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식 티 타임의 분위기를 맛본 뒤, 런던 시내 투어 버스에 올랐다. 좀 이른 시각인지 버스 이 층은 한적했다. 상당히 쌀쌀한 느낌이 들었지만 제대로 된 관광을 위해 썰렁함 따위는 던져 버렸다. 높은 곳에 앉아 시내를 돌아보는 느낌이 마음을 살짝 들뜨게 한다.
이층버스
런던 도심은 유구한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한 눈에도 오랜 역사를 지닌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도로가 비좁아 보이는데도 신기하게 심한 정체는 없다. 버스가 주로 다니고 일반 승용차는 드물어 보이는 것이 그 이유일지 모르겠다.
런던 도심
런던 하면 떠오르는 대명사인 하이드파크를 찾았다. 공원 입구의 말머리 조각이 인상적이다. 어디선가 책자에서 본 적이 있는 조각인데 인터넷에서도 확인할 길이 없다.
말머리 조각
공원 출입문이 동화의 분위기를 풍긴다. 아이들이 그려 놓은 것처럼 정겹다. 철제로 꽃을 형상화한 철문도 독특하다.
하이드파크 정문
하이드 파크는 규모면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아기자기하고 세련되어 보이지 않지만 역시나 아름드리 고목들이 공원의 주인이었다.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인지 단체로 조깅하는 이들이 많다. 건강하고 생기 넘치는 모습이 공원과 잘 어울린다. 이곳저곳 드넓은 잔디밭에서 한가롭게 쉬는 모습이 여유롭고 평안해 보인다.
하이드파크
사람들이 밟은 탓인지 잔디밭에 흙이 많이 드러나 있다. 사람이 공원보다 우선이어서 일까? 가끔 우리나라에서 '들어가지 마시오' 팻말을 보면 사람이 뒷전인 느낌이 드는데 이곳은 특별한 제한이 없이 자유로이 즐기는 공간이어서 더 맘에 든다.
하이드 파크
영국 문화의 한 면을 보는 느낌이다. 대부분 자율로 두고 책임은 개개인이 지게 하는 것이다. 버스가 움직이고 있는 상태에서 이 층에 오르려면 넘어지기가 쉬울 듯하고, 맨 뒷자리는 차가 급정거하면 잡을 것이 있어야 할 텐데 없다. 우리 같으면 버스기사가 안된다던가 조심하라던가 여러 번 나올 상황에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우리는 사고가 나면 대비하는 방식이 너무도 직접적이고 과해서 과도한 규제가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쪽에서는 청소년들이 축구도 즐긴다. 우리라면 아마도 금지했을 것이 자명하다.
꽤 넓은 호수에는 백조가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찾아 물가로 온다. 특이하게 갈매기도 있다. 다른 조류들 중에 백조는 단연 빼어나 마치 귀족적인 풍모를 뿜어낸다. 큰 몸체에 하얀 깃털에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순백의 자태다. 우아함 그 자체를 보는 기분이다. 이슬만 먹고살 것 같은 분위기지만 사람이 주는 먹이를 덥석덥석 받아먹는 것이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하이드파크 새들
투어 버스를 타고 또 다른 공원을 찾았다. 오는 날 숙소 주인이 좋다고 알려준 왕립 리젠트 파크다. 입구부터 격조가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철문이 기대를 부른다. 문을 들어서자 쭉 뻗은 산책로가 마음을 뻥 뚫어주고 이곳도 역시나 고목들이 서 있는 아래 녹색의 잔디와 꽃들이 우리를 반긴다.
리젠트파크 정문
세인트 제임스 가든과 하이드파크에 비해 좀 더 세심하게 가꾸어졌다. 앞선 두 공원도 좋았으나 마음에 쏙 들어와 또 다른 기쁨을 안기는 공원이었다.
잘 자라 균형 있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수목들과 아기자기한 꽃밭이 풍성한 색감을 선사하고 있고,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다양한 장미가 여전히 꽃을 달고 매혹적인 향기가 코를 자극하는 중이다.
일본풍의 정원도 눈길을 끌었다. 연못의 수련을 비롯해 한여름에도 강렬한 색을 담아 피는 꽃들과 풀과 수목들이 잘 어울린다. 거울처럼 수면에 반영된 하늘이 또 하나의 근사한 풍경을 빚고 있다.
정원에 맞는 앙증맞은 조각들도 배치되어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분수가 조성된 정원도 배경의 미류나무가 옹위하듯 둘러 선 풍경도 한여름의 시원함을 부른다.
주목으로 조성된 정원은 인공의 조형미를 뽐낸다. 각을 다듬어 기하학적인 도형을 만들어 내고 케이크같이 층을 내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주목
정원이 선사하는 매력에 폭 빠져 한동안 돌아다녀서 발바닥이 불이 났다.
정원을 만끽하고 맛집을 찾았다. 랍스터 햄버거로 알려진 식당은 너른 좌석임에도 사람이 꽉 찼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와규햄버거와 랍스터를 시켰다. 야채가 거의 없어 햄버거는 목이 메었고 랍스터는 한 점씩 먹으니 먹을 게 없었다. 그나마 감자는 먹을만했지만 너무 양이 많아 태반을 남겼다. 그리고는 140파운드를 치렀다. 팁이 16파운드가 포함된 가격으로 1인당 8만 원인 셈인데 딸은 괜찮은 듯했지만 너무 속 쓰린 결과였다. 그것도 또 하나의 경험이지 뭐 어쩌랴...
버스투어에 웨스터민스터 성당을 관람하는 패키지가 있었는데 장소에 가보니 이미 입장시간이 끝나버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전 정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까닭이다.
하는 수 없이 다음 일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영박물관이 나를 기다렸다.
새벽부터 돌아다녀 몸이 축 늘어진다. 저녁은 좋아하는 과일로 택해서 샀다. 산 과일도 먹지 못하고 피곤이 우리 모두를 꿈나라로 몰아갔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경험을 쌓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