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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Nov 29. 2023

김장, 겨우살이 준비를 하며

아내를 도와 김장을 하다

예전에는 본격적인 겨울에 들어서기 앞서서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김장을 담그는 것이다. 채소가 귀해지는 시절, 겨우내 먹을 반찬으로 김장을 담갔던 것이다. 요즘은 사시사철 채소가 있고 굳이 김치가 없어도 얼마든지 먹을 것이 넘쳐나서 예전처럼 김장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더구나 사람들의 입맛도 변해 김치를  안 먹는 사람도 증가하는 추세라 더 그렇다.


많은 주부들은 이제 김치를 담그지 않는다. 간편하게 사 먹을 수 있는 맛난 김치가 지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치를 담글 줄 모르는 주부도 많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제일 큰 이유는 삶의 방식의 변화에 있다. 대부분 맞벌이를 하다 보니 노동집약적인 가사노동에 시간을 들이는 것은 아주 비효율적인 일인 것이다.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데 구태여 힘들여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편하고 간편한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전통의 가치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나는 아직도 김치를 담가 먹는 세대다. 물론 필요하면 김치를 사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내 덕에 직접 담근 김치를 먹는다. 아쉬운 것은 아이들의 입맛이다. 딸은 김치를 거의 먹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가 차리는 밥상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점은 매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해마다 김장을 담근다. 예전처럼 많은 양을 담지는 않는다. 올 해도 절임 배추 20 킬로짜리 두 박스를 사서 담았다. 배추를 사서 소금으로 절인 다음 씻어서 준비하는 것이 원래 김장이지만 요즘 주거 공간에는 부엌이 좁아서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그런 번거로운 절차를 간소화해서 절임 배추를 사다 하는 것이다. 당연히 예전에 비해 간편해졌지만 그렇다고 김장이 간단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버무린 김치

예전에는 이웃들이 품앗이처럼 서로 돌아가며 도와야 할 만큼 김장은 손이 많이 가는 큰 행사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나처럼 시간이 남는 남편들은 손을 보태야 한다. 다행히 나는 가사를 돕는 것이 체질이다. 웬만한 주부보다 손이 빠르다. 많이 해 볼 기회가 없었지만 전생에 주부였는지 그런 일들이 손에 익다.


이 번 김장에도 나는 한몫을 단단히 했다. 물론 대부분 아내가 했지만 내가 한 지분도 결코 적지 않다. 김장 전날, 쪽파 두 단을 다듬었고, 총각무 넉 단을 내가 다듬었다. 한두 번 해 본 요량으로 뚝딱 해치웠다. 다음 날에는 김칫소로 쓸 무를 채칼을 써서 채를 쳤고, 김장 양념을 버무렸다. 채로 썬 무에 고춧가루를 부어 섞고 차례대로 멸치 액젓과 새우젓을 갈아서 더했다. 큰 그릇에 양념을 버무리는 데 보통 힘이 드는 일이 아니다. 이런 힘쓰는 일을 과거에는 모두 다 여자들이 했다는 것이 놀랍다. 그만큼 힘이 많이 들어간다. 생강과 마늘 간 것을 더하고 육수를 내서 쑨 찹쌀 풀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갓과 쪽파를 썰어 놓은 것을 넣고 조심스럽게 버무리면 비로소 김치 양념이 완성된다.


나는 그 일로 손을 떼려고 했더니 아내는 나 더러 김치를 버무리란다. 자신은 뒷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물을 빼놓은 배추를 가져다 양념을 버무렸다. 사실, 배추에 양념을 비벼 넣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 그 일은 아내가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하게 시켜서 순종을 잘하는 나는 얌전히 앉아 내일처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것은 주부 9단처럼 거침없이 일을 잘한다는 것이다.

김치 양념을 적당히 덜어 한쪽에 놓은 다음 먼저 배추 겉면에 전체적으로 양념을 한 번 쓱 바르고 나서 배추 속에도 빼먹지 않고 양념을 넣고 그런 다음 잎 하나하나를 넘겨가며 꼼꼼하게 양념으로 채운다. 마지막으로 뒷면에도 양념을 더해 김장통에 넣는다. 그렇게 김치통 두 개와 반 통 정도를 채웠다. 거실에서 쪼그려 앉아 같은 자세로 일을 계속해서 그런지 허리가 펴지질 않았다. 예전에 엄마들이 김장 후에는 몸살이 나곤 했다고 하는 데 충분히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사이 아내는 정리를 하며 돼지 수육을 준비했다.


아내는 남은 양념을 가지고 알타리 김치를 담갔고 그렇게 김장이 무사히 끝났다. 일을 끝내고 힘든 허리를 붙들고  아내에게 "나를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니냐"라고 하소연을 했더니 " 부려 먹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다."라고 한 마디를 한다. 너무도 지당한 말이지만 내 공로를 알아주라는 넋두리다. 더구나 김치를 주로 먹는 사람은 "나"이기 때문이다.


배추 겉절이에 돼지 수육으로 꿀맛 같은 점심을 먹었다. 아내는 큰 일을 마쳐서 기분 좋은 표정이다. 나도 내 할 일을 잘 해낸 것 같아 뿌듯하다. 맛있는 김치를 겨우내 먹을 수 있으니 든든하기도 하다. 옛 어르신들도 김장을 마치면 이런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내년 김장에는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인다. 일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일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다 완전 전업 주부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인스턴트식품이 난무하는 시대에 손수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 일이 귀해지고 있다. 태국 같은 경우에는 아예 세끼를 다 밖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집안에서 불을 피울 수 없는 구조 때문이라지만 그만큼 간편한 것을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절약되고 편한 것이야 물론 좋다. 하지만 직접 준비하면서 드는 마음과 정성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이고, 섬김을 받는 마음의 기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주고받는 정은 귀한 것이다. 정은 단 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들고 충분히 익어야 제 맛이 난다. 서투르고 부족할 수 있지만 손으로 직접 하는 기쁨을 각박한 시대에 더더욱 잊지 말아야겠다.

#에세이 #김장 #가을 #겨우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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