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ashion MD Jerry
Aug 27. 2022
9. MD와 "취미"
취미 속 녹아있는 Life Style
필자가 회사생활을 시작한 지 8년이 지난 2018년 2월 28일에 일어난 사건이다. 모든 직장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놓은 역사적인 법안이 통과되었다.
"근로시간 단축, 근로기준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 주 최대 근로시간이 현재 68시간(평일 40시간+평일 연장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에서
52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16시간을 단축
보여주기 식 구호에서 끝날 수 있는 법일 수도 있지만, 어길 경우에는 사업주는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페널티를 넣음으로써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각 회사 인사팀의 경우, 법적 범위 내에서 업무의 효율을 찾는 방법을 제안해야 하기에 스스로가 52시간 내에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TV광고에는 저녁시간 취미를 즐기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필자의 경우에도 은연중에 야근과 주말 근무를 익숙하던 라이프스타일에 크나큰 변화가 온 사건이었다. 기존에 상상하기 힘들었던 자신만의 시간이 평일 저녁에 생긴 것이다. 언론에서는 그때부터 이를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책으로만 보던 "Work-life balance : 일과 삶의 균형"이 필자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렇게 법이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시행이 되자, 필자 주변의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취미활동을 시작했다. 퇴근 후 혹자는 러닝, 필라테스, 요가, 자전거 등 활동적인 취미를 시작하기도 하고, 혹자는 어학공부, 독서, 음악 등 배움을 추구하였으며, 혹자는 도자기 공예, 프라모델, 플레이스테이션 등 개인적인 흥미 중심으로 시간을 활용하였다. 일부는 기존에 하던 취미도 있었지만, 새로운 취미를 찾고 배우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필자도 시간을 쪼개서 하던 취미들에 본격적으로 깊이를 더한 시기였다.
□ 달리기를 할 때 MD가 하고 싶은 이야기
러닝을 좋아하고 자주 하는 러너라면, 소제목을 보자마자 생각난 책이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러닝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을 차용한 소제목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는 러닝을 하는 이유를 위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어찌 보면, 흔히들 하는 이야기가 "힘든데 굳이 굳이 몸을 축내서 뛰느냐"라고 하지만, 그 작은 이유 하나로 오랜 시간 동안 다들 달리고 있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의외로 많은 이들이 러닝을 하고 있다. 한국의 러닝 인구는 일주일 평균 10km 이상을 뛰는 기준으로 파악했을 때 약 400만 명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한국 인구의 약 10%에 가까운 분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달리고 있는 것이다. 가까이 돌아보자면, 필자가 러닝을 시작하기 전에도 공원을 걷다 보면 많은 분들이 그렇게 열심히 뛰고 계셨다. 러닝에도 트렌드가 있다고 해야 할까? 과거와 최근이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남성 어른들, 그것도 나이가 많으신 어른들이 아주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서 뛰고 있었다. 게다가 복장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나시 = 싱글렛"을 입고 뛰었다. 이들을 전문용어로 'Serious Runner'라고 한다. 자기 한계에 도전하며 뛰는 분들이 참으로 많으셨다. 시간이 흘러 최근에는 젊은 여성, 남성들이 즐겁게 모여서 음악을 틀고 힙하게 뛰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마치 패셔니스타들처럼 멋지게 차려입은 러너들이 모여서 한강을 뛰는 건 어느덧 문화가 되었다.(이들은 크루 또는 Fun Runner라고 부른다.) 러닝이라는 운동에 어느덧 패션이 녹아있고 나이키, 아디다스, 데샹트, 호카 등 다양한 브랜드들이 투자를 늘리면서 시장의 규모가 확대되어 가는 것이다.
