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일이다.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피상적인 삶에는 깨달음이 없다. 이런 삶에는 아무런 자극이 없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기 어렵다.
새로운 지식은 닫힌 사고의 문을 열어준다. 오늘 목본 수업을 통해 경이로운 나무들의 속 깊은 삶을 들여다보았다. 서울숲에서 6시간의 수업을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나무들의 생태를 경험하게 되었다.
모르는 나무에 대해 알려고 할 때 흔히 범하는 우는 부분적으로 보는 데에 있다. 나뭇잎, 꽃, 열매에만 천착하는 것이다. 나무를 좀 더 제대로 알려면 멀리서 보는 일도 꼭 필요하다. 먼저 숲을 보고 수형을 통해 나무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 그다음 줄기를 보고 세부적으로 보면 된다. 우리가 살아갈 때도 동일하다. 너무 작고 세부적인 일에만 몰입하다 보면 전체를 보지 못하고 큰 흐름을 놓치기 쉽다.
이 번 수업에서 나무에 대하여 알게 된 내용이다. 나무가 식물과 다른 차이는 부피 생장하는 데에 있다. 나무는 해마다 부피가 커지지만 풀은 그대로다. 나무는 자라는 크기에 따라 교목과 관목으로 나눈다. 키가 큰 나무인 교목과 관목의 구분은 어릴 때 가지가 갈라지는 것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관목은 남보다 빨리 자라야 생존할 수 있기에 똑바로 자라지만 관목은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지가 갈라지며 옆으로 퍼져 자란다. 생존방식의 차이로 교목과 관목은 떡잎부터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수나무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나무뿌리는 땅속에 있어야 한다는 굳어진 사고는 드러난 뿌리에 대해 복토를 해주는 것이 나무에게 좋을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드러난 뿌리의 표면은 나뭇가지처럼 변한다. 구태여 흙으로 묻어 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복토가 오히려 나무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꽃가루에 대한 것이다. 흔히 봄철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버드나무와 포플러를 든다. 이는 명백한 오해다. 꽃가루는 미세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흰 솜털로 보이는 것은 씨앗을 멀리 퍼뜨리기 위한 것일 뿐 꽃가루가 아니다. 애꿎은 나무의 씨앗이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은행나무를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하는데 그 말은 화석으로 발견된 나무와 지금 살아있는 것과 형태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청난 기후의 격변에도 불구하고 은행나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는 데 경외감 마저 든다. 은행나뭇가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가지(장지라고 부른다)에 작은 가지(단지)를 뻗어 그곳에 잎이 난다. 모든 가지가 장지로 자라려면 그만큼 영양분이 필요하지만 단지를 통해 잎을 피워내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 필요에 따라 단지는 언제든 장지로 자랄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나무의 지혜다.
잎자루가 달린부분이 단지
메타세쿼이아도 은행나무와 동일하게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린다. 처음에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으로만 존재했다가 뒤늦게 자생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두 나무 다 원산이 중국이라고 한다. 이는 중국이 그만큼 다양한 식생대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흔한 소나무에서도 놀라운 자연의 신비를 만날 수 있다. 소나무는 암 수 한그루로 암꽃과 수꽃이 함께 핀다. 암꽃은 나무의 꼭대기인 정단부에 자리하고 수꽃은 아래에 위치하여 원천적으로 근친교배를 막는다. 다른 나무의 수꽃이 바람에 날려 수정이 되면 솔방울을 맺게 되는데 2년에 걸쳐 결실한다. 가장 놀라운 점은 솔방울에 있다. 솔방울의 표면인 인편 밑에는 씨앗이 담겨 있다. 이 인편은 수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비가 오면 인편이 오므라들어 씨앗을 보호하고 마르면 인편이 펼쳐져 마치 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씨앗이 바람에 날려 자손을 널리 퍼뜨린다. 참으로 놀라운 자연의 경이가 아닐 수 없다.
같은 종의 니무는 유사한 특질을 갖는다. 느릅나무과 나무는 잎자루 바로 윗부분인잎몸의 끝부분이 비대칭이다. 느티나무, 팽나무, 참느릅나무, 느릅나무가 바로 그렇다. 같은 종의 나무를 구분하면서 잎모양으로 구별하는 법도 흥미롭다. 백목련, 목련, 황목련의 잎의 차이를 보며 같은 듯 다른 각자의 개성을 본다. 누구나 다 저마다의 특질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잎깔나무의 고운 잎
수업시간을 통해 처음 만나는 나무들도 있었다. 두충나무, 서어나무, 개서어나무, 잎깔나무, 소사나무가 그들이다. 나무들은 각각 독특한 개성을 가졌다. 서어나무는 수피부분이 마치 울퉁불퉁한 근육처럼 보인다. 실제 영문명도 Muscle Tree라고 하니 보이는 것은 우리나 서양이나 비슷한 것 같다. 흥미로운 나무가 분명하다. 침엽수로 북한지방에 주로 자라는 데 잎이 참으로 아름다운 잎깔나무도 눈길을 끌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그저 나무와 풀이었다. 하지만 개개의 나무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니 보는 시야가 달라진다. 나무마다 각자의 이름이 있었고 그에 따른 독특한 개성이 있었다. 어떤 사물에 대해 알게 될수록 이해하게 된다. 이해가 되면 관심이 간다. 그려면서 친해지는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무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고 나무 한 그루에 대해서 마음을 담아 볼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되었다. 한 뼘 더 자연에 다가가는 걸음걸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