑을 하다 보면, 필자도 모르게 계산대 앞에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왜 이렇게 많이 샀지?' 쇼핑이라는 신나는 행동 속에 어느덧 소비심리는 극에 달하게 되고, 만끽하다 보면 어울리는 것을 찾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좋은 사자성어로 우리들의 심리를 설명하셨다. 견물생심! 보다 보면 자연히 사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다. 쇼핑을 하는 사이에 스스로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온라인으로 사면 배송비가 붙으니 여기서 사는 게 낫네.'

 '지금 사면 할인해주는데 놓칠 수 없지!.'

 '나는 VIP니깐, 적립금도 더 많이 붙을 거야.'


 이성과 감성의 갈등 고리를 정리해 나가면서, 자신의 내적 대화를 이어 간다. 그러는 사이 내 손에 들려있는 상품은 늘어만 간다. 고객들이 내적 대화를 하는 동안, MD와 VMD는 고객들의 자연스러운 심리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장치들을 설치한다. (VMD는 비주얼 MD로 매장의 연출을 담당하는 직무이다.)

 

 우선, 매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네킨이다. 마네킨에 우리의 주무기라 할 수 있는 메인 상품을 코디해서 입힌다. 마치 마네킨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여러분, 이렇게 코디해서 입으면 이뻐요!! 컬러랑 스타일이 잘 어울려요. 이렇게 그대로 사시면 돼요!!'


 마음에 든 고객은 자연히 그 옷을 찾아 움직이고, 그 옷 주변에는 마네킨에 입혀진 옷 말고도, 잘 어울리는 옷을 행거링해 둔다. 만에 하나, 마네킹 코디가 아쉬울 경우를 대비한다. 컬러에 대한 인간의 선호도는 팬톤 칩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다. '이 파란색은 조금 탁한 거 같아.', '파란색이 과하게 환한 것 같아.', '블루가 차갑게 보여.' 같은 파란색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실제로도 블루는 다 같은 블루가 아니다. 통칭할 뿐이다. 아무튼 비슷한 블루 상품을 배치한다거나, 다른 톤의 상품을 배치해서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골라서 문득 가격표에 손이 가면,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너무 비싼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놓치고 싶지는 않고... 좋던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는 그 순간에, MD와 VMD는 또 다른 장치를 추가한다. 커다랗고 눈에 띄는 POP를 고객의 시선 범위에 설치하고, 당신들이 받을 혜택에 대해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대개, 진행 중인 프로모션 또는 상품의 매력적인 포인트를 부각해둔다. 이쯤 되면, 고객들은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옷을 입어 보기 위해서 피팅룸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최대한 매력적이게 보일 수 있는 전신 거울이 배치되어 있다. 역시나, 마음에 들더니 입어봐도 예쁜 것 같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그렇게 계산대에 이동한다. 매장을 나오는 손에는 어느덧 여러 개의 쇼핑백이 들려져 있다. '디드로 효과'에서 시작하지만, MD와 VMD의 다분한 의도와 함께 실물경제에 기여하는 소비주체가 되는 것이다.



귀인 이론 

  :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이 발생한 원인을 추론하는 이론


 야구에서 타자의 입장에서 3할이면 잘하는 선수다. MD의 의도 역시 성공할 확률이 무조건 높다고 할 수도 없다. 만약 필자의 의도를 벗어난다면, 혼돈의 장에 빠지게 된다. 수많은 가정 속에서 하나하나 연관성을 짚어보고 맞는지 아닌지 검증해본다. 고객의 진심에서 비롯된 구매 패턴이라는 행동에서 물고 물리는 추리 심리전이 시작된 것이다.


 - MD의 가정 : 스웻셔츠에 대한 트렌드가 왔으니, 후디보다 스웻셔츠에 베팅하는 것이 낫다.

 - 차가운 현실 : 후디의 압승!


 자,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것인가. 도무지 숫자로는 원인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다. 짐작만 갈 뿐, 확신이 없다. 이럴 경우, 보통 두 가지 대응을 해본다. 현장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고객의 반응을 물어본다.


 - MD : 점 대표자님! 궁금한 게 있어요. 다른 브랜드를 보면, 후디보다 스웻셔츠가 호조라고 하던데,

           당장 우리는 반대의 상황이 일어나고 있어요. 혹시 판매하던 중에 느껴지는 게 있나요?

 - 점 대표자 1 : 오버핏을 선호하는데 이번 스웻셔츠는 핏이 다르네요. 반대로 후디는 잘 나왔어요!

           → 유추 1 : (의도적인 핏이라면) 오버핏 대세를 거스른 대역죄인

            유추 2 : (오버핏을 의도했는데...) 생각대로 만들 수 없는 한계. 디자이너에겐 희망 고문인가

 - 점 대표자 2 : 요즘 레터링 타입이 좋은데, 그래픽만 너무 많아요. 아이비리그 스타일들 봐도..