다시 필자에게로 돌아온다. 삼성물산 근무할 당시 신규 론칭한 브룩스 러닝(2018년 론칭)이라는 브랜드로 19년도에 발령을 받았다. 좋은 선배가 팀장으로 있었고 제안을 주셨기에 고민 없이 지원을 했다. 평소 운동을 즐겨하던 필자인지라 건강도 챙길 겸 일도 하고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발령 며칠 뒤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크루 모임에 나갔는데, 웬걸,,, 놀랍게도 가장 느린 속도의 그룹에서 뛰고 있음에도 헉헉 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딴 그룹의 분들은 말 그대로 어나더 레벨이었다. 사실 지나고 보면, 당시의 속도는 우스운 정도이지만 그때는 죽음의 문턱을 넘나 들었다. 그렇게 몇 번의 모임에 나간 뒤, 내친김에 벤츠 기브 앤 레이스 10km 부분에 참가했다. 5월 초였는데 뜨거운 햇빛으로 엄청나게 더웠던 시기였다. 이른 아침 평소 같으면 아직도 이불속을 헤매고 있을 시점에 필자는 출발선에서 떨림과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머라고 이렇게 떨리는 것인가. 우렁찬 총소리와 함께 힘차게 뛰어나갔다. 처음부터 뒤쳐지기 싫어서 있는 힘껏 달려 나가 본다. 그렇게 1km, 2km, 3km... 거리가 늘어나는 어느 순간 함께 뛰는 이들은 보이지 않고, 혼자서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내딛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주변의 소리, 경치는 나에게 사치일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단순히 그저 걷지는 말자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조금씩 느리지만 뛰어간다. 5km를 지나는 시점인가? 뒷순번 팀에서 출발한 한 러너가 나를 지나가며 화이팅을 외쳐준다. 고마운 마음이 올라와서 크게 응답해주고 싶지만, 그저 미소만 보낼 수 있을 뿐이었다. 날이 더워 물을 마시고 싶지만, 급수대는 아직인 것 같다. 내 몸안의 모든 수분이 배출되는 느낌도 들고, 살면서 이런 느낌은 그저 처음이었다. 8km 지점을 지났을때 오르막이 보인다. 많은 러너들이 걷는 것이 보인다. 느리지만, 필자는 걷지 않고 뛰어 간다. 몇 명의 러너를 지나쳤지만, 어차피 누군가보다 빠르다 또는 느리다는 나에게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오롯이 나만의 레이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뛰고 뛰어서 결승점이 보인다. 결승점이 보이니, 이상하게도 갑자기 힘이 생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면 없던 힘이 생긴다는 그런 느낌인가? 갑자기 속도도 난다. 결승점이 다가온다. 10m, 9m, 3m, 골인! 그렇게 나의 첫번째 10km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결승점을 지나자마자, 주저앉아 있으니 놀랍게도 이상하리만큼 뿌듯하다. 뛸 때는 다시는 안 뛰어야지 하는 마음도 들었는데 적반하장이다. 뛰기 전 머릿속에 있던 무거운 생각들과 몸을 누르던 불편함을 어디 간데없고, 그렇게 몸이 가볍고 경쾌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9년도부터 뛰기 시작한 필자는 여전히 주 3회 정도 러닝을 하고 있다. 일로 시작했지만, 지금 나를 위해 꾸준히 뛰고 있다. 사실 큰 것을 바라고 뛰지는 않는다. 퇴근 또는 휴일 어느 순간이 갑자기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러닝화를 신고 공원으로 간다. 그렇게 30분에서 1시간을 뛰고 나면 귀신같이 나를 괴롭히던 스트레스는 멀어지고, 무겁기만 하던 나의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
MD와 관련한 글을 적고 있는 이 시점에 러닝을 묘사하고 있는 이유는 의외의 연결성이다. 비슷할 게 없을 것 같은 러닝과 MD도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 달리는 동안이나 일하는 동안에 쉬운 것보다는 어려운 상황이 더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① 러닝 : 매번 달리는 과정에서 러너로서 성장하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다.
MD : 매 시즌 일하는 과정에서 MD로서 성장하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다.
② 러닝 : 작은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완주라는 큰 결실을 만들 수 있다.
MD : 작은 디테일들이 모여 시즌이라는 큰 결실을 만들 수 있다.
③ 러닝 : 뛸 때는 그렇게 힘들어도 나도 모르게 다시 시작점에 서있다.
MD : 시즌 준비할 때 그렇게 힘들어도 나도 모르게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러닝 회고록으로 돌아와 본다. 러닝을, 그리고 인생을 바라보는 하루키의 진심이 담긴 생각이라는 느낌이 든다.
"결점이나 결함은 일일이 세자면 끝이 없다. 그래도 좋은 점도 조금은 있게 마련이다."
□ 인생의 여백을 채워준 Playstation
살다 보면, 연애를 하다가 차일 때가 있다. 많다면 많고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지만, 부족하지 않게 만났기에 부족하기 않게 헤어짐을 경험했다. 대학생 때는 그게 머라고 얼마나 힘들던지 그렇게 친구들과 불러 술과 함께 쓰린 마음을 달래며 밤을 새기도 했다. 흔한 말로 병나발을 불면서 말이다. 이제는 30대가 되어서 이 정도야 했지만, 생각보다 타격이 큰 이별을 경험했다. 나이가 들어도 쓰리긴 쓰리다는 것을 느끼며 마음속의 허전함을 방치하고 있을 때, 이별의 아픔을 항상 나누던 고딩친구가 마법의 기계를 사라는 추천을 했다. 그렇다. 그렇게 내 방 한켠에 Playstation4가 둥지를 틀었다. 그때는 몰랐다. 30대 선택 중 손꼽히는 의사결정이라고.
