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해설가가 되는 길이 참으로 흥미롭다. 나무와 풀뿐 아니라 조류의 세계에도 입문하게 되기 때문이다.
TV프로그램을 통해 탐조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접한 적이 있지만 내게도 그런 기회가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숲해설가 교육과정에 조류의 이해라는 과정이 있었다. 평소에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새 이야기를 이 과정을 통해 풍성하게 듣게 되었다. 강의실에서 이론 교육을 6시간이나 받았을 뿐 아니라 동구릉에서 실제 새들을 만나는 별도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평소에도 숲에 가면 귀를 열어 새소리를 듣곤 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새의 지저귐이 숲에서의 시간을 풍요롭게 해 주었고 새에 대한 호기심도 일게 했다. 어떤 새가 저렇게 청아한 소리를 내는지, 또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도... 하지만 막상 찾아보려 하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새소리는 들리는데 정작 새는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새가 산다. 건축된 지 20년 정도의 아파트에는 새들이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우리 아파트는 조경이 특히 잘 되어 있어 새가 살기 좋은 환경인 듯하다. 일단은 새에 관한 지식이 별로 없으니 자주 눈에 보이는 새들만 아는 수준으로 까치, 참새, 멧비둘기에 직박구리와 박새 정도를 겨우 구분할 줄 안다. 가끔 시골에 가거나 인근 천장산에서 그리고 남산에서 어치와 딱따구리 그리고 물까치를 이따금 봤을 뿐이다. 그런데 이 번 수업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텃새, 철새, 나그네새에 대해 들을 수 있었고 야외수업을 통해 여러 새들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동구릉
아침 일찍 서둘러 동구릉에 갔다. 입구부터 울창한 숲이 우리를 반긴다. 수 십 년 된 다양한 나무들과 너른 잔디 그리고 계곡에 물이 흘러 새들이 살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을 갖춘 곳이어서 다양한 조류가 서식한다고 한다. 초입부터 새들의 노랫소리가 명랑하게 울려 퍼진다. 지도하시는 교수님께서 탐조용 Field Scope를 준비하셨다. 자세하게 새들을 관찰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교수님은 전날 미리 사전답사를 하셔서 준비된 알찬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맨 처음 조팝나무숲에 둥지를 튼 붉은 머리 오목눈이의 둥지를 보았다. 작고 동그란 둥지에 푸르고 흰 엄지손톱만큼 작은 새알 두 개가 담겨있었다.너무나 깜찍하고 귀여운 풍경이었고 감동이었다. 저렇게 작은 알에서 생명이 탄생한다는 사실도 경이로웠다. 알의 색이 다른 것은 뻐꾸기의 탁란에 대한 방어라고 한다. 새알이 담긴 둥지를 직접 본다는 것이 가슴이 뛸 만큼 감동이었다.
오목눈이 둥지
전문가인 교수님은 새소리만으로도 새들을 알아내셨다. 30년의 내공이 다져진 결과란다. 처음으로 전문 망원경을 통해 나뭇가지에 앉아 쉬고 있는 솔부엉이를 만났다. 망원경 속을 들여다보며 탄성이 절로 나왔다. 너무나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솔부엉이는 야행성 조류로 우리가 보고 있는 오전에는 자고 있는 시간이다. 자면서도 노란 수정체에 까만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였고 몸매도 날렵해 보였다. 사냥꾼으로서 당당한 위엄도 함께 느껴졌다.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에 교묘하게 앉아있는 솔부엉이를 발견한 교수님이 위대해 보이는 순간이다.
솔부엉이
새들의 둥지도 관찰했다. 딱따구리가 파놓은 나뭇구멍에 흙으로 입구를 좁힌 동고비의 둥지를 본다. 정확하게 동그란 구형으로 구멍을 낸 딱따구리도 놀랍고 거기에 덧대어 진흙으로 구멍을 좁힌 동고비도 경이롭다. 보기와 다르게 나뭇구멍은 깊이가 20-30CM 정도 깊다는 점도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자연의 신비는 끝이 없다.
