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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령 나무를 찾아서

두위봉 주목을 만나다

by 정석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있는 나무는 주목이다. 이 할아버지 나무를 직접 만나 보려고 강원도 정선 두위봉을 찾아갔다.

두위봉 주목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가려니 별을 보고 집을 나서야 했다. 숲해설을 공부한 동기 두 분과 함께 사당역에서 만나 출발하기로 것이다.


약속 장소로 가려고 전철을 탔는데 이른 새벽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전철을 타고 있어서 치열한 삶의 현장을 만나는 것 같아 공연히 숙연함 마저 들었다.


차창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차츰 밝아지며 화선지에 한 획을 붓질로 그어 놓은 듯 구름이 자리한 뒤로 붉은빛이 번진다. 밤새 뜬 눈으로 지새운 도심의 가로등이 졸린 듯 눈을 비비며 아침의 문을 연다.

차창에 비친 아침

약속한 장소에서 오전 6시 50분에 셋이 만나 차 한 대로 서울을 벗어났다. 늘 늦잠을 자다 새벽에 일어나야 해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더니 피곤해 졸음이 몰려온다. 뒷 좌석에 앉아 책을 읽다가 쪽잠을 자면서 강원도 정선으로 향해 달린다.


오늘 만나는 주목(朱木)은 붉은 수피를 가져서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 수액도 피를 흘리는 것처럼 붉다. 흔히 주목에게는 '살아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수사가 붙는다. 그만큼 오래 사는 나무다. 실제로 두위봉에는 수령이 1,200~1,400년이 된 주목 세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이처럼 살아 있는 나무가 천 년이 훨씬 지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죽은 나무로는 고조선 시대 낙랑 고분의 관제 일부가 주목이었고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베개가 주목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남아 있으니 그저 허언이 아닌 분명한 사실이다.

주목이 그렇게 오래 사는 이유 중 하나는 단순함에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나무는 3~5개의 세포로 목재가 구성되어 있는데 주목은 물을 이동시키는 가도관과 영양분을 운반하는 방사유세포 두 개로만 구성이 되었다. 이로 인해 효율이 떨어지는 대신 천천히 성장하여 에너지 소모가 적어 마치 거북이가 오래 살듯 장수하게 된다.


루비를 닮은 선명하게 붉은 주목의 열매는 달콤하여 먹을 수 있지만 씨앗에는 독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주목할만한 사실 하나는 주목의 수피에는 택솔이라는 특수한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항암제로 유용하게 사용된다. 유럽에서는 주목으로 만든 활이 단단하고 유연성을 갖추어 강력한 살상 무기로 위명을 떨쳤다. 또한 수형이 아름다워 정원수로 많이 이용된다. 이렇듯 주목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삶에 다양한 기여를 하고 있다.


오전 10시 30분에 두위봉 입구에 도착했다. 어제부터 기온이 뚝 떨어져인지 바깥공기가 차가웠다. 느티나무도 계절 변화에 따라 푸른 옷을 벗고 주황빛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긴 옷을 걸치고 나서 3.2킬로미터 떨어진 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두위봉 입구

차가운 공기가 오히려 상쾌함으로 찌뿌둥한 몸을 깨운다. 아직도 초록이 가득한 숲이 다정하게 다가온다.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에 숲길을 걸으니 몸도 마음도 저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개쑥부쟁이

다듬은 돌로 놓인 길이 다소 불편하지만 산의 맑은 기운이 불편함을 날려버린다. 길가에는 개쑥부쟁이가 꽃망울을 터트려 환하게 반긴다. 산이 깊어선지 계곡의 물소리도 우렁차다. 계류가 만들어 낸 음이온이 가득히 넘치는 숲은 청량함 그 자체다. 몸 안의 탁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깨끗한 산소를 심호흡으로 실컷 들여 마신다. 몸과 마음이 가볍다.