마케팅을 배우며 들었던 문구 중에 하나가 "나이키의 경쟁상대는 바로 소니다"였다. 스포츠라는 영역에 반대되는 게임기 회사가 나이키라는 일류 최강 브랜드의 라이벌이라니. 신발을 살 돈으로 게임기 또는 게임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기회비용의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그 정도로 당시 플레이스테이션을 비롯한 게임 산업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하지만,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을 론칭하고 성공하는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삼성전자와 같이 전자회사였던 소니는 새로운 산업 진출을 위해 90년도 초반 심각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당시 CEO였던 이데이 노부유키는 반도체 산업의 진출도 희망했지만, 게임기 산업에 진출을 선언했다. 진도가 지지부진하자, 내부적으로 "천하의 소니가 장난감을 만드냐", "소니가 져도 되는 상대는 마쓰시타. 현 파나소닉뿐이다. 닌텐도에게 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등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고 위기감이 고조됐다. 이에 노부유키는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는 사업보고서와 함께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고, 우리가 아는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험난한 회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 정리해야 할 일을 마치면 여전히 필자는 플레이스테이션 앞에 자리를 잡는다. 16년도 구입 후 약 6년간 수많은 게임들을 하고 있다. 평소 야구광인지라, 더쇼라는 메이저리그 게임은 거의 인생의 동반자처럼 매일매일 하고 있다. 현실에서도 야구는 일상처럼 일주일 중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매일 게임이 있기에, 야구게임의 1 시즌을 하고 나면 반년이 훌쩍 지나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2 시즌 하면 1년이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의 절대 게임들인 소울 시리즈 게임들이 있다. 레벨을 올리면서 적을 물리치는 거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최근의 그래픽과 스토리의 깊이는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구매해서 친구들과 멀티플레이를 통해 한 챕터 한 챕터 해나간다. 놀랍게도 소울 시리즈 게임이 나오면, 퇴근시간이 제각각이던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일 시간에 집에서 접속을 하고 함께 게임을 즐긴다. 참 놀라운 동기부여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이어폰을 통해 대화하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데 여기에 최적의 게임이 소울 시리즈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며, 때로는 한 명이 영웅처럼 전체를 이끌어주는,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동지애와 희생을 느끼며 하루의 여백을 채우고 있다. 물론 필자를 비롯한 모든 유저들의 와이프들 시선은 긍정적일 수 없으며, 심한 경우 조롱과 멸시의 가까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취미 중 하나이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퇴근 후 욕조 속에 들어가 있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보고 절규했다는 유저 스토리를 듣고 웃픈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플레이스테이션 역시 MD와 묘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
① 게임 : 한번 빠져들면, 끝없는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다.
MD : 한번 자리 잡고 일을 하다 보면, 어느덧 퇴근시간이다.
② 게임 : 게임 카테고리마다 다른 흥미와 재미를 제공한다.
MD : 패션 카테고리(여성복, SPA 등)마다 다른 느낌의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③ 게임 : 게임 속 개인 레벨이나 스킬이 늘어갈수록 할 수 있는 미션이 다양하다.
MD : 경험에 따른 레벨이 높을수록 대응할 수 있는 역량과 선택의 폭이 넓다.
다시 노부유키의 사업보고서를 돌아간다.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어서 전원을 켜자!"
□ 우리가 취미를 가지는 이유 : Here & Now
필자는 우연한 기회로 삼성그룹에 있을 당시, 마음 챙김 명상(Mindfulness) 관련 교육 업무를 할 수 있었다. 당시 32살의 나이였기에, 파견 당시 난감했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명상을 배우며 가장 꽂히는 한마디가 바로 "Here & Now"로 지금 이곳에 있는 내가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뇌과학자인 위스콘신 대학의 리처드 데이비슨 박사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에 58,000여 개의 생각을 하고 산다고 한다. 정말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중 재미있는 것은 80% 이상이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정작 중요한 이 순간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취미를 가진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명상에서 말하는 "Here & Now"의 연장 선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을 통해 "저녁이 있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스스로가 즐기지 못하고 과거 일에 대한 후회와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으로 살게 된다면, 우리 인생의 주인은 어느덧 "나 자신"이 아닌 "나의 환경"이 되고 말 것이다. 만약 아직까지 취미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나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길 추천하다. 명상에 나온 또 다른 명언을 하며 이 챕터를 마친다.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