동고비 둥지
동구릉에는 여름철새인 되지빠귀가 많이 살고 있다. 친숙하면서도 명랑하고 맑은 새소리가 울려 퍼진다. 교수님은 되지빠귀의 노랫소리라고 알려 주셨다. 푸른 숲 속을 가득 채우는 고운 새소리가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는 것 같았다.
되지빠귀
교수님은 그냥 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새둥지를 알려주셨다. 전자 포인터로 위치를 가르쳐 주었기에 인식하게 되지 언뜻 봐서는 지나칠 수밖에 없는 숲 속에 동화된 완벽하게 숨겨진 그림이었다.
놀라운 일은 연못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청둥오리 수컷 한 마리가 연못의 섬에 앉아있는 것만 보였는데 교수님은 어느새 어미와 새끼 7마리를 찾아내셨고 계속해서 흰 뺨 검둥오리뿐 아니라 물총새까지 발견하셨다. 청둥오리 가족이 수풀사이를 유유히 지나는 모습이 매우 깜찍하고 귀여웠고 7마리를 길러낸 어미가 너무도 대견했고 사랑스러웠다.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물총새는 총천연색을 덧입은 화려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처음 눈으로 만나는 물총새는 정말로 매력적이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눈으로 만나는 시간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교수님도 물총새의 매력에 빠져 새들에게 입문하셨다고 하셨다.
물총새
둥지에 새끼들을 품고 있는 새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새들이 매우 민감해서 조심스럽게 관찰을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낌새를 느끼면 바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둥지가 아주 잘 숨겨져 있어서 관찰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교수님은 어떻게든 자리를 잘 찾아내 보게 하셨다. 살아있는 자연의 흥미진진한 수업이 아닐 수 없었다.
새끼를 품고 있는 새 둥지
가래나무에 앉아 노래하고 있는 되지빠귀를 관찰하는 일도 대단히 흥미로웠다. 되지빠귀의 자태도 노랫소리만큼 고왔다. 아주 감사하게도 그 녀석은 한참을 머물러 노래를 들려주어서 동기들 모두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다. 의외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에 둥지가 많이 있었다. 그런 둥지를 교수님은 용케도 잘 찾아내셨다. 땅에 내려앉아 먹이를 찾고 있는 되지빠귀도 만났다. 정말로 많은 되지빠귀가 숲에 살고 있었다. 처음으로 만나는 녀석이지만 동구릉 숲을 돌며 빈번하게 만나게 되니 마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굉장히 친해진 느낌이다.
어린 새끼와 함께 있는 오색딱따구리도 보았다. 잠시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아 망원경으로 관찰하기가 쉽지 않았다. 원래 다양한 딱따구리가 살고 있다는 데 오늘은 잘 보이지 않아서 섭섭했었다. 하지만 오색딱따구리 가족을 만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오색딱따구리
교수님은 능이 있는 잔디밭을 계속 찾아다녔다. 노랑할미새가 주로 보이는 곳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눈에 잘 보인다고 하셨는데 만날 수가 없었다. 새를 만나는 일도 운이 따라야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의 시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처마 끝에 앉은 딱새를 찾아내 보여주셨다. 얼른 보기에는 그저 점 하나로 보이는 것을 찾아내시는 눈썰미가 고수의 바로 그것이었다.
딱새
교수님은 숲을 걸어 다니시는 와중에도 오가는 새들을 많이도 찾아내셨다. 박새, 쇠박새, 곤줄박이, 진박새, 오목눈이 붉은 뱁새매, 왜가리, 중대백로... 세세하게 다 잘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운 좋게도 많은 새들을 볼 기회를 가졌다. 교수님의 철저한 사전 준비의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동구릉 숲에서 만난 다양한 새들을 통해 새들의 세상에 발을 들인다. 이전보다는 분명하게 새들과 좀 더 친숙하게 되었다. 비록 여전히 초보자 수준이기는 하지만 신비로운 새들의 생태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경험은 또 다른 사고의 지평이 확대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숲이 좀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무엇이든 알수록 더 사랑스러운 것, 숲을 더 애정하게 되는 참으로 귀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