한참을 걸어 올라 바빠진 호흡을 달래려 중도에 여장을 푼다. 옹달샘에 물그릇도 놓여 있어 심산의 약수로 갈증을 달랜다. 시원한 물이 젖은 땀을 식혀준다. 물가에 붉은 열매가 떨어져 있다. 올려다보니 참회나무가 주렁주렁 열매를 꽃처럼 달고 있다.

참회나무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가을이 들어선 숲에 투구꽃이 여기저기 보랏빛 꽃을 피우고 있다. 단조로운 숲길을 즐겁게 장식하는 꽃에 발걸음이 가볍다. 숲에는 박달나무와 자작나무가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투구꽃
자작나무

마침내 천 사백 년의 세월을 살아낸 아름드리 주목을 만났다. 세 그루 모두 천연기념물 433호로 지정되어 있다. 눈에 들어온 고목은 어찌나 꼿꼿하고 푸른지 눈이 부시다. 생각보다 크지는 않지만 세월의 더께가 그대로 앉은 수피가 주는 무게감과 균형 잡힌 자태가 시간의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 긴 역사 앞에 저절로 경외감이 인다. 몸통은 고목이어도 가지마다 햇볕에 반짝이는 푸른 잎들은 청년의 싱그러움을 담고 있다.

앞에서 보는 모습과 뒷 태는 또 다른 풍모를 풍긴다.

주변의 나무들이 옹위하듯 숨죽이며 서있다.

두위봉 주목

두 번째 주목은 심재가 다 사라져 중심이 텅 비었다.

뒤틀리며 위로 오르는 수피는 번째 주목과 다른 느낌을 준다. 중심이 텅 비었지만 꿋꿋하게 삶을 살아가는 불굴의 의지에 숙연해진다. 다 가졌지만 늘 부족한 작은 것들을 찾아내 불평하는 나의 삶이 투영되어 부끄럽다. 늘 푸른 가지를 드리운 옆에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이 대조를 이루며 풍경을 만들고 있다.

마지막 한 그루도 똑같이 당당한 위엄을 지녔다. 산마루 아래 세 그루가 줄 지어 기나긴 세월 동안 지금까지 건강한 삶을 이어온 사실이 너무 경이롭다. 이웃한 벗들이 있기에 숱한 시간들을 참고 견딘 것은 아닐까? 그 자리에 서서 숲이 산으로 이어지는 위로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다행스러운 점은 산꼭대기가 아닌 중턱에 자리를 잡아 그곳이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주목 세 그루가 당당히 서 있는 대단한 그 장소를 바로 떠나고 싶지 않다. 간단히 예를 표하고 고목 언저리에 앉아 점심을 나누며 기쁜 감회를 나눈다. 모든 것을 이해받고 모든 것을 용납받는 넓고 푸근한 품 안에 안긴 평안을 누린다. 이 뜻깊은 곳을 오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고 한 입으로 서로 고백한다.


두위봉 정상을 올라가는 길이 있지만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하산으로 마음을 먹었다.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하지만 너네나 잘 지내라고 허허 웃음을 짓는 듯하다. 내려가는 길은 한걸음이다. 귀한 만남을 가진 뿌듯함에 발걸음이 날듯이 가볍다.


남은 시간에 가까이 있는 정암사에 들렀다. 신라시대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로 수마노 탑이 국보 3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새빨갛게 물든 담쟁이덩굴이 반기는 가람은 소박하고 단아하다. 백당나무 열매도 못지않게 붉다. 절 뒤편을 올라 수마노 전탑을 만난다. 오랜 풍상에도 옛 모습을 그대로 지녀 의연하고 맑은 얼굴의 탑이다.

수마노탑

곤드레 정식으로 저녁을 풍성하게 먹고 서울로 상경했다. 야외에서 하루 종일 보낸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몸은 좀 피곤하지만 마음은 넉넉하여 건강할 때 이런 멋진 곳을 부지런히 찾아 나서야겠다고 의지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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