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경이(驚異)다.

봄의 예찬

by 정석진

봄은 경이(驚異)다.

죽었던 대지가 깨어나고 무심했던 나목에 생기가 돈다.

겨우내 침잠했던 정적을 깨트리고 생글거리는 변화가 시작된다.

기나긴 사유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기지개를 켜며 행동에 나서는 발걸음이다.


나는 봄을 사랑한다.

봄은 가만히 마음에 떠올리기만해도 가슴이 뛴다.

봄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희망이 좋다.

무엇인가 내안에 꿈틀거리며 움트는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새로운 계절의 시작이 주는 떨림이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순백의 백지장 앞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고 화필을 드는 순간,

무채색의 세계가 봄이라는 지휘에 따라 총천연색의 신세계로 바뀌는 변주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추위로 몸을 웅크리며 안으로 향했던 우리의 마음도 따스한 변화의 바람따라 저절로 문 밖으로 향한다.

겨울은 고독의 계절이지만 봄은 결코 그럴 수 없다.

봄은 어울림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랑의 계절이다.

깊은 고뇌에서 벗어나 기쁨을 노래하고 살아있음을 자각하는 깨달음의 순간이다.

한겨울이 지나고 나면 우리도 모르게 봄의 변화가 시작된다.

겨울이 계속 될 것 같아도 가는 계절은 가야만 하고 오는 계절은 반드시 오고야만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력이 얼굴을 바꿔도 겨울은 여전하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미묘한 차이를 감지한다.

햇살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며 바람에도 미세한 차이가 담겨있다.

햇볕의 온기가 이전보다 친근하게 느껴지고 바람은 찬기를 여전히 머금고 있지만 뾰족했던 촉감이 부드럽게 얼굴을 휘감고 지나며 기분을 좋게 만든다.

스파이처럼 몰래 봄이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응달에는 잔설이 남아있지만 볕바른 양지 녘에는 벌써 푸른빛이 감돈다.

성마른 녀석들이 이른 잠을 깨고 일어나는 것이다.

덩치 큰 녀석들은 꿈속에 젖어 여전히 세월을 잊고 느긋하게 서있다.

하지만 작고 연약한 아이들은 예민한 감각으로 남보다 발 빠르게 움직인다.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오롯이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게 척박한 환경이라도 경쟁이 없는 틈을 이용할 줄 아는 지혜를 지녔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당당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다.

큰봄까치꽃

씩씩한 주인공 중 하나가 큰봄까치꽃이다.

꽃에 비해 타이탄같이 거대한 사람들은 심드렁하게 지나치면 쉽게 볼 수 없다. 겸손히 허리를 굽히고 눈높이를 낮추어야만 비로소 시야에 들어온다. 푸른 융단에 박힌 반짝이는 신비로운 남빛 보석들과 같은 꽃들은 눈을 즐겁게 한다. 한 송이도 깜찍하고 귀엽지만 함께 이웃하여 피는 동류들의 모습을 보면 생명의 환희가 담겨있다.

냉이꽃
말냉이

친근한 봄의 대표적인 먹거리 냉이도 주인공이다. 여린 긴 꽃대 끝에 매달린 앙증맞은 흰 꽃이 미풍에 산들거린다. 하나가 피어있으면 보이지 않을 터인데 무리 지어 있으니 어린아이들이 잔뜩 모여 수런수런 수다를 떠는 풍경이다. 이 아이들보다 크고 듬직한 형들이 주위에 포진해 있다. 꽃빛이 푸른 잎을 닮아 순진해 보이는 말냉이다.

꽃다지

들꽃 중에도 더 미약한 꽃이 있다. 이름이 고운 꽃다지다. 몸집이 작고 꽃마저 작아서 군락이 아니면 볼 수 없다. 떼거리로 모여 꽃을 피우기에 주변을 노랗게 물들인다. 지그시 바라보면 개나리 꽃빛을 그대로 닮아 햇살에 비치면 눈이 부시다.

광대나물

광대나물은 화려한 자태를 지녔다.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다. 잎의 생김새도 여느 잎처럼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세련된 치장으로 돋보인다. 마치 목도리에 보석을 박은 듯한 모습이 귀부인을 닮았다. 삐어져 피어나는 보라색 꽃도 독특하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나는 작은 귀인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수많은 작고 미약한 꽃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살며 꽃을 피워낸다. 크고 화려한 꽃들에 비해 초라하고 눈에도 잘 띄지 않지만 그들 나름대로 소박하고 질박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벗꽃과 버드나무
목련

봄바람 부는 들판에 나가보라! 연둣빛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버드나무에도, 꽃사태로 순백의 하늘을 연출하는 벚꽃에도, 우아하고 정숙한 모습으로 숭고하게 피어오르는 목련의 자태에도 봄이 묻어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는 봄만이 봄이 아닌 것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사랑의 눈으로 낮은 곳을 향하여 보라! 또 다른 신비한 자연이 살아 숨 쉰다. 귀 기울이면 조용하게 들꽃들이 연주하는 진실한 봄의 향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좋은 봄을 어찌 사랑할 수 없으리! 너무도 빨리 흘러가는 봄날의 한때가 벌써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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