            유추 1 : 시장 조사 때 우리는 마치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고 판단한 것과 같이 본 것인가

            유추 2 : 그냥 그래픽이 안 예쁜 것인가


 이외에도 컬러, 소재 등 다양한 피드백들에게 직면하게 된다. 방탈출 게임을 해본 사람이 있다면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고 찾아가는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차이가 한 가지 있다면, 월요일 오전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 전화를 몇 통하고 나면 유추들이 쏟아지고, 결국에는 무엇이 맞는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이다. 결국 나의 판단에 맞기게 된다. 물론 한 가지 이유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고, 우선순위를 생각해서 정리를 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불확실하다면 현장에 나가서 고객들이 내적 대화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선수 입장 : 고객이 매장으로 들어온다.)

 - 최악의 상황 : 아예 스웻셔츠를 보지 않는다. (유추 불가 상황)

 - 상황 1 : 후디와 스웻셔츠를 보더니, 금방 후디를 선택해서 구매

                유추 1 : 아, 후디를 사려고 온 목적구매?

                유추 2 : 후디 > 스웻셔츠      

                              * 유추 1이든, 2든 먼가 해결이 안 된다.

 - 상황 2 : 스웻셔츠 행거에서 계속 뒤적뒤적하는데,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유추 1 : 디자인, 컬러가 무언가 분명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분명히 있다.

 - 상황 3 : 하나의 스웻셔츠를 집어서 피팅룸에 입어 보더니, 바로 나간다.

                유추 1 : 입었을 때 핏 또는 착용감이 별로다.

 - 상황 4 : 마음에 들었는지 들어서 뒤적뒤적하더니, 가격택을 보고 그냥 나간다.

                유추 1 : 가장 명확하다. 그냥 그들의 입장에서 비싼 거다.


 위의 상황은 정리를 해서 간결해 보이나, 사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지켜봐야 한다. 1시간 동안 고객이 없을 때도 있고 몰릴 때도 있다. 마치 낚싯대를 던져 놓고 세월을 낚는 강태공의 심정으로 기다려야 한다. 대어가 낚일지, 허탕을 칠지 아무도 모른다. 무언가 그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믿고 따르는 것 말고는 MD의 선택지가 없다. 그렇게 오늘도 매장에서 서성이며 곁눈질을 할 수밖에.


 밴드왜건 효과

   :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정보를 따라 구매하는 현상이다.


  인플루언서라는 단어를 업무에 사용하기 시작한 건 10년도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파워블로거라는 표현을 썼다면, 이제는 그 역할을 대체한 것이다.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숫자는 그 계정을 가진 사람의 명함이 되었고, 스타일이 브랜드의 결과 같다면 상품을 시딩 한다. 그리고 그 상품을 입고 잘 세팅된 모습으로 그들은 찍어서 SNS에 업로드하거나 라이브 방송을 한다. 그리고, 이에 공감한 팔로워들의 하트 숫자가 무한정 늘어간다.


  몇 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유투버들이 등장했다. 영상을 찍어서 올리고 조회수 역시 올라간다. 그리고 그 채널의 구독자 숫자가 올라가고 그 채널의 경쟁력이 강해진다. 이제는 영상으로 우리는 그전에 보지 못한 다양한 느낌을 볼 수 있다. 팔로워와 다르지만 비슷한 구독자 수의 파워는 너무 강력해서 유투버와 함께 하려면 제법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과거 우리에게 트렌드 또는 문화를 전파한 TV의 영향력을 점차 감소하고 이렇게 대체재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SNS와 유튜브로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TV 광고에 대한 파괴력이 과거 대비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SNS와 유튜브를 보는 젊은 층의 고객들은 솔직하며 빠르다. 좋다 싫다가 명확하며, 구매 의사 결정도 확실하다. SNS 팔로우 또는 유튜브 구독한 고객의 선택을 받은 그들은 이미 검증이 된 스타들이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고객의 로열티와 공감대가 높다.


  어느덧 상품 MD는 내가 활동하는 상품의 범위와 어울리는 인플루언서와 유투버를 리스트업 한다. 그리고 마케터와 협의를 해서 비용 규모와 노출 기간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 물론 나의 브랜드가 강력하다면, 그들과의 협의는 조금 빠르고 간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상황의 반대라면, 비용은 증가하고 기회 역시 적다. 그들의 플랫폼이 강력함을 실로 체험하고 있다. 주말 또는 퇴근하는 지하철 등 일상에서 그들이 업데이트한 영상 또는 피드를 보고 있다. 연결된 링크를 통해 구매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들의 팔로워이자, 구독자이기 때문이다.


 시장을 리드하는 것은 고객의 습관


  심리학 중 소비 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고객의 행동 패턴을 통해 구매 심리를 분석하고, 대안 역시 제안한다. 심리학 책의 다양한 법칙을 보다 보면, 참 MD에게 필요한 고객 패턴 분석이 많다. 베스트셀러로 다양한 심리학 책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필자와 같은 이들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해결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역사학자의 명언으로 조금 응용해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세상은 거대한 골리앗이 아니라, 상처받은 다윗에 의해 발전한다.'  <말콤 글래드 웰>

  -> '시장은 거대한 골리앗(공급자) 아니라, 지름신이 온 다윗(고객)에 의